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구조조정에 '국민적 합의'가 빠졌다

2016-05-17 11:09:36 게재

주중 국책은행자본확충협 2차회의

자본확충펀드 국회동의 놓고 고심

17일 정부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최상목 기획재정부 제1차관이 주재하는 국책은행 자본확충 협의체가 이번주 중 제2차 회의를 연다.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으로는 자본확충펀드가 유력하게 거론되는 가운데 정부는 여전히 한은의 직접출자를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일호 "구조조정 자본확충안은 아직"│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2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제181차 대외경제장관회의를 마친 뒤 구조조정 자본확충안에 등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주성 기자


자본확충펀드는 일종의 한국은행의 우회출자 방식이다. 빠르게 구조조정을 끝내고 싶은 정부와 '혈세를 담보 없이 제공했다'는 비판을 피하려는 한은의 이해관계가 절충된 현실론이다.

그럼에도 논란은 여전하다. 어떤 방식이든 사실상 공적자금인 한은의 돈을 풀면서 '국민적 합의'과정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또 중앙은행이 특정 대기업이나 업종 구조조정에 인위적으로 구제금융을 실시한다는 점도 논란이다.

추경 등 정부재정을 이용한 정공법이 아니란 점도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정부 재정을 활용할 경우 국회동의는 물론, 결산과정을 통해 감시를 받는다. 반면 한은을 통할 경우, 금통위원 7명 가운데 과반수 동의만 거치면 된다. 수조~수십조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 '모럴 헤저드'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자본확충 펀드는 무엇 = 최근 논의되는 자본확충펀드의 모태는 지난 2009년 초 금융위기 당시 펀드다. 한은과 산업은행이 대출한 돈으로 펀드를 만들고, 이를 은행에 출자하는 게 골자였다. 당시엔 은행의 신종자본증권과 후순위채를 매입하는 방식이었다.

이번에는 한은이 대출한 돈을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받아 이를 다시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투입하는 방식이다. 한은이 특정 금융기관에 대출해주고 이 특정기관이 중심이 돼 특수목적회사(SPC)를 세운 후, SPC가 구성한 펀드를 통해 국책은행이 발행한 자본성 증권을 사들이는 식이다. 이렇게 국책은행에 쌓인 현금은 구조조정 대상 기업 등으로 이동하게 된다. 특정기관으로는 기업은행 등이 거론된다.

정부가 '대출방식' 꺼려하는 이유는 = 한은은 이과정에서 '손실 최소화'를 위해 정부에 담보를 제공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정기관이 기업은행으로 확정될 경우 기은이 발행하는 산업금융채권 등이 담보가 될 수 있다. 정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보유 공기업 지분을 기은에 출자하면, 한은이 이를 담보로 대출하는 안도 있다.

이 방식을 통하면 정부와 한은 모두 실리와 자존심을 챙길 수 있다. 정부는 구조조정 특수성을 이유로 '속도'를 요구하고 있다. 추경을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식에서 아예 제외시킨 명분이기도 하다. 자본확충펀드는 2009년 경험이 있으므로 한은 금통위만 결정하면 신속하게 집행할 수 있다. 한은도 구조조정을 외면한다는 비판을 피하면서도, 자존심을 살릴 수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대출방식'을 꺼려하는 이유는 정부의 지급보증(담보)을 위해서는 국회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매년 급증하고 있는 국가채무가 더 늘어난다는 점도 부담이다.

정부가 어떤 방식을 선택하든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 논의가 '꼼수'라는 비판은 여전할 전망이다. 한은이 대출 형식을 빌리더라도 결과는 '중앙은행이 특정 기업을 위해 돈을 찍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야당은 '부실기업 생명 연장'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은 16일 비대위 회의에서 "최근 시작한 해운산업 구조조정 문제가 근본적 구조조정이 아니라 종전 방식대로 부실기업의 생명 연장 형태의 구조조정으로 갈 기미가 보이기 시작한다"고 지적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도 미래전략연구원에 올린 글에서 "한은 총재나 금통위원들은 국민이 선출한 사람이 아니므로 법에서 정한 명확한 기준 없이 한국은행 임의로 발권력을 남용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1998년 국가부도위기에 몰렸던 외환위기 당시에도 그런 비판이 나왔듯이 특정산업이나 기업을 타깃으로 하는 발권력 동원은 결국 역사적으로 특혜시비와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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