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7
2024
‘임기내 블록버스터 혁신신약 x개’ 타령은 한국 역대정부의 바이오산업 정책의 단골 레퍼토리다. 진전이 있다면 x개의 수자가 갈수록 줄어들어 이번 정부에서는 2개라는 점이다. 블록버스터 타령보다 필자가 듣고 싶은 노래의 곡목은 ‘단기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바이오 이전연구(Translational Research)에 연 x조원씩 투자’다. 그런데 이번 정부는 외환위기 때도 줄이지 않았던 R&D 예산을 깎는 용맹함을 보여 정부에 대한 기대는 아예 접었다. 지금으로선 민간의 동력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민간이 할 수 있는 게 있고 할 수 없는 게 있다. 대규모 장치산업인 바이오 복제약생산과 위탁생산은 한국에서 201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었지만 벌써 세계수준에 도달했다. 반도체산업과 자동차산업을 일궈낸 한국의 기업들이 못할 이유가 없는 분야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약개발은 다르다. R&D의 성과물인 지적재산권이 확보되어야 민간투자가 들어올 수 있다. 신약개발을 위한 R&D에는
03.26
생성형AI가 문장구사 능력까지도 갖춘 것을 보고 놀라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래서인지 AI디지털 경영에 열을 올리는 기업들도 늘어났다. 기계가 어떻게 언어능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을까. 기계에 무언가를 학습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성형AI는 일반인들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난해한 것 중 하나로 ‘파라미터(parameter)’라는 개념이 있다. 결론에 이르기까지 중간과정에서 활용되는 매개변수라는 뜻이다. 그런데 생성형AI에 무려 1조개의 파라미터가 사용된다는 말은 판단 정확성 향상 과정에서 최소한 수억회 계산을 거친다는 의미다. 이게 사람의 인지능력을 따라오지 못하는 기계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컴퓨터 계산능력의 막강함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오픈AI가 챗GPT를 출범시키기 전 1년여에 걸쳐 악성 데이터를 걸러내는 작업을 대규모로 전개했다는 사실이 작년 이맘 때 공개됐다. 주로 케냐 인력들이 3교대로 하루 9시간씩 일했다고 한다. 이걸 수작업으로 했다면 10년은 족히
03.25
지난 2월 칼럼에서 정치는 생물이라고 썼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정권심판론이 강했다. 이로 인해 집권당인 국민의힘이 4월 총선에서 패배할 것 같았다. 그러나 지난 1월과 2월 제1야당인 민주당의 공천난맥상으로 국민의힘의 승리가 점쳐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이에 총선 결과가 오리무중이라고 썼던 것이다. 역시 정치는 생물. 이번 총선은 정권 중반에 치러지는 선거이기에 공천 전쟁이 마무리 국면으로 들어가면서 다시 정권심판에 무게가 실리기 때문이었을까. 공천 막판 민주당만큼이나 국민의힘 공천에 문제가 많다는 뉴스가 이어졌다. 야권의 이채양명주(이태원 참사, 채수근 상병, 양평고속도로, 명품백 수수, 주가조작)와 입틀막 정부에 대한 공세가 정권심판론을 자극하면서 다시 민주당 승리가 점쳐지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22일 공개한 3월 3주차 조사에서 ‘야당 후보 당선돼야 한다’가 51%로 ‘여당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36%)를 크게 앞섰다. 이에 보수언론에서도 국민의힘의 수도권 참
03.21
검찰공화국이라고 한다. 정권에 비판적인 인사들 목소리이다. 그럴 만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물론 여당 대표격인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도 검사 출신이다. 방송통신위원장 금융감독원장과 대통령실 고위직들도 줄줄이 검사 출신이다. 게다가 서초동을 떠난 검사들이 이번에는 여의도에 둥지를 틀 기세다. 윤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이원모 인사비서관과 주진우 법률비서관이 총선에 나선다. 이들을 포함해 11명의 검사 출신이 국민의힘 후보로 초선에 도전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입인 유영하 전 인천지검 검사도 있다. 위성정당 국민의미래 후보까지 합치면 12명이다. 그 뿐인가. 원희룡 전 국토부장관과 권성동 전 원내대표와 권영세 전 통일부장관도 전직 검사이다. 여당은 그야말로 서초동 출신이 베테랑부터 정치 신인까지 망라돼 있다. 그렇다고 이것 만으로 검찰공화국이라고 칭하기는 어렵다. 검찰정권이라고 부르는 건 몰라도. 헌데 야당이 가세해 진짜 검찰공화국을 완성하려는 듯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지역구에 이성윤
