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아이 손잡고 서촌 나들이 혹은 서울 나들이
방학을 맞아 딸과 엄마가, 또는 아들과 엄마가 여행을 떠나는 집이 많다. 치안이 좋고 거리가 멀지 않은 싱가폴 홍콩 등이 여행지로 선택된다.
해외 아름다운 도시를 여행하는 것은 근사한 일이지만, 말 통하고, 볼거리 먹을거리 풍성한 서울로의 여행도 강력히 추천하는 바다. 최근 여러 쉐프들의 활약으로 맛집 거리로 등극한 이태원이나 경리단길을 걸어도 좋고, 서래마을을 걷다가 맘에 드는 레스토랑에 들어가 보거나 고속터미널 지하상가를 둘러보는 것도 재미나다. 2박 3일쯤 숙소를 잡는다면 동행하는 아이의 나이에 맞는 박물관, 체험시설 등을 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꼭 하루 아이와 함께 상경한다면 3호선 경복궁역으로 가자. 광화문에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있는 빌딩숲을 바라보다 통인시장을 지나 서촌에 다다르면 골목골목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서울의 두 모습을 만나게 된다.
경복궁, 광화문 교보문고, 서촌?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통인시장까지 올라온 다음 시장길을 지나면 소위 ‘서촌’이라는 이름의 옥인동 사직동 효자동 일대의 골목길을 만나게 된다. 만약 경복궁에 가보지 못했다면 경복궁 먼저 들러 보기를 권한다. 서촌을 한참 걷다 보면 꾀가 나서 경복궁에 가지 못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와 함께라면 광화문 교보문고에 먼저 들러야 한다. 우리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규모와 종류의 서적에 감탄하겠지만, 5만 년 된 소나무로 만들었다는 독서테이블은 압권이다. 약 100명이 동시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다니 규모가 어마어마할 뿐 아니라 소나무의 수형이 그대로 살아 있는 테이블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좀처럼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있다. 참으로 탐나는 서점이 아닐 수 없다. 책을 읽고 고르기가 끝났다면 맛집이 모여 있다는 옆 건물 광화문 D타워에서 점심을 해결할 수 있다. 1층에는 간단히 허기를 채울 수 있는 메뉴의 미니상점도 모여 있다.
교보문고에서 나와 광화문광장을 지나 경복궁역에서 서촌으로 향하자. 서촌은 오래된 한옥과 트렌디한 모습의 카페, 공방, 또 작고 낡은 상점과 재래시장이 한 자리에서 동네를 이루고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통인시장은 기름떡볶이와 엽전 도시락으로 유명세를 탄 재래시장이다. 주말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다니기 어려울 지경이다. 통인시장을 빠져나오면 효자동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꽃집 뽀빠이화원과 재미난 가게 등 작은 상점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옥인오락실을 지나 건축양식이 독특한 종로구립 박노수 미술관을 만난다. 역시 주말에는 긴 줄을 기다려야 미술관을 관람할 수 있다. 더 올라가면 수성동 계곡 입구. 수성동 계곡을 따라 북악스카이웨이까지 오를 수 있지만 등산이 목적이 아니므로 계곡 쪽으로 조금만 걸어보자. 이쯤 서서 보면 ‘이렇게 갑자기 깊은 계곡을 만나다니 여기가 과연 서울인가’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계곡 입구에는 겸재 정선의 ‘수성동’ 그림과 설명이 적혀 있는데, 그림 속 돌다리를 실제로 만나는 것도 신기한 경험이 된다.
아기자기한 구경거리, 고단한 일상이 한 골목에 녹아 있어
계곡에서 돌아 나와 다른 골목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재치 있는 가게 설명과 광고 문구를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어 피식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동네 모습은 또 어떤가. 한 사람이나 간신히 지날 것 같은 골목에는 서너 개의 대문이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고 높낮이 차 때문에 오른 쪽에서 보면 1층이고 왼쪽에서 보면 지하인 집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아파트에서 태어나 아파트에서 자란 아이에게는 놀라운 풍경이 아닐 수 없어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감탄하며 동네를 쏘다니게 된다.
잠시 쉬어갈 따뜻한 카페도 지천이고 빵집, 케이크 가게도 금방 찾을 수 있으니 새로운 추억을 만들고 낡은 추억을 들춰보기 좋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불과 재작년만 해도 이런 모습은 아니었는데 서촌 일대는 참 많이도 변했다. 어디 서촌뿐일까 마는 지금도 여러 가게들이 업종을 바꾸느라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이다. 아기자기한 구경거리로 가득 차는 동네가 신기하기도 하지만, 자리를 지키고 있던 쌀가게 과일가게들이 모두 사라지고 카페나 공방이 들어선 것은 어째 좀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다.
서촌 주민 입장이라면 동네의 이런 변화가 반갑지만은 않을 터. 특히 주민들이 집에서 쉬고 있을 주말에 서촌을 찾았다면 조금쯤 예의를 지켜 산책을 하는 것이 좋겠다. 서촌은 골목골목 쓰레기와 소음으로 몸살을 앓고 있으니 말이다.
통인시장 앞에서 7022번 버스를 타면 서울역에 내릴 수 있다. 서울역에서 집에 오는 기차에 오르면 반드시 다짐하게 될 것이다. “다른 계절에 꼭 다시 와야지.” 서촌은 참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