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소리'나왔지만 토론회서 웃은 금융당국

2015-02-04 11:42:04 게재

금융CEO 소집한 토론회

의도에 맞는 의견 쏟아져

혁신 총론에 딴소리 못해

금융권을 대표하는 금융회사 CEO 54명이 모인 사상 첫 범금융 대토론회에서 정부 규제에 대한 쓴소리가 쏟아졌지만 금융당국이 당초 의도했던 방향과 같은 결론이 나왔다.

3일 오후 서울 중구 청계천로 예금보험공사 강당에서 '대한민국 금융의 길을 묻다-2015 범금융 대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정부가 '보수적 금융관행 혁신'이라는 명분을 토론의 주된 안건으로 내세웠고 CEO들은 혁신이라는 총론에 딴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다. 실상 금융당국이 말하는 혁신은 정부가 강도 높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기술금융 확대와 핀테크에 금융기관들을 적극 동참시키기 위한 변화를 의미한다. 최근 금융당국이 은행의 혁신성 평가 잣대를 '기술금융'에 맞춰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토론회에 참석한 CEO들이 금융당국과 금융회사의 혁신 필요성에 동조하면서 그동안 '일방 통행'이라고 비판받아온 정부로서는 토론회 개최의 목적을 사실상 달성한 셈이 됐다.

3일 오후 3시 30분부터 6시간 넘게 예금보험공사 대강당에서 진행된 '대한민국 금융의 길을 묻다-2015 범금융 대토론회'에서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금융권 스스로 혁신전쟁에서 살아남아 성장하기 위해 '개혁의 상시화'가 필요하다"며 "이제는 변해야 할 때"라고 혁신을 강조했다.

토론회 첫 순서인 '금융패러다임의 변화'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는 업계 전문가와 회사대표, 교수 등이 핀테크를 중심 주제로 발표했다.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 소장 리차드 돕스는 "금융사들이 핀테크 공격수를 둬야 한다"며 "핀테크 자회사를 만들고 금융당국은 신생기업의 탄생을 막는 규제를 찾아서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강임호 한양대 교수도 IT금융 융합의 새로운 트렌드로 핀테크를 주장하며 금융소비자와 금융정책의 변화에 발맞춰 금융회사 역시 변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는 "금융과 IT융합을 통한 새로운 형태의 부가가치 창출은 돌이킬 수 없는 글로벌 트렌드"라고 말했다. 그 다음 주제는 IT업체들이 금융회사들을 향해 기술 잠재력을 가진 중소기업 지원해야 한다며 기술금융 활성화에 한 목소리를 냈다.

논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기술금융 확대와 핀테크 지원을 위한 금융회사의 혁신에 초점이 맞춰졌다. 금융당국이 그동안 누차 강조했던 내용이다. 금융회사들은 핀테크 정책에 대해 딴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정부의 금산분리 완화를 촉구했다. 권용원 키움증권 대표는 "영국이나 미국, 일본을 보면 금융사의 인터넷 뱅킹 진출이 활발하다"며 "IT회사의 금융 진출 허용하려고 하면서 금융회사의 IT진출을 막는 것은 아쉬움이 있다. 금산분리와 금융실명제 등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도 "네이버나 다음카카오 등의 회사가 뱅킹에 진출할 수 있게 길을 열어주고 금산분리를 완화해야 한다"며 "은행권이 핀테크 업체 설립이나 인수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주장했다.

금융당국이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추진 과정에 금산분리 완화를 검토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회사들이 사실상 힘을 실어준 것이다.

다만 최규연 저축은행중앙회장은 "서민금융기관이 핀테크를 따라가기 너무 어렵다"며 "서민금융은 서민자체의 고금리를 완화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하고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것보다 햇살론처럼 간접적으로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금융회사들이 정부에 대해 불만을 터트린 대목은 '금융검사·감독 혁신' 부분이다.

금융회사들은 연간 검사기간을 제한하고 검사결과 조치안을 해당 금융기관 직원이 배석한 자리에서 충분히 논의하는 '사전협의회'를 제안했다. 임종룡 NH농협금융 회장은 "명문화돼 있지 않은 규제인 구두지도 명문시달 등이 있는데 금융사가 가장 아픈 부분"이라며 "현장지도 구두지도에 대해 현장에서는 규제가 많다고 느끼는 부분이고 이런 것을 명문화하고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당국이 간섭하지 않아도 금융회사들은 건전성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국제 기준을 맞추는데도 이미 은행들은 벅차다. 건전성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금융당국에 대한 쓴소리 같지만 금융위원회는 이미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검사 규제 완화를 금융감독원과 논의 중이다. 그동안 금융감독원의 반발이 강했다는 점에서 금융회사들의 이같은 쓴소리는 금융위 입장에서는 싫지 않은 말이다. 비판의 초점은 금감원에 맞춰져 있었다. 진웅섭 금감원장은 "더 이상 당임교사 같은 노릇을 하지 않겠다"며 "언제까지 감독이 금융회사를 어린 아이처럼 손 붙잡고 갈 수 있을 것이냐 하는 것에 대한 답을 스스로 하려고 한다"고 말해 감독·검사 관행 개선 의지를 밝혔다. 이날 토론회는 밤 10시까지 이어졌고 참석자들은 대체로 "할 말은 했다"는 분위기지만 일각에서는 "정부의 소집에 금융기관 CEO들이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정해진 주제를 놓고 논의하는 일방적 자리였다"는 불만도 제기됐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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