03.20
최근 우파 정치인, 보수주의 학자, 언론 및 산업계 인사들의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역공이 거세다. 이들 입장에서 마치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사회주의 운동처럼 보이던 ESG 흐름에 대한 반작용이다. ESG의 세요소 중에서도 개념과 현실적 경영수단 등이 애매한 사회(S) 부문이 가장 공격에 취약하다. 기후변화 이슈 등 환경문제에 비해 노동 인권 성평등 등 사회 이슈는 상대적으로 우파 보수정권이나 산업계에서 보기에는 중요성이 과장되었다고 단정하기 쉽다. 대표적 사례가 반DEI 운동이다. DEI는 다양성(diversity) 형평성(equity) 포용성(inclusion)을 의미하는데 ESG 중 사회 성과 평가의 대표적 요소다. DEI 운동은 1960년대 미국의 차별금지법 제정을 계기로 사회운동의 전면에 등장했고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 이후 급증했다. ‘블랙 라이브스 매터(BLM,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번지면서 구글 나이키 웰스파고와
03.19
15일부터 3일간 러시아는 6년 임기의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약 9만6000개 투표소에서 실시된 투표는 푸틴에게 6년의 임기를 더해준 형식적 절차에 불과했다. 24년 장기독재정권을 유지해온 푸틴의 임기는 이제 2030년까지이지만 거기서 끝날지 의문이다. 한편 이번 대선은 푸틴의 독재체제에 항거하다 2월 17일 형무소에서 사망한 알렉세이 나발니를 다시 소환했다. 대중의 잠재적 지지를 받았던 나발니는 푸틴에게 사실상 정적이었다. 푸틴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선거 한달을 앞두고 사라졌으니 한숨 놓았을지도 모른다. 얼마나 대조적인 권력게임의 승패 결말인가. 향년 47세 나발니의 죽음이 더욱 비극적인 것은 그가 죽은 곳과 사망원인이다. 그는 악명높은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반체제 소설가 솔제니친이 스탈린 시절 시베리아 강제노동 수용소를 그린 소설 ‘수용소군도(Gulag)’를 연상시키는 극한의 유형지다. 그는 2020년 독극물 '노비촉’ 중독으로 독일에서 치료를 받고 귀국하자
03.18
계통한계가격(SMP, system marginal price)은 전기 1kWh를 만드는 데 필요한 연료비로 한전이 전기를 구매할 때 발전사에 지불하는 전력도매가격이다. 전력수요가 낮을 때는 우라늄이나 석탄과 같은 저렴한 연료의 가격이 SMP를 결정한다. 반면 전력수요가 높을 때는 천연가스나 석유 등 비싼 연료의 가격이 SMP를 결정한다. 이렇게 SMP는 전력수요에 비례한다. 우리나라는 하루 전에 예측된 전력수요에 맞춰 다음날 시간대별 24개의 SMP를 정해 공개한다. 그런데 지난 2월의 설 연휴 기간 동안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획기적인 일이 발생했다. 일요일이었던 11일 13시와 대체휴일이었던 12일 13시의 SMP가 0이 된 것이다. 설 연휴로 공장들이 쉬면서 전력수요는 크게 감소한 반면 연료비가 0원인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의 발전량은 크게 증가해 일시적으로 ‘SMP=0’이 나타난 것이다. 물론 일부 원전 석탄발전소 천연가스발전소가 전기를 공급했지만 이것들은 필수적으로 가
03.14
R&D 예산 대폭 삭감에 이어 의대 정원 연간 2000명 증원 소식이 연달아 터져나오면서 과학기술계는 유례없이 우울한 상황에 처해있다. 예산 삭감이 과학의 현재를 우울하게 했다면 의대 정원 확대는 그 미래를 암울하게 한다. 가뜩이나 연구비 삭감 소식에 이공계 문을 두드릴까 말까 망설이던 젊은이들에게 넓어진 의대 입학 기회는 소원을 이뤄주는 마법사가 산다는 오즈로 가는 노란 벽돌길처럼 유혹적일 것이다. 2000명 의대 증원은 자연과학이나 공학 전공으로 대학을 들어갔을 학생 2000명이 의대로 진학한다는 의미다. 기존의 의대 선호 현상을 고려하면 잠재적 이공계 진학생 중 최상급 실력을 가진 젊은이 2000명이 의대의 길을 택할 것이다. 물론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소신껏 자연과학이나 공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는 이전보다 많은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미국에서도 좋은 의대를 가기 위한 학부생들의 노력은 피눈물이 난다. 그러나 의대 때문에 물리학이나 전자공학을 할 인재의 씨가 마른다는
03.13
