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5
2024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한다.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등지에서 미중경쟁이 가열되면서 한반도도 그 불길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는 비관적 시나리오가 배경에 깔려있다. 중국을 제압하는 데 사활을 걸다시피한 미국은 한국이 일본과 군사적 협력을 강화하며 대중전선의 선봉에 설 것을 공공연하게,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한미동맹의 성격이나 주한미군의 역할도 이런 방향으로 초점이 옮겨졌음은 물론이다. 중국의 공세도 만만치 않다. 지난 18일 중국 관영 글로벌 타임즈가 “한국이 결국 미국에 버림받을 것”이라는 여론조사를 흘리며 한국의 ‘자주적 외교’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 그 예다. 유쾌한 조짐이 아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한반도에서의 국제전쟁은 대부분 당대의 패권전쟁과 긴밀히 연동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나라가 북방 숙적 흉노와의 쟁패에 앞서 고조선을 ‘흉노의 왼팔’로 지목하고 침략한 것, 거란과 청이 송과 명의 잠재적 동맹을 제거하기 위해 고려와 조선을 침략했던 사례가 대
04.24
4.10총선이 끝난지 벌써 두 주가 지났다. 총선에서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는 야당 지도자인 ‘이재명 조국 심판’을 내세웠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무능하고 무지하고 무책임’한 윤석열정부 2년을 심판했다. 총선에 출마한 다수 야권 후보들은 “닥치고 정권심판”을 외쳤다. 다수 국민은 이에 열렬히 호응했다. 민심은 정말 매서웠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과 여권 핵심부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 같다. 윤 대통령은 지난주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자신의 국정방향은 옳았지만 소통이 조금 부족해 국민들이 알아주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인으로 제대로 선거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자기 정치에만 몰두한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지목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렇지만 절대 다수 국민은 4월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한 것은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 호주 대사 임명과 도피 출국, 대파 875원 발언 등 용산발 악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용산발 악재에 많은 국민은 “3년은 너무
04.23
192 대 108. 어차피 예견된 결과였다. 윤석열정권 심판전으로 치러진 총선 이전의 여론조사에서 보인 대통령 국정지지율만큼 여당이 의석수를 얻는 것은 예상된 일이다. 30% 초반과 후반을 오가던 지지도는 결국 그 평균에 가까운 108석으로 나타났다. 여당의 대다수 의원들만 몰랐을까 대부분의 국민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을 원톱으로 내세운 선거전략이 미친 부정적인 영향도, 정권심판론으로 초지일관 밀고간 더불어민주당의 선거전략도 기껏해야 몇석의 의석에 영향을 미치는 데 불과했다. 총선결과는 재앙적 인적 구성과 치명적인 이념과 사상적 편향성을 가진 용산의 인적 네트워크(inner circle)의 태생적 한계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었다. 필자는 언론매체의 칼럼을 통해 지속가능한 정권의 조건과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정권이 지속되어서는 안된다고 피력해왔다. 정치에서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은 미래세대를 배려하는 경제성장을 추구함과 동시에 환경적가치를
04.22
