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훈 칼럼

한국 과학자들이 노벨상을 못받는 이유

2024-04-09 13:00:01 게재

노벨상의 계절이 반년 앞으로 다가왔다. 대한민국 과학자의 현실은 노벨상 수상 대신 ‘왜 나는 노벨상을 못 받는가?’를 주제로 반성문을 쓰는 것에 더 익숙하다. 국가 차원에서 노벨상을 못 받는 이유는 해마다 치밀하게 분석되고 있으니 이번에는 과학자 개개인들이 밝히는 ‘내’가 노벨상을 못 받는 이유를 알아볼 때다.

필자는 지난 겨울방학 때 미국 산타바바라대학 내에 소재한 이론물리학연구소를 한달 가까이 방문했다. 그곳에 있는 교수 연구원들과 대화하며 좋은 연구 주제를 도출한 뒤 귀국하려는 계획이었다.

태평양 바다가 창문 밖으로 햇빛을 받아 아름답게 반짝이는 교수 연구실에서 필자를 포함한 몇명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는 기존 이론에 대한 비판적 복습으로 시작해 새로운 주제 발굴에 대한 난상 토론으로 이어졌다. 교수가 갑자기 한마디를 던진다. “이해가 안되네!(I don’t understand)” 이미 정설로 알려진 이론을 대학원생 한명이 설명하는 걸 듣다 반사적으로 내뱉은 한마디였다. 상대론적인 상황과 비상대론적인 상황에서 전자의 거동이 달라진다는 학생의 설명이 그의 물리학적 감수성에는 거슬렸던 것이다. 그때 이해가 안 된 문제는 필자가 귀국한 지 석달이 지난 지금도 원격 화상회의를 통해 논쟁 중이다.

과학은 아무도 이해 못하는 2% 먹고 자라

필자는 그 교수만큼 자신있게 “모른다” “이해가 안된다”고 말하지 못한다. 초등학교 입학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전교 1등만 한 탓이다. 요즘 유행하는 인공지능 학습 관점에서 말하자면 필자의 뇌를 구성하는 뉴런은 ‘모른다’가 아닌 ‘안다’에, ‘이해 못한다’ 대신 ‘이해한다’라는 답변을 할 때 가산점을 받으면서 훈련되어 왔다. 필자의 뇌와 함께 인성조차 그렇게 학습됐고, 이미 학습된 뉴런은 이해가 안되는 것을 안된다고 말해야 할 새로운 환경의 입력값이 들어올 때도 ‘안다’로 반응하려 한다.

대한민국을 유교국가라고 비아냥거리지만 정작 공자는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해야 진짜 아는 것(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이라고 했다. 필자는 ‘모르는 걸 모른 체하고 아는 것만 아는 체’하는 반쪽짜리 유교관념 속에 키워졌다. 98%를 이해하고 2%를 이해 못하는 사람은 98점짜리 답안지를 만들 수 있고 어떤 시험이든 합격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은 아무도 이해 못하는 2%를 먹고 자란다.

그 교수는 아주 적은 학과의 행정업무에도 한숨을 쉬며 투덜거렸다. 필자를 포함한 한국 연구자들은 그보다 훨씬 부지런히 살아왔고 그래야만 했기 때문에 그의 한숨이 투정으로 보인다. 부지런함의 대부분은 연구가 아닌 잡무 수업 회의와 사회활동이다.

필자가 만난 그 교수는 한 학기에 한 과목을 가르친다. 강의가 있는 학기면 연구에 집중할 수가 없다며 투덜거린다. 그런데 그의 일정표는 빽빽하기만 하다. 일단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세미나를 관리하고 참석한다. 매주 한번씩 열리는 세미나를 통해 최신 물리학의 흐름을 접한다.

필자 또한 하버드대학에서 안식년을 보낼 때 세미나만 듣다가 하루가 후딱 가는 경험을 종종 했다. 하버드는 최신 최고급 지식이 가장 활발히 판매·유통되는 곳이다. 산타바바라는 보스톤에 비하면 매우 한적한 곳이지만 그 정도 수준의 세미나라도 운영하는 곳이 대한민국에는 없다.

공부는 ‘각자 알아서‘ 하는 것이란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누구를 불러 강의를 듣고 직접 대화하며 배우는 방식에 익숙하질 않다. 간혹 만나보기 쉽지 않은 훌륭한 연사가 와서 세미나를 하더라도 당장 자기 연구와 관계없는 주제라면 참석 안하는 게 한국 대학원생과 교수들 사이에는 상식으로 통한다.

산타바바라의 그 교수는 세미나가 없는 날엔 매일 두세시간씩 학생이나 박사후 연구원들과 지적대련을 한다. 젊은 연구자들의 아이디어를 경청한 뒤 한발 더 진전시킬 방향을 제시하는 게 그의 역할이다. 운동선수로 치자면 매일 세시간씩 기초체력훈련과 실전훈련을 젊은 선수들과 함께 하는 셈이다.

그렇게 30년 넘게 축적된 그 교수의 내공은 필자의 눈에는 경탄의 대상이지만 그가 그동안 쌓아온 수련과 집중도를 따져보면 오히려 당연하다. 미국의 일류 과학자들은 이런 실전훈련을 매일 한다. 그들이 원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들과 같이 일하겠다고 끊임없이 전세계에서 몰려드는 인재들을 상대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

수준 높은 지적공동체 속에 가두어 둬야

마이클 프리드먼은 필즈상을 받은 천재 위상수학자이자 최근까지 마이크로소프트가 운영하는 양자컴퓨터연구소 스테이션-Q의 소장을 맡았다. 그의 인터뷰엔 이런 대목이 나온다. “회사에서 소장 자리를 제안했을 때 내가 요구한 건 나만의 연구시간을 충분히 보장해 달라는 것이었어요. 막상 소장으로 와 보니 내 개인 시간이 너무 많아 오히려 외로울 지경이더군요.”

과학자에게 최적의 환경은 산타바바라의 그 교수와 프리드먼처럼 수준 높은 지적공동체를 만든 뒤 그 속에 그들을 외로울만큼 ‘가두어 두는 것’이다.

성균관대학교 교수 물리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