총선을 불과 한달 앞둔 시점에 정부가 이종섭 전 국방장관의 호주대사 임명과 피의자 출국금지를 억지로 해제해 기어이 10일 출국, 부임시킨 사건이 터져나왔다. 이는 국내 뿐 아니라 호주 교포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수사중인 피의자를 대사로 파견한 것부터가 외교적 상식을 어긴 일이다. 그런데다 사건내용이 군 장병의 사망사건을 덮고 정당한 수사를 막은 ‘부도덕한’ 것이어서 군의 명예와 도덕성을 중시하는 호주사회에 살고있는 한국 동포들이 창피함을 금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시드니에서는 교민단체 회원들이 9일 집회를 열고 “윤석열 대통령은 이종섭 전 국방장관의 호주대사 임명을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13일에는 시드니 한국대사관 앞에서 다시 집회를 계속할 예정이라고 한다. 공수처로부터 출국금지를 당한 이 전 장관을 윤석열정부는 전격적으로 호주대사로 임명했다. 출국까지 6일이 걸린 초고속파견이다. “도피 부임” “도주 대사” 논란이 일자 대통령실은 “이종섭 대사
03.12
세계 곳곳에서 부동산거품이 터지면서 해외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에 투자했던 국내 금융업체들이 유탄을 맞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S&P는 지난주 말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의 신용등급전망을 강등했다. 이들이 국내외 부동산투자에서 막대한 손실 위험에 직면했다는 이유에서였다. S&P는 특히 미래에셋이 수천억원대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진 해외부동산 투자에 대해 “해외대체투자 관련 신용위험이 크다고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 증권사들의 해외 상업용 부동산 익스포저는 주로 미국과 유럽에 분포되어 있다. 2023년 4분기 미국의 사무실 공실률은 더딘 사무실 점유율 회복으로 인해 약 20% 수준으로 상승했다”고 덧붙였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금융사의 해외 부동산 대체투자 잔액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56조4000억원에 달한다. 투자대상은 대부분 상업용 부동산이다. 대다수 투자지역에서 상업용 부동산값이 급락하면서 막대한 손실이 우려되고 있다. S&P는 국내 부동산 시장에 대
03.11
3월 주주총회 시즌이다. 연초부터 코리아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가 증시 화두로 등장하고, 지난달 정부가 기업 밸류업(가치 제고) 지원 방안을 발표하자 여느 해보다 주주 환원과 주주가치 제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하지만 기업들은 밸류업의 중심에 자리해야 할 지배구조 개선과 그 핵심 요소인 이사회의 투명성과 독립성 강화에 역주행하고 있다. 30대 그룹이 올해 새로 선임하는 사외이사 열 중 넷은 관료 출신이다. 특히 그 중 검사 판사 출신이 가장 많다. 대기업들이 경영감시라는 사외이사 제도의 도입 취지와 달리 권력기관의 전관(前官)들을 영입해 대관(對官) 업무에 활용하고 있음이다. 그동안 사외이사 후보에서 비중을 늘려온 기업 경영인 출신은 줄었다. 현장 경험이 풍부한 기업인 출신을 많이 데려오는 미국과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매출 상위 30대 그룹 계열사 237곳 중 4일까지 주총 안건을 올린 71곳을 분석한 결과 신규 추천 사외이사
03.07
미국 대선판이 달아오르고 있다. 연방대법원이 지난 4일 트럼프의 대선 후보 출마자격을 박탈한 콜로라도주 대법원 판결을 뒤집은 거다. 이어 니키 헤일리 공화당 주자가 사퇴하면서 전현직 대통령 리턴 매치가 사실상 확정됐다. 현대의 대부분 선거가 그렇듯이 결국 경제가 승부를 가를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민자를 포함한 국경 문제와 낙태권이 표심의 표적이 된 듯하다. 정당 기반의 선명한 정책대결의 한 단면이겠다. 물론 네거티브도 있다. 트럼프측은 바이든의 고령을 문제 삼는다. 선거일인 11월5일 기준으로 바이든은 81세, 트럼프는 78세이다. 도긴개긴 아닌가. 바이든과 동갑인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올드보이가 아니라 스마트보이”라고 한다. 비록 트럼프의 후보 자격은 유지됐으나 진행중인 여러 재판의 결과에 따라 여론의 향배는 달라질 수 있다. 피의자 대선 후보인 셈이다. 한국의 총선판도 미국 대선과 얼핏 닮았다. 윤석열 현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대 대선에 이어 리턴
03.06
근자에 유달리 한국 반도체산업계에 위기경보라고 할 만한 소식이 잦다. 인공지능(AI)이 본격화되기 전 반도체시장은 중앙처리장치(CPU)와 메모리시장으로 구성됐고, 양 시장은 인텔과 삼성전자가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2018년 미국 트럼프정부가 반도체를 포함한 첨단산업에서 중국 견제를 본격화할 때만 해도 한국의 반도체산업이 가장 큰 수혜자로 꼽혔다. 한국의 첨단 제조업에 대한 중국의 기술추월이 예상되고 있던 터라 미국의 견제가 중국의 추월을 늦출 수 있을 거라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2022년 말 챗GPT가 등장하고 뒤이은 AI의 급속한 발전과 진화로 글로벌 반도체시장 판도가 확 바뀌었다. CPU 대신 그래픽처리장치(GPU)가 그 자리에 들어서고 D램 대신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D램을 여러층 쌓아 올린 고용량 메모리)가 자리를 차지했다. 지금 반도체시장의 주연은 GPU의 엔비디아와 맞춤형 반도체를 만드는 파운드리의 대만 TSMC다. 삼성전자가 주연에서 문득
