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장 지도를 다시 그린다 23 | 제3의 국공합작 '차이완'으로 한국 추격 중인 대만

갤럭시 추월한 샤오미는 대만 IT기술력과 중국의 합작품

2015-02-09 14:14:11 게재

중국은 해일처럼 밀려오기도 하지만 우주폭풍처럼 소리도 형체도 없이 찾아온다.

지난 2010년 중국과 대만이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체결했을 때 3차 국공합작에 비유하며 중국(China)과 대만(Taiwan)의 통합체인 차이완(Chiwan)에 대한 경고음이 나왔다.

4년이 지난 현재 대만 경제지표만 보면 외형적 성과를 크지 않다. 대만경제부에 따르면 경제성장률은 2010년 10.76%, 2011년 4.19%, 2012년 1.48%, 2013년 2.11%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석유화학, 철강, 기계, 전기전자, 수송기계 부품 등 주력산업별 한-대만 중국수출 성과를 비교해도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


◆대만기업 팍스콘, 현대차 추월 = 하지만 대만 기업의 생태계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이다.

"대만 하면 중소기업을 연상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그건 옛말이고 대만기업 매출의 70%, 수출의 80% 이상을 대기업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양장석 코트라 주타이베이무역관장의 설명이다.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을 만들고 있는 세계 최대 위탁생산업체 팍스콘(Foxconn, 중국명 富士康)의 매출액은 지난 2011년 1000억달러를 넘어섰다. 2013년 매출이 1300억달러(약130조원)로 현대자동차 87조원보다 훨씬 많다. 팍스콘은 대만 홍하이(鴻海)정밀의 해외법인 명칭이고 대만에서는 보통 '홍하이'라고 부른다. 홍하이정밀 궈타이밍 회장은 '연일항한(聯日抗韓 일본 샤프와 손잡고 한국 삼성을 견제하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인사이다.

세계적인 컨설턴트 오마에 겐이치는 지난 1월 국내 언론과 인터뷰에서 중국의 IT기업이 강한 것은 대만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의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한국의 스마트폰 등 IT 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국이 아니라 대만의 영향력을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에 위협이 되는 것은 중국이 아니라 중국과 대만이 결합한 차이완"이라고 말했다.

중국 전체 휴대폰시장서 삼성전자를 추월한 샤오미의 급성장은 거대 내수시장에 풍부한 노동력을 갖춘 중국과 세계적인 IT·전자 기술력을 보유한 대만의 합작이 낳은 결과다.

스마트폰의 두뇌에 해당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만드는 대만의 미디어텍은 샤오미 등 스마트폰 제조사에 스마트폰 제조법과 제조설비 운용법까지 전수하고 있다. 스마트폰 제조사는 미디어텍이 알려준 방법대로 부품을 구해 조립만 하면 스마트폰을 얼마든지 양산할 수 있다. 미디어텍의 세계 AP 시장 점유율은 지난 2013년 10.5%로 삼성전자(8.0%)를 제치고 세계 3위(1위는 ?컴)로 올라섰다.

반도체 설계 전문 업체인 미디어텍은 대만의 파운드리(위탁생산)업체인 TSMC·UMC 등과 협업, 최신 반도체 공정 기술을 적용해 제품의 질을 지속적으로 높이는 중이다.

중국 휴대폰 제조회사는 한국이나 일본으로부터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 설계는 대만의 미디어텍, 반도체 위탁생산은 대만의 TSMC·UMC 등에 맡기는 수직계열화를 완성해 나가고 있다.

대만의 TSMC는 2013년 파운드리 시장에서 점유율은 46.3%로, 2위인 삼성전자(9.2%)의 5배에 달한다. UMC는 3위로 추격 중이다. 이밖에도 대만 스마트폰 강자 HTC, 세계 3대 자전거 브랜드인 자이언트(GIANT), 앞선 IT기술과 자동차 부품생산 능력을 결합시킨 대만 최초의 완성차 렉스젠(LUXGEN)까지 대만 기업은 주문자상표부착 방식(OEM)에서 고유 브랜드수출체제(OBM)로 진화해 나가고 있다.

조백상 주타이베이한국대표부 대표는 "대만이 한국만큼 FTA 협정을 광범위하게 체결하지 않았는데도 무역흑자 규모가 비슷할 정도로 저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대만에서 '허니피그레스토랑(HONEY PIG RESTAURANT)'이 뜨고 있다. 미국 국적의 한국인이 대만 중심가에 운영하는 24시간 삼겹살집이다.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대만을 테스트베드 삼아 중화권으로 진출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차이완으로 OEM에서 OBM 진화 = 대만은 GDP의 40%가량을 중국에 의존할 정도로 중국과 긴밀한 융합 과정에 있으며, 100만명이 넘는 대만인이 무역을 위해 대륙에 거주한다. 유동적인 인구까지 합하면 300만명의 대만인이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2010년 중국과 대만이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체결한 이후 대만의 중국 투자 비중은 감소하는 추세이다. 해외투자에서 중국의 비중이 84%(2010년)→78%(2011년)→57%(2012년)→62%(2013년)으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임금상승 등 중국의 투자환경 위축으로 동남아로 투자처를 옮긴 것이 원인이다. 하지만 반도체, LCD 등 주력 제조업, 서비스업은 큰 폭으로 증가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

