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 아닌 불평등 조장 성교육"
청소년 참여 '학교 성교육정책 토론' … '성교육 표준안'이 현장 혼선 유발
#"매년 비슷한 내용을 주입식으로 전달받는 학교 성교육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 고민해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만약 연애가 주제라면 우리는 연애를 왜 하는지, 데이트 비용은 왜 꼭 남자가 내야 하는지 등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생각해보는 식으로요." (고등학생 B양)
25일 오후 한국청소년성문화센터협의회(협의회)와 유승희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은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대한민국 청소년 성교육 정책 바로세우기 대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 패널로 참석한 고교생 5명은 학교내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선 실용적이고 내실 있는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토론회에는 전국에서 550여명의 청소년, 학부모, 성교육교사 등이 참석했다. 협의회의 회원단체는 전국 54개 청소년성문화센터들이다.
◆"성폭력 책임이 여성에 있다는 편견 심어줘" = 이날 토론회에서는 학교 성교육의 '실용성'을 강조하는 학생들의 바람과 달리 교육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은 기존 제도보다 오히려 더 퇴보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야동, 자위 등 학생들이 주로 쓰는 말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청소년 성문화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성차별적 인식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겨 문제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남성의 성적 욕망을 정당화하고, 이에 대한 여성의 적절한 대처가 중요하다고 서술해 성폭력의 책임이 여성에게 있다는 편견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우옥영 보건교육포럼 이사장은 "교육부의 성교육 지침 등은 오히려 현장의 혼란을 유발시키는 측면이 있다"며 "본래 교육과정 외에 별도의 지침이 생겨난 것은 성교육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교육과정에 반영하기 어려웠던 상황의 산물이지만, 성교육 지침이든 성교육 표준안이든 교육과정에서 확실하게 위상을 잡지 않으면 보여주기식 교육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우 이사장은 또 "성교육 관련 법률이나 정부의 고시 간에 중복되는 부분도 적지 않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행정력이 낭비될 뿐만 아니라 성교육 과정이 파행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교육부 "검토 중, 당장 수정은 힘들어"= 교육부 측은 "현장에서 의견이 많이 올라오고 있는 상황"이라며 "전면 수정은 어렵고, 수정할 부분이 검토 중이다"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또 "이미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수정한 상황에서 당장 언제 바꾸겠다는 얘기를 하기 힘들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유승희 위원장은 "청소년성교육과 관련해 당사자인 청소년들과 현장을 담당하는 활동가와 각계 전문가의 목소리를 모아 관련 부처와 협의하여 올바른 청소년성교육 관련 입법과 제도개선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토론회 주제인 청소년 성교육 정책과 전혀 관련이 없는 주장을 펴는 일부 단체 회원들이 참석하여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이에 대해 협의회는 26일 성명을 내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협의회는 "이번 토론회는 동성애와 전혀 관련이 없이 최근 학교 내 교사에 의한 성폭력문제가 심각해짐에 따라 현안에 대한 근본적인 정책적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였다"며 "일부 사람들이 밑도 끝도 없이 이 토론회가 동성애를 옹호하는 단체가 주관을 한다며 토론회장에서 난동을 부렸다"고 말했다.
협의회는 또 "더 큰 문제는 아이들이 어렵게 교사에 의한 성추행 사례를 말하는 데 '왜 지켜만 보고 있었냐' '학교에는 얘기하고 토론회에 왔냐' 등 미성년인 청소년들에게 언어적인 폭력을 가하는 등 큰 상처를 줬다는 점"이라며 "국회의장은 청소년들에게 위해를 가한 이들을 즉각 공무집행 방해로 고발조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