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땀 한 땀 삶을 수놓는 그녀들의 이야기

분당 프랑스 자수 주부 동호회 ‘FRAZA’

2015-10-20 08:23:21 게재

매주 화요일, 분당 야탑동의 한 카페에서는 오색 빛깔 실을 바늘에 꿰어
삶의 고단함을 한 땀 덜어내고, 또 한 땀에 행복을 담아내는 주부들이 모인다.
깊어가는 가을의 중간에서 프랑스 자수로 두 번째 인생을 즐기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프랑스’와 ‘자수’ 합성해 탄생한 ‘FRAZA’

2년 전 김명애(도촌동)씨는 두 아들이 장성하자 텅 비어버린 듯한 집에서 무언가 소소하게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취미를 찾던 중 ‘프랑스 자수’를 만나게 되었다. 기본 테크닉을 익히고 난 후 많은 이들이 부딪히는 난관인 ‘도안그리기’가 20년간 유화를 그렸던 그녀에게는 더 재미있는 일이었다. 수를 놓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밑그림으로 그려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자수’에 푹 빠져 집안에 하나둘씩 자수 작품이 늘어나자 주변 지인들이 가르쳐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기본 스티치를 알려주면서 함께 프랑스 자수를 하는 사람들이 한 명에서 두 명으로, 두 명에서 네 명으로 불어났다. 밑그림을 그려주고 기본 스티치만 알려주었을 뿐인데 본인들의 개성을 곁들여 같은 재료로도 각기 다른 작품이 무궁무진하게 탄생했다.
“우리 아예 시간과 장소를 정해 놓고 정기적으로 모이는 게 어때요?” 누군가가 제안했고, 그것이 분당 프랑스 자수 주부 동호회 ‘FRAZA’의 시작이었다.

 

가족들이 행복해 하니 더욱 커지는 기쁨

처음에 몇 번 참석하다가 모임이 본격화 되자 꾸준히 참석하는 것이 힘들 것 같아 잠시 활동을 중단했다가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는 모임의 웃음메이커 정해림(이매동)씨는 “남편이 회사 바이어들을 만나기 위해 해외출장을 갈 때마다 작은 선물들을 가져가는데 한 번은 제가 만든 컵받침을 선물했어요. 폭발적인 반응이었죠. 그 후로 컵받침, 방석, 손지갑, 안경케이스 등 핸드메이드 선물 품목이 늘어났어요”라며 프랑스 자수로 인해 부부금슬까지 좋아지는 것 같다고 호탕하게 웃었다.
야탑동에 사는 김애란씨는 아들을 논산훈련소에 보내고 온 날 이 모임에 처음 오게 되었단다. 손에 들려있는 러그는 원래 있었던 것인데 밋밋한 것 같아 자수를 놓아 리폼하려고 가지고 왔단다. 그때 훈련소에 입소했던 아들이 얼마 전에 제대했다며 지금 만들고 있는 러그가 완성되면 콘솔 위에 올릴 거라고 했다. 아침저녁으로 찬바람 부는 요즘, 가족들이 집에 들어왔을 때 러그를 보며 포근함을 느끼면 좋겠단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한 번 빠지면 나올 수 없어

이숙자(야탑동)씨는 “우리 또래들은 중학교 가정시간에 프랑스 자수를 배웠기 때문에 누구나 와서 할 수 있는 취미에요. 재료값도 일주일에 커피 한두 잔 줄이면 얼마든지 전업주부들에게도 부담 없는 금액이고요. 무엇보다 회장님께서 본인이 전수해 주실 수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가르쳐 주시니까요.”
모임 내내 이숙자씨와 카드 지갑의 마감을 어떤 스티치로 할 것인가 머리를 맞대고 상의하던 양미라(이매동)씨는 “프랑스 자수의 세계는 문턱이 낮아 누구나 들어올 수 있지만 한 번 들어오면 나가는 문을 찾기 힘들만큼 매력적이지요. 가족들이 다 자는 밤늦은 시간까지 손에서 광목천과 바늘을 놓지 않고 수를 놓다 잠옷을 같이 꿰맨 경험도 있답니다”라며 웃었다. 양미라씨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마냥 조신하게 수만 놓으면서 가만가만 이야기할 것 같았던 ‘FRAZA’ 회원들의 목소리가 €프랑스 자수에 대한 자랑으로 점점 커졌다.

  

너와 함께 내 인생을 찾는 근사한 경험

모임에 조금 늦게 도착한 김미형(서현동)씨는 한 눈에 봐도 기성제품이 아닌 것이 분명한 독특한 에코 백을 메고 왔다. “이거요? 제가 세 자매인데 세 개 만들어서 자매들이 하나씩 메고 다니는 가방이에요” 그런데 김미형씨는 이제 ‘FRAZA’ 회원이 된지 6개월 남짓이란다. 누구나 하고자 하는 열의가 있고, 시간을 투자하면 된다고 김미형씨는 덧붙였다.
옆에서 김미형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회원은 “그런데 그냥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에요. 좋은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면서 엄마도 아내도 아닌 나를 찾는 근사한 경험이기도 해요.” 김미형씨가 도착하자 회원들은 모두 함께 손을 맞잡았다.
바로 그 시각, 대기업 입사시험을 치르는 한 회원 자녀의 합격을 함께 기원하는 것이었다. 바늘 한 땀에 주부들이라면 누구나 겪어보았을 외로움을 녹이고 또 한 땀에 엄마들이라면 가져보았음직한 자식에 대한 소망을 녹여 그녀들의 인생을 담아내고 있었다.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모임의 리더인 김명애씨는 이 모임이 어떤 형식에도 얽매이지 않고 누구나 들어와 편하게 배우고 본인의 작품을 만들어 갈 수 있는 동네 사랑방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천으로 만들어진 것은 그 어떤 것도 만들 수 있으니 참 실용적인 취미지요. 한 살이라도 젊고 눈 좋을 때 오세요. 스트레스 푼다고 괜히 쇼핑으로 돈 쓰지 말고요. 여기 오면 갱년기도 함께 극복할 수 있어요. 자식이 커갈수록 걱정 많아지고 남편 퇴직, 시부모님 노후문제로 스트레스 쌓일 때 생각을 비우고 수를 놓아보세요. 더디 가던 시간이 어느새 지나가고, 내 손에 내 작품만 오롯이 남아 있는 멋진 경험을 할 수 있답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앞치마에 가지런히 놓은 진솔한 한 땀 한 땀이 다시 보였다.
문의 010-5407-8439

문하영 리포터 asrai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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