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20년 전 일본과 닮았다

2015-12-31 10:10:31 게재

장기불황 시작 우려

GDP 증가율 등 같은 곡선

인구구조 일본과 판박이

내일신문 설문조사결과 경제전문가들의 92%가 '한국경제의 장기저성장을 경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의 장기저성장 가능성은 우리 경제의 경제성장률과 민간소비증가율 등 각종 지표가 20년전 일본의 그것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는 사실에서 확인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에 따르면 한국 명목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추이는 20년전 일본과 일치한다. 60~70년대(한국은 80~90년대) 높은 증가율로 볼록한 곡선에서 출발해 80년대(한국은 2000년대) 증가율 하락으로 내리막 곡선을 그리다가 90년대부터 20년 동안 0%대 저성장에 따른 일자형(-) 모양이다.

일본은 고도성장기 막바지인 1961년 명목GDP가 20%를 넘었다. 이후 15%대에서 등락을 거듭한 뒤 70년대 오일쇼크 이후 10%대로 떨어지는 곡선을 그렸다. 특히 80년대 5%대로 급락했고 장기불황인 '잃어버린 20년'의 시작인 1991년 이후 2~3%로 하락했다. 이후 일본은 10년 동안의 평균 성장률이 0.72%에 그칠 정도로 심각한 성장정체에 빠졌다. 이러한 성장정체는 20년 동안 계속됐다.


80년대초 한국 경제성장률은 3저 호황에 힘입어 25%를 넘었다. 80년대 15%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다가 90년대 10%대로 떨어졌다. 2000년대초 5~10% 사이에 있다가 2012년 5% 아래로 떨어졌다.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1%대까지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민간소비 증가율 분포도 한국과 일본은 20년 시차로 겹치고 있다. 민간소비 둔화는 생산 감소로 이어지고 투자 위축을 불러오며 경기 침체를 야기한다.

일본의 1985~1989년 민간소비 증가율은 4~8%였다. 이후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면서 민간소비 증가율이 2%로 떨어졌다. 일본의 장기불황이 시작된 것이다. 민간소비 증가율은 장기불황이 본격화하면서 0%대에 머물렀다.

한국 민간소비 증가율은 일본의 20년뒤인 2005~2009년 6~7%를 기록했다. 다만 금융위기인 직후인 2009년 2%를 갓 넘긴 증가율을 보였다. 2010년 일시적으로 4.4%를 기록한 뒤 2.9%(2011년) 1.9%(2013) 1.8%(2015년 3분기)로 하락세가 뚜렷하다.

15~64세 생산가능인구 수는 한국이 오는 2016년 3704만명으로 정점을 찍고 감소하게 된다. 2017년에는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총인구 대비 14%를 넘는 '고령사회'로 진입한다. 생산가능인구 곡선은 가운데가 볼록한 종 모양이다.

이 곡선은 20년전 일본과 일치한다. 다만 일본의 생산가능인구 수 정점은 8800만명에 육박하는 1995년이다. 생산가능 인구 수는 이후 종 오른쪽 윤곽 곡선을 따라 감소한다.

인구구조는 단기간 내에 변동이 어렵다. 10~20년 이후 변화 방향을 예측할 수 있다. 인구구조는 노동공급 투자 저축 경상수지 금리 주택가격 등 경제 전반에 영향을 주는 변수다.

한국이 20년 뒤 다다를 고령화 수준에 이미 도달해 있는 일본은 0%대 성장세에 머물러 있다.

부실기업의 비중이 커진 점도 20년전 일본과 비슷하다. 한국개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부실기업(좀비기업) 자산비중은 2013년 현재 전체 기업 자산의 15.6%에 이른다. 2010년에 비해 2.6%p 증가했다. 이 수치는 일본 좀비기업 비중이 1990년대 장기불황을 겪으면서 5% 안팎에서 15% 내외까지 급증한 점과 비교할 때 상당한 수준이다.

한국과 일본정부의 저성장에 대한 안이한 인식도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일본은 1994년 월례경제보고에서 부동산 거품 붕괴 이후 경기침체를 "조정과정에 있으며 일부 희망적인 움직임이 보인다"고 평가했다. 초기 대응을 하지 않았다.

최근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는 경제장관회의에서 "부동산 주식 등 자산시장과 창업 등에서 조금씩 역동성이 살아나고 있다"며 "저금리 저유가 등 대내외 여건 개선이 가계와 기업에 호재로 작용해 심리적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건국대 오정근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이미 저성장기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며 "경제구조뿐 아니라 역동성이 없는 사회라는 점에서도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닮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현재 여건이 20년전 일본에 비해 불리하다는 점도 위기감을 높인다. 일본은 당시 △1인당 GDP가 3만달러를 넘었고 △기초기술이 견고하며 △중국경제가 고성장시기였다. 우리는 아직 2만달러에 머물러 있고 부품 소재를 수입에 의존하며 중국경제 성장률이 낮아졌다는 불리한 조건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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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현주 기자 hjbeo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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