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보증금 투자하라는 '황당 정부'

2016-01-14 11:03:16 게재

월세전환한 서민자금 현실과 동떨어져 … 손실 우려에 실효성도 의문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한 서민들이 돌려받는 보증금을 펀드에 투자해 수익률을 올리겠다며 정부가 '전세보증금 투자풀 조성방안'을 추진한다.

남는 전세보증금을 효율적으로 운용해 높은 월세지출 부담을 정부가 줄여주겠다는 방안이다. 하지만 전세금을 올려줄 형편이 안돼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월세 전환한 서민들의 현실을 전혀 모르는 황당 정책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14일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경제관련 부처 합동보고에서 '내수·수출 균형을 통한 경제활성화 방안'을 주제로 이같은 내용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금융위는 '전세보증금 투자풀'을 추진한 배경에 대해 전세에서 월세로 주택시장이 구조적으로 변화함에 따라 임차인에게 의도하지 않은 목돈이 발생하는데 자금운용의 수익성과 안정성이 낮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금융위는 투자풀은 다양한 하위펀드에 자금을 적절히 배분해 운용수익을 높이고 운용수익을 월세 납부에 활용할 수 있도록 주기적 배당을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민간 연기금 투자풀의 수익률이 3.5% 정도이고 우정사업본부가 4% 정도의 수익을 올리고 있어 1~2%대의 예금보다는 높은 수익을 올릴 것이라는 게 금융당국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 같은 발상 자체가 현실을 모르는 탁상공론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월세로 전환한다고 해서 상당수 서민들이 여유자금을 갖고 있는 게 아니다"라며 "대출금을 갚는 등 여러 사용처가 있는데 그걸 국가가 맡아서 높은 수익률을 보장해주겠다는 것은 정말 이상하다"고 말했다. 그는 "서민들의 피같은 돈을 어떻게 자본시장으로 끌어들일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원금손실 가능성이 없도록 원금보장 수준으로 자금을 운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투자원칙을 무시한 비상식적인 발상이고 자본시장의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자산운용사의 한 관계자는 "남은 전세보증금이라고 하지만 언젠가는 꼭 써야 하는 자금인데 그걸 투자에 쓴다는 것은 원금 손실의 위험성이 있다"며 "원금손실을 최소화한다고 하지만 원금보장이 아니면 의미가 없고 원금을 보장한다고 하면 그건 투자원칙 위반"이라고 말했다.

김상조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본시장법에서 금융투자상품은 원금보장이 안되는 것을 말하는 데 손실 위험을 정부가 부담한다는 발상 자체가 1960~1970년대나 있을 법한 일"이라며 "정부가 투자하면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넌센스"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정부가 자본시장에 개입하면 할수록 자본시장의 역동성이 사라진다"며 "아무리 서민대책이라고 하지만 정부가 서민들의 투자위험을 떠안아주면서 자산운용을 해주겠다는 것은 자본시장 발전의 기본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용범 금융위 사무처장은 "아직 구상단계라서 완성단계는 아니다"라며 "금융위 내에서도 업무계획에 이 같은 방안을 넣을지 말지를 놓고 여러 의견이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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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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