최근 대만 지사를 중국 시장의 시험장(테스트베드)으로 삼아 홍콩·싱가포르 등 동남아 화교권 국가 진출의 주요 거점으로 만들고자 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업종이나 기업에 따라 중국에 직접 진출하거나 홍콩, 대만 등을 통해 우회 진출하는 등 방법은 모두 다르다. 하지만 대만과 중국이 중국어를 쓰면서도 IT 기술 발전 수준은 한국 못지않기 때문에 대만 지사를 설립하고 '차이완'에 밝은 전문가를 영입하고 있다.

휴대폰 카메라의 자동초점(AF) 구동칩(IC)을 개발 생산하는 동운아나텍(대표 김동철)이 대만지사에 오형근 총경리를 스카우트한 것도 같은 이유다. 동운아나텍은 이 분야에서 세계 1위 업체로, 전 세계 30%, 중국 70%, 국내 70~80%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중국 시장에선 점유율이 한 때 80%에 달할 때도 있었다. 2012년부터 중국 휴대폰 업체들이 스마트폰을 양산하면서 수출 물량이 대폭 늘어났다.

오 총경리는 삼성반도체에 근무하다 25년 전 한국을 떠나 싱가포르, 태국, 미국 등지에서 사업을 한 후 10여년 전 대만에 뛰어든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그는 "대만 지사가 중국을 총괄하지는 않지만 중국 대만 등 중화권 정보를 공유하는 통합 시스템(GCO Great China Operation)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오 총경리는 근무시간의 절반가량을 중국에서 보낸다.

오 총경리는 "중소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시작 단계부터 눈높이를 세계 1등 기업에 놓고 기술을 개발하고 마케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운아나텍은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해선 글로벌 업체로의 납품 이력이 필수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설정한 목표가 해외 주요 업체들이 인정하는 일본 소니였다. 소니로부터 파트너 인증을 획득한 뒤 일본은 물론 국내 매출이 급증했다. 2008년 101억원이던 회사 매출이 2013년 465억원으로 증가했다. 삼성 LG 등 국내 대기업의 우산에서 안주하다 환경 변화로 휘청이는 중견기업과 확연히 구분되는 접근 방식이다.

◆대만을 중국 시장 시험장으로 = 대만 진출 성공을 중국과 동남아 시장 진출의 동력으로 삼는 회사도 있다.

2005년 대만에 진출한 오스템 대만법인은 현재 대만 임플란트시장 점유율 45%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현재 대만에는 전세계 80개 기업이 진출해 있고, 한국 기업도 10여개나 된다. 최근 대만 제품도 출시되는 등 경쟁이 치열한 시장이다.

성교상 오스템 대만법인 총경리는 "제품 성능보다도 한국산이라는 불신의 벽을 깨는 것이 최대 걸림돌이었다"고 말했다. 대만 의료 기자재 시장은 미주나 유럽 제품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성 총경리는 당시만 해도 대만에 임플란트 시술을 할 수 있는 치과의사가 많지 않은 점에 착안해 치과의사를 대상으로 하는 세미나를 개최했다. 당시 대만 치과대학 내에 별도의 임플란트 시술 코스가 없이 개론 정도만 가르치고, 실제 트레이닝 과정도 없었다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2007ㅛ년 첫 세미나 1400명이 참가했다. 1년 동안 발로만 뛰어서는 만날 수 없는 규모였다. 2012년에는 40개국에서 1800명이 참석하는 등 세미나를 통한 마케팅은 큰 성과를 거두었다.

성 총경리는 "가재는 게 편이라는 말이 있듯이 대만과 중국이 통하는 게 너무 많고, 대만이 중국을 치고 들어가는 데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오스템 대만법인의 성공 사례는 중국 진출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미완으로 남은 경제협력기본협정(ECFA) = 양안의 봄이 무르익고 있지만 여전히 대만 내부에는 야당인 민진당을 비롯해 중국과의 협력에 반대하는 여론이 있다. 2010년 경제협력기본협정(ECFA) 체결 이후 2013년 6월 서비스무역협정을 체결했지만 비준 반대세력의 입법원(국회) 점거, 농성을 계기로 장기간 지연되고 있다.

2000년대 양안갈등을 계기로 한국 기업이 중국 시장에서 약진하면서 2005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대만을 추월했다. 하지만 2008년 마잉주 총통 집권 이후 대만은 '차이완'을 통해 한국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선거로 참패로 ECFA의 후속절차는 암초를 만났고, 다음 달 한중은 FTA 협상 타결을 전격 선언하면서 공은 다시 한국으로 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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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 기자 k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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