재정은 국민 세금이 원천이다. 정부가 국민의 소중한 재산을 강제 징수하고 지출하는 중차대한 활동이다. 따라서 대다수 국가들은 재정을 어떻게 만들고 써야 할지를 법률로 규정한다. 우리나라에선 예산의 편성·집행·심의·감사·결산 등 전 과정에 걸쳐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되도록 하고 있다. 예산 편성 및 집행권은 행정부에, 예산 심의 및 결산권은 입법부에, 예산 집행에 대한 감사권은 감사원에 주어지는 방식이다. 국민 관심이 총선에 쏠린 사이 국가결산보고서 공개 및 감사원 제출에 흠결이 발생했다. 지난해 나라살림을 정리·평가하는 보고서를 4월 10일까지 공개하도록 규정한 국가재정법을 어기고 총선 다음날, 11일 발표했다. 기획재정부는 10일이 임시공휴일이라서 민법을 준용해 이튿날 제출해도 된다는 법제처 자문을 받았다고 했다. 세입·세출 결산과 재정적자·국가부채 등이 담기는 국가결산보고서 공개가 법정시한을 넘긴 것은 국가재정법이 제정된 2006년 이래 처음이다. 국가결산보고서는
04.18
모든 변화에는 신호가 있다. 때론 ‘침묵의 봄’처럼 말없는 신호도 있다. 히말라야의 파리도 그렇다. 2006년 봄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파리가 나타났다”는 리포트가 눈길을 끌었다. 만년설 아래 해발 5364m. 이곳에 파리 한 마리가 관찰된 거다. 관점은 두 갈래였다. 먼저 환경 문제다. 인간은 어디를 가나 흔적과 쓰레기를 남긴다. 세계 최고봉도 예외가 아니다. 전문 산악인뿐만 아니라 일반 등산객까지 몰려든 거다. 베이스캠프는 버려진 텐트와 등산 보조장비, 음식물 찌꺼기 등 각종 쓰레기로 넘쳐났다. 다른 하나는 기후문제다. 지구온난화의 대표적인 증거가 만년설과 빙하가 녹는 거다. 얼음 면적이 줄어 삶의 터전을 위협받는 북극곰은 온난화 상징이다. 히말라야의 파리도 그랬다. 베이스캠프 입지조건 중 하나가 파리 모기가 없어야 한다. 이제 히말라야도 기후위기에서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했다. 히말라야의 파리가 울린 무언의 경보에 세상의 반응은 엇갈렸다. 눈에 보이는 쓰레기는
04.17
세계 전기차시장의 최강자는 이제 테슬라가 아닌 듯싶다. 중국의 비야디(BYD)가 작년 전기차 생산과 수출에서 테슬라를 앞질렀다. 비야디는 ‘BUILD YOUR DREAMS’라는 영어 문구의 첫 문자를 따서 만든 회사명이자 자동차 브랜드다. 세계 최대가 된 중국의 전기차시장에서 점유율 80%를 차지한다.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비야디의 역할에 힘입어 중국 전기차산업이 도약하고 있다. 중국은 2023년 전기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 포함) 103만대를 수출했다. 2022년보다 69% 증가한 규모다. 미중 무역전쟁에 따라 고율관세로 대미 수출이 막혔는데도 중국 전기차는 유럽 수출시장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중국 전기차의 최대 장점은 가격 경쟁력이다. 값싼 노동력 덕이 크다. 그렇다고 품질이 형편없는 것도 아니다. 중국 전기차는 첨단 배터리산업과 자동화 조립공장 등 탄탄한 전기차 생태계가 품질과 생산속도를 받쳐주고 있다. 비야디가 작년에 1500만원짜리 소형 전기차 모델 ‘시걸(Seagu
04.16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Marguerite Yourcanar)는 소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을 통해 로마시대 5현제 중 한명인 하드리아누스 황제를 생생히 그려낸다. 로마 황제로서의 권력과 책임, 인간적인 면모와 갈등을 다루는 이 소설은 하드리아누스의 다양한 경험과 감정, 역사적 배경을 통해 독자들에게 깊은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 그런데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역사에 남는 정치 지도자로서의 위대함은 로마가 오랜 기간 유지하던 영토 확장정책을 폐기하고 로마문명을 유럽 전역에 정착시키기 위한 평화정책을 주창해 새로운 시대정신을 열어간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통치 철학인 ‘인간다움(Humanitas)’ ‘행복(Filicitas)’ ‘자유(Libertas)’는 “로마를 돌로 이루어진 형체에서 벗어나 국가와 시민, 공화국이라는 가치로 형성된 불멸의 문명으로 전환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간이 많이 흘러 지금의 세계는 자유 민주 공정 인권 등의 단어로 추구하는 가치
04.15
영원히 끝나지 않을 불교계의 쟁점 가운데 하나가 ‘돈오돈수 돈오점수’ 논쟁이다. 돈오돈수(頓悟頓修)는 단박에 깨달으면 그 이후에는 수행이 필요없다는 견해다. 문자 그대로는 ‘단박에 깨치고 단박에 닦는다’라는 뜻이다. 돈오점수(頓悟漸修)는 단박에 깨치고 점진적인 수행을 거쳐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한다는 관념이다. 이처럼 논점은 궁극적인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론이다. 돈오돈수를 주장한 대표적인 인물은 고려 말의 국사 보우다. 현대 인물로는 성철스님이 있다. 이들은 한번 깨달았으면 그만이지 뭘 또 수행하느냐는 주장을 편다. 수행이 더 필요하면 깨달은 게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 견해는 중국 선종 육조 혜능의 가르침에서 유래한다. 돈오점수를 주창한 대표적인 사람은 고려 말의 보조국사 지눌이다. ‘한번 깨쳤다고 다 끝난 것은 아니다. 지속적인 수행을 통해서 완전한 깨달음의 상태로 가야 한다.’ 돈오돈수는 근기(根機)가 높은 사람(고단수)에게 알맞다고 한다. 혜능스님도 이를 여러 차례