03.05
동양 역사서의 근간인 ‘사기’를 쓴 사마천은 춘추필법을 따랐다. 춘추필법은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해 대의명분을 좇아 준엄하게 기록하는 논법이다. ‘춘추’를 지은 공자의 역사서 집필 방식이다. 공자는 역사를 기술하면서 정명(正名)관에 따라 역사적인 인물들에 대한 공과와 시비를 명백히 가려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선왕의 업적을 평가할 때 이 원칙을 예외없이 지켰다. 사마천은 춘추의 의리가 행해지자 천하의 난신적자들이 두려워했다고 평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을 계기로 윤석열정권과 보수진영의 이승만 띄우기가 도를 넘었다. 춘추필법은커녕 상궤를 이탈해도 한참 벗어났다. 윤 대통령은 영화 관람 후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라고 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김영호 통일부장관, 원희룡 전 국토부장관을 비롯한 상당수 정부·여당 인사들이 연일 영화관을 찾아 인증사진을 남기고 이승만 재평가 메시지를 던졌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경복궁 옆 송현광장 알짜배기
03.04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여야의 공천 작업이 끝나간다. 총선이 코앞이니 어쨌든 공천은 곧 마무리될 것이고, 이때부터는 누가 누구와 맞붙는다는 식의 대진표 뉴스가 그동안의 볼썽사납던 공천잡음 뉴스를 대신하게 될 것이다. 이번에 새삼 확인하게 된 사실은 정치인에게 공천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가치라는 점이다. 공천을 못 받으면 국회의원 배지는 사실상 물 건너가는 것이고, 배지 떨어진 정치인은 어디 가서 사람 취급도 제대로 못 받는다는 게 여의도의 속설이다. 그러니 공천장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마다 않고 또 서슴지 않는 정치인들에게 응원은 못해도 양해는 해 줄 수 있다. 공천에서 탈락한 정치인이 분을 이기지 못해 앙앙불락하며 어제의 동지들을 향해 있는 힘 다해 침 뱉는 모습도 그러려니 하고 보아줄 수 있다. 정당 입장에서 어느 선거구에 어떤 후보를 내보낼지 결정하는 공천은 당의 명운이 걸린 문제다. ‘이기는 공천’이든 ‘혁신 공천’이든 나름의 전략과 목표 아래 누구
02.29
융합이라는 화두가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15년 전 일이다. 대학마다 각종 융합기술원이 설립되면서 융합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던 때다. 그러나 4차산업혁명이란 개념이 2016년에 처음 등장하기까지는 뜸만 들이다 말았다. 4차산업혁명 개념의 핵심에 빅데이터 블록체인 인공지능(AI)이라는 세 단어가 포함되면서 산업 각 분야에서는 그 단어의 의미를 자체적으로 살려보려고 검토하는 시대로 돌입했다. 그 셋은 소프트웨어(SW)라는 한 단어로 대변 가능한 것들이다. 하드웨어(HW) 중심이었던 3차산업시대를 넘어 SW 중심으로 가자고 선언했던 것이 4차산업혁명의 주제였다. 산업혁명이 몇 차인지는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난 후 나중에 붙여진 이름들이다. 그런데 4차산업혁명이라는 이름은 3차산업혁명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먼저 들고 나왔다. 왜 그랬을까. 산업 간 융합이 시대적 요청이었기 때문이다. 그 뜻을 이해하려면 산업 분야 전체에서 융합 촉매제 역할을 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부터 먼저 따
02.28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고 시인은 노래했다. 컴퓨터는 정보를 처리하는 전자기기다. 정보를 처리하는 게 목적이고 기기는 그 수단이다. 정보를 처리하는 논리적 명령들의 묶음이 소프트웨어다. 이 명령들은 수학의 2진법을 활용해서 예와 아니오를 반복하면서 이루어지는데, 스위치의 켜짐과 꺼짐으로 예와 아니오를 구현하는 기기가 하드웨어다. 이를 시인의 언어로 다소 희화화해서 얘기하자면 하드웨어는 쇠붙이고, 소프트웨어는 가슴이다. 한국의 전자산업은 하드웨어에서는 경쟁력이 있으나 소프트웨어는 약하다. 휴대폰은 잘 만들지만 스마트폰을 작동시키는 운영체제는 만들지 못한다. 컴퓨터 기기는 잘 만들지만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 같은 운영체제는 만들지 못한다. 물론 하드웨어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스마트폰을 만드는 회사가 앱을 만드는 회사보다 돈을 더 잘 벌 수 있다. TV수상기를 만드는 회사가 방송사보다 돈을 더 잘 벌 수 있다.
