역사 품고 굽이굽이 흐르는 경기옛길 ‘삼남길’

2014-10-31 08:25:09 게재

골사그내에서 서호공원까지 골짜기마다 이야기 가득

제주 올레길에서 시작된 걷기 열풍이 거세다. 도보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주변에 걸을만한 길도 많아지고 있다. 지자체와 걷기여행 시민단체들이 앞 다투어 걷기 좋은 길을 개발하고 길 안내판 까지 꼼꼼히 정비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에 발맞춰 경기문화재단이 한양에서 하삼도(충청, 전라, 경상)를 잇는 옛길 ‘삼남길’을 복원했다. 삼남길의 경기도 구간은 남태령부터 수원, 화성, 오산을 지나 평택까지 연결된다. 조선시대 중심도로였던 삼남길. 대과급제를 바라는 선비들이 오갔던 이야기와 정조대왕의 효성스런 마음이 곳곳에 베어있는 삼남길을 지난 26일 안산 경실련 회원들과 걸었다.


<총탄 자국이 선명한 지지대비.>


<호젓한 산길. 지지대고개 오르는 길>

골사그내에서 해우재까지
삼남길을 걷기 위해 집결 장소로 정한 곳은 금정역 1번 출구.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해 의왕시 골사그내에서 경기문화재단 삼남길 해설사를 만났다. 지금은 거미줄 같은 고속도로가 서울과 지방을 연결하지만 조선시대는 영남길, 경의길, 삼남길 등 6개 대로가 전국의 육지 교통로였다. 길잡이로 나선 경기학연구팀 이지훈 책임연구원은 “조선 말 상공업이 발전하기 전까지 세금을 운반하던 조운길은 모두 강이나 바다를 연결한 수로였기 때문에 육로의 발달은 더딘 편이었는다”고 설명한다.
이날 도보여행 코스는 골사그내에서 출발해 지지대고개를 건너 해우재와 서호천을 거쳐 서호공원까지 약 11km.
개천이 뱀처럼 휘어 흐른다 해서 ‘곡사천’이었던 마을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골사그내’가 됐다. 골사그내에서 지지대고개를 넘어가는 코스는 약간 가파른 산길을 따라 이어진다. 가을 산행에 낙엽 밟는 소리가 친구가 되어 바스락 바스락 따라 온다.
지지대고개는 정조임금이 아버지의 무덤인 현룽원을 찾았다가 돌아가는 길에 못내 아쉬워 자꾸 행차를 늦췄다는 이야기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당쟁이 치열했던 시기 ‘효’는 정조의 유일한 통치수단이었다. 효를 앞세워 원행을 다니며 백성들과 직접 소통을 하고 수원이라는 신도시를 만들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 싶었던 정조. 성리학의 나라에서 아버지에게 효를 행하려는 정조를 탓할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고개를 넘어가자 이런 정조의 효행을 기록한 지지대비가 전각 속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비석엔 총탄 자국이 선명하다. 한국전쟁 당시 누군가 이 비석을 표적삼아 사격 연습을 했을 것이라는 해설사의 설명이 총탄처럼 가슴 와 박힌다.
지지대비를 지나 다시 접어든 산길. 햇볕이 잘드는 야트막한 산이면 어김없이 산밭이 나오고 그 산밭 옆에는 물을 가두는 둠벙이 만들어져 있다. 빗물을 모아 농업용수로 활용했던 조상들의 오랜 지혜를 만나게 된다.
산길이 끝나고 만나는 첫 마을에는 우리나라 단 하나뿐인 ‘똥 박물관’이 있다. 이곳 해우재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국내 유일 ‘똥 박물관’ 가는 길 옆 벽화>

서호천 오리와 함께 걷는 길
해우재를 나와 지하보도와 횡단보도 몇 개를 지나면 서호천을 따라 걷는 길이 나온다. 길에는 찾기 쉽게 안내판이 붙어있다. 서울에서 남쪽으로 가는 방향은 주황색 화살표를 따라 길을 찾으면 된다.
서호천에 내려서자 이번엔 돌돌돌 물소리가 같이 가자며 말을 건넨다. 자연 하천을 거의 손보지 않고 두 사람이 나란히 다닐 정도의 길만 만들었다. 가끔 자전거가 지나갈 때 비켜야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이정도의 불편함이야 함께 사는 사람으로 당연한 일. 걷기가 힘들 즈음이면 물가에 노니는 오리 몇 마리가 ‘여기 한번 보고 가라’고 발길을 붙잡는다.
서호천은 서호공원으로 연결된다. 서호는 수원을 신도시로 개발한 정조가 농업 발전을 위해 인공적으로 만든 저수지 ‘축만제’의 다른 이름이다. 그 때 조성한 국영농장은 현재 농촌진흥청의 모태가 되었고 지금도 이곳에 농촌진흥청이 자리 잡은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농업의 선구자 우장춘 박사의 묘와 백로 서식지인 ‘여기산’을 지나자 나타난 서호. 아니 축만제. 잔잔한 호수를 붉은색 단풍과 억새가 둥글게 감싸고 호수 위를 힘차게 나는 철새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서호 옆 ‘항미정’에서 내려오면 안산으로 이어지는 42번 국도와 만난다. 이날 여정은 이곳에서 끝나지만 길은 남쪽으로 향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길을 걷다보면 많은 이야기가 길가에 뿌려진다. 그 이야기 중 어떤 이야기는 큰 나무가 되어 다음 세대에 전해지기도 하고 어떤 이야기는 잡초가 되어 사라지기도 하겠지. 깊어가는 가을 가족들과 함께 삼남길을 걸으며 우리가족의 이야기를 길가에 뿌려보는 것은 어떨까? 그 이야기는 먼 훗날 추억이 되어 그 길에서 자라고 있지 않을까?


<단풍이 물든 서호천 길>


<아름다운 서호 풍경>


여행정보
경기옛길 따라 릴레이 종주
일시 : 11월 7일~14일
코스 : 의주길(50Km), 삼남길(90Km) 전 구간
도민 걷기대회
일시 : 11월 15일
코스 : 서호공원 ~ 해우재 ~ 의왕시청 (8Km)
문의 :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재 연구원

 

하혜경 리포터 ha-nul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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