04.11
지난 주말 아직도 캄캄한 주민센터 사전투표소 앞에는 투표를 하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6시 개장시간 한참 전부터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인구가 너무 적은 동네라 주민센터가 없어 이웃 동네 투표소에 가야하는 필자는 무심하게 줄을 섰다가 60대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사전투표 실시 후 선거 때마다 새벽 투표를 하고 있다는 이들은 강북구에서 서울 도심으로 일하러 가는 새벽 노동자들인데 북악터널을 통과해 이곳에 내려 투표소를 이용한 뒤 다시 버스로 출근한다고 했다. 그녀들은 조금 불편해도 이렇게라도 주권행사를 할 수 있는 사전투표제도를 높이 평가했다. 고(故) 노회찬 의원이 6411버스에서 느낀 것처럼 이들도 정치적 열망과 더 나은 삶을 원하는 에너지가 충만했다. “요즘 한창 떠드는 저출산 해결책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애 낳고 키울 여성들에게 좀 더 좋은 기회를 주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 선거전은 “평생 처음보는 저질 유세”라고 비판했다. 상대방을 범죄자라고 마구 욕
04.09
노벨상의 계절이 반년 앞으로 다가왔다. 대한민국 과학자의 현실은 노벨상 수상 대신 ‘왜 나는 노벨상을 못 받는가?’를 주제로 반성문을 쓰는 것에 더 익숙하다. 국가 차원에서 노벨상을 못 받는 이유는 해마다 치밀하게 분석되고 있으니 이번에는 과학자 개개인들이 밝히는 ‘내’가 노벨상을 못 받는 이유를 알아볼 때다. 필자는 지난 겨울방학 때 미국 산타바바라대학 내에 소재한 이론물리학연구소를 한달 가까이 방문했다. 그곳에 있는 교수 연구원들과 대화하며 좋은 연구 주제를 도출한 뒤 귀국하려는 계획이었다. 태평양 바다가 창문 밖으로 햇빛을 받아 아름답게 반짝이는 교수 연구실에서 필자를 포함한 몇명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는 기존 이론에 대한 비판적 복습으로 시작해 새로운 주제 발굴에 대한 난상 토론으로 이어졌다. 교수가 갑자기 한마디를 던진다. “이해가 안되네!(I don’t understand)” 이미 정설로 알려진 이론을 대학원생 한명이 설명하는 걸 듣다 반사적으로 내뱉
04.08
자본주의 경제와 조세국가 역사가 짧은 한국이 꽤 앞서 정착시킨 세금제도가 있다. 1977년 도입해 반세기를 향해가는 부가가치세다. 시행착오가 적지 않았지만 소득세 법인세에 이은 3대 세목으로 자리잡았다. 한국보다 20년 늦은 1997년, 소비세율을 3%에서 5%로 인상하는 일본에 한수 가르치기도 했다. 이런 부가가치세가 4.10 총선 공약 심판대에 올랐다. 한동훈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부가가치세 감면 공약을 연거푸 내놓았다. 먼저 출산육아용품과 라면 등 일부 가공식품의 세율을 10%에서 5%로 낮춰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어 간이과세 적용 기준을 현행 매출 8000만원에서 2억원으로 상향 조정하겠다고 공약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민생토론회에서 1억40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했는데 한 위원장은 한술 더 떴다. 지난해 경기가 부진한 데다 이런저런 감세조치로 56조4000억원 세수펑크가 발생했다. 올해도 주식 양도소득세 대주주 기준 완화 등 감세방안이 줄줄이 대기중이
04.04
2005년 영화 ‘달콤한 인생’의 한 장면. 주인공 선우로 분한 이병헌이 비장하게 묻는다. “저한테 왜 그랬어요?” 보스에게 열심히 봉사했는데 왜 죽이려 했느냐는 거다. 보스 역 김영철이 답한다. “너는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현실 같은 영화라고 한다. 아니 영화 같은 현실인가. 현실은 영화적 상상력의 바탕이고 영화는 현실의 투영이자 재해석이겠다. ‘달콤한 인생’에서 핵심을 짚은 모욕감이 그렇다. 요즘 말로 하면 자존감의 훼손이다. 22대 총선이 코 앞이다. 선거의 전선은 실리와 가치 사이에 형성된다고 한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에서 보듯이 경제상황이 표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한편으론 민주주의와 공화국의 가치다. 여당은 “이조심판”을 앞세워 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부각시킨다. 야당은 “정권심판”을 외치며 검찰독재와 민주주의 후퇴를 지적한다. 하지만 실리와 가치보다 자아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모욕감이 표심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최근 MBC가 총선에 대한