02.27
민주화 운동가이자 저항시인 박노해는 “민주주의는 시끄러운 것, 조용한 나라는 독재의 나라, 살아있는 나라는 권력자에게 언제든 묻고 감시하는 나라”라는 시를 남겼다. 그렇다!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 나오기에 주권자들이 요구하며 시끄러워야 민주주의의 진짜 모습이다.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도리어 입을 틀어막는 나라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나라다. 주권자의 시끄러움을 무질서와 불법으로 매도하고 공권력을 동원해 막는 것은 독재자들의 전형적인 행태다. 오늘날 대의제가 효율성을 높여주는 좋은 제도이지만 직접 민주주의의 정신을 잃어버린 대의제는 민주주의의 흑화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또 다른 측면에서의 문제도 있다. 국민이 요구를 포기하고, 듣지 않는 권력에 무력감을 느끼며 정치에 대해 냉소하고 침묵하면 그것 역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베르나르 마냉은 오늘날 대의 민주주의를 두고 ‘청중 민주주의(audience democracy)’라고 부르면서 시민이
02.26
정치는 분명 생물인 것 같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4월 총선에서 집권당인 국민의힘의 승리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대세였다. “윤석열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정권심판론이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국민의힘에 표를 주어야 한다는 정부지원론을 크게 앞섰던 것이다. 지난해 10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대패하고, 지난해 11월 명품백 사건이 터지자 여권 내부에서도 “내년 총선은 질 것이 뻔하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명품백 사건으로 여론이 더 악화된 윤석열 대통령을 뒤로 감추고 한동훈 전 법무장관을 비대위원장으로 전면에 세우는 등 정권심판 표적을 바꿨다. 그리고 최근 제1야당인 민주당이 공천 혼란을 보이면서 야당심판론을 키우고 있어 4월 선거에서 국민이 누구 손을 들어줄 것인지 오리무중이라는 분석이 많아졌다. 국민 다수 마음속 생각은 정권심판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국민의힘이 공천 전장에서 선전하고 민주당이 고전하는 것은 웬일인가. 물론 보수언론 등 다수 매스컴이
02.22
선거 구호는 시대를 반영한다.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자유당 이승만정권의 독재에 대한 야당의 절규였다. 단 여덟자였으나 울림은 컸다. “갈아 봤자 별 수 없다”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눈가림이 기승을 부렸지만. 정책을 이끄는 여당은 장밋빛 청사진을 흔든다. 이른바 개발독재 시대에 천불소득 만불소득 마이카시대를 내세워 현실의 고달픔에 진통제를 놓았다. 야당은 독재타도와 민주회복으로 맞섰고. 방송인 이계진은 저서 ‘뉴스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딸꾹’에서 여야 관계에 대한 에피소드를 전한다. 여당의 정책 발표 다음 “이에 대해 야당은”까지 읽었는데 이어지는 원고가 안 보인다. 순간적으로 “반대한다고 말했습니다”라고 해 방송사고 위기를 넘겼다는 거다. 민주화 시대에는 국정기조와 선거전략이 한데 섞였다. 군부독재를 청산한 문민정부, 국민주권을 지향한 국민의 정부, 그들만의 정치가 아니라 시민 주도 참여정부로 이어졌다. “부자 되세요”로 탐욕을 자극한 자칭 실용 정부도 있었고.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