04.03
3월 16일에 관심을 거의 받지 못한 집회가 있었다. 시민단체와 공공운수노조 등 40여개 단체가 참여해 정부에게 공공의료 강화를 촉구하는 집회였다. 코로나19 유행을 거치면서 공공병원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했기에 반가운 일이다. 정부-의료계, 특히 전공의와의 갈등이 일파만파 번져가는 가운데 의료개혁과제로 공공병원의 정상화에 관한 주제가 어디서도 제기되지 않은 점이 의아스럽던 중이었다. 공공병원 활성화를 통해 지역의료와 필수의료 공백 문제를 풀어간다는 정책 아이디어는 많은 시민단체들과 전문가들이 오랫동안 주장해온 것이며 수차례 정부 차원의 정책으로도 만들어졌던 주제였기 때문이다. 우선 찾아본 자료가 2018년 10월 1일에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필수의료의 지역 격차없는 포용국가 실현을 위한) 공공보건의료발전 종합대책’이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4가지 추진과제가 제시됐다. 1) 지역격차 해소를 위한 공공보건의료 책임성 강화 2) 필수의료 전국민 보장 강화 3) 공공보
04.02
흔히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도(構圖)라고 한다. 선거에 영향을 주는 요소라면 인물 정책 이슈 바람 조직 같은 게 있지만 으뜸은 구도라는 게 정치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여야를 막론하고 구도가 유리하게 짜인 선거에서는 무난하게 승리하지만, 그 반대라면 무슨 용을 써도 고전을 면치 못한다는 것이다. 선거에서 구도는 유권자 머릿속에 그려지는 사고의 틀, 즉 프레임이다. 유권자들은 프레임으로 선거의 의미와 성격을 판단하고, 그 프레임 속에서 지지 정당과 후보를 선택한다. 프레임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몇가지가 있지만 선거 전략을 한마디로 압축한 구호가 우선 꼽힌다. 한번 들으면 귀에 쏙 들어오면서 머릿속에 이분법적 대결구도를 이미지로 기억시켜 주는 구호는 어지간한 선심 공약보다 파괴력이 있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의 메인 슬로건을 “못살겠다 심판하자”로 정했다. 이승만정권 때 나온 전설의 구호 ‘못살겠다 갈아보자’를 차용한 것으로 참신함은 없지만 입에 감기는 운율은 있다. 윤
04.01
미국 의사 엘리샤 퍼킨스는 1796년 환자의 아픈 부위를 몇분 동안 문지르기만 하면 통증이 완화하는 특수합금 막대(치료봉)를 개발했다. 퍼킨스는 전기효능을 지닌 이 막대로 어떤 병이든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만능 치료봉으로 미국 헌법 제정 이후 최초로 의료분야 특허를 따낸다. 조지 워싱턴 대통령도 이를 샀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퍼킨스는 어떤 원리로 치유가 되는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의사협회의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당시 유행하던 천연두 치료에 도전했다. 스스로 천연두에 걸려 치료하는 방법을 썼다. 안타깝게도 그는 치료에 실패해 발병 한달 만에 세상을 떴다. 퍼킨스가 세상을 떠난 지 1년 뒤 영국 의사 존 헤이가스가 가짜 치료봉으로 환자들이 치료되는 효험을 확인하러 나섰다. 그는 전기가 통하지 않는 뼈 점토 담배파이프 같은 것에 색깔만 칠한 가짜 치료봉으로 검증했다. 실험 결과 가짜 치료봉으로 치료받은 환자
03.28
32부작 KBS 대하사극 ‘고려거란전쟁’이 3월 초 막을 내렸다. 고려 현종 시기 거란(요나라)의 거칠고 집요한 침략을 격퇴하는 고려의 분투를 현장감 있게 그렸다는 평가가 따른다. 사실왜곡 등 뒷말이 없지 않았지만 고려사에 대한 일반의 관심을 환기하게 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강동 6주 확보’라는 신의 한수가 고려가 동아시아 국제정치의 풍운을 좌우할 수 있게 된 전략적 전환점이었다는 점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것이다. 실학자 안정복(安鼎福)의 말대로 이 지정학적 거점이 없었다면 고려는 거란의 요구를 들어주느라 갖은 고난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거란의 연이은 침략에 나라를 지탱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당시 고려와 거란의 충돌은 906년 거대제국 당(唐)의 붕괴 이후 몰아닥친 지정학적 격동과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916년 거란족이 요(遼)를 건국한 후 926년 발해 멸망, 936년 고려의 재통일 등 10년 단위로 벌어진 대사건이 보여주는 대로다.
03.27
‘임기내 블록버스터 혁신신약 x개’ 타령은 한국 역대정부의 바이오산업 정책의 단골 레퍼토리다. 진전이 있다면 x개의 수자가 갈수록 줄어들어 이번 정부에서는 2개라는 점이다. 블록버스터 타령보다 필자가 듣고 싶은 노래의 곡목은 ‘단기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바이오 이전연구(Translational Research)에 연 x조원씩 투자’다. 그런데 이번 정부는 외환위기 때도 줄이지 않았던 R&D 예산을 깎는 용맹함을 보여 정부에 대한 기대는 아예 접었다. 지금으로선 민간의 동력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민간이 할 수 있는 게 있고 할 수 없는 게 있다. 대규모 장치산업인 바이오 복제약생산과 위탁생산은 한국에서 201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었지만 벌써 세계수준에 도달했다. 반도체산업과 자동차산업을 일궈낸 한국의 기업들이 못할 이유가 없는 분야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약개발은 다르다. R&D의 성과물인 지적재산권이 확보되어야 민간투자가 들어올 수 있다. 신약개발을 위한 R&D에는
03.26
생성형AI가 문장구사 능력까지도 갖춘 것을 보고 놀라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래서인지 AI디지털 경영에 열을 올리는 기업들도 늘어났다. 기계가 어떻게 언어능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을까. 기계에 무언가를 학습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성형AI는 일반인들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난해한 것 중 하나로 ‘파라미터(parameter)’라는 개념이 있다. 결론에 이르기까지 중간과정에서 활용되는 매개변수라는 뜻이다. 그런데 생성형AI에 무려 1조개의 파라미터가 사용된다는 말은 판단 정확성 향상 과정에서 최소한 수억회 계산을 거친다는 의미다. 이게 사람의 인지능력을 따라오지 못하는 기계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컴퓨터 계산능력의 막강함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오픈AI가 챗GPT를 출범시키기 전 1년여에 걸쳐 악성 데이터를 걸러내는 작업을 대규모로 전개했다는 사실이 작년 이맘 때 공개됐다. 주로 케냐 인력들이 3교대로 하루 9시간씩 일했다고 한다. 이걸 수작업으로 했다면 10년은 족히
03.25
지난 2월 칼럼에서 정치는 생물이라고 썼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정권심판론이 강했다. 이로 인해 집권당인 국민의힘이 4월 총선에서 패배할 것 같았다. 그러나 지난 1월과 2월 제1야당인 민주당의 공천난맥상으로 국민의힘의 승리가 점쳐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이에 총선 결과가 오리무중이라고 썼던 것이다. 역시 정치는 생물. 이번 총선은 정권 중반에 치러지는 선거이기에 공천 전쟁이 마무리 국면으로 들어가면서 다시 정권심판에 무게가 실리기 때문이었을까. 공천 막판 민주당만큼이나 국민의힘 공천에 문제가 많다는 뉴스가 이어졌다. 야권의 이채양명주(이태원 참사, 채수근 상병, 양평고속도로, 명품백 수수, 주가조작)와 입틀막 정부에 대한 공세가 정권심판론을 자극하면서 다시 민주당 승리가 점쳐지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22일 공개한 3월 3주차 조사에서 ‘야당 후보 당선돼야 한다’가 51%로 ‘여당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36%)를 크게 앞섰다. 이에 보수언론에서도 국민의힘의 수도권 참
03.21
검찰공화국이라고 한다. 정권에 비판적인 인사들 목소리이다. 그럴 만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물론 여당 대표격인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도 검사 출신이다. 방송통신위원장 금융감독원장과 대통령실 고위직들도 줄줄이 검사 출신이다. 게다가 서초동을 떠난 검사들이 이번에는 여의도에 둥지를 틀 기세다. 윤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이원모 인사비서관과 주진우 법률비서관이 총선에 나선다. 이들을 포함해 11명의 검사 출신이 국민의힘 후보로 초선에 도전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입인 유영하 전 인천지검 검사도 있다. 위성정당 국민의미래 후보까지 합치면 12명이다. 그 뿐인가. 원희룡 전 국토부장관과 권성동 전 원내대표와 권영세 전 통일부장관도 전직 검사이다. 여당은 그야말로 서초동 출신이 베테랑부터 정치 신인까지 망라돼 있다. 그렇다고 이것 만으로 검찰공화국이라고 칭하기는 어렵다. 검찰정권이라고 부르는 건 몰라도. 헌데 야당이 가세해 진짜 검찰공화국을 완성하려는 듯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지역구에 이성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