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주들 '용선료 버티기' 산업은행 탓?

2016-05-19 10:58:13 게재

현대상선 협상에 직접 참여해 '정부지원' 메시지 줬나 … 마감시한도 계속 늦춰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현대상선 본사에서 해외 컨테이너선사 관계자들과 용선료 협상을 마친 현대상선 측 마크 워커 투자고문과 김충현 최고재무책임자(CFO)가 협상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현대상선과 채권단이 18일 선주들과 '용선료 인하' 협상을 위해 만났지만 최종 결론을 내는 데 실패했다.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채권단이 직접 뛰어들었지만 협상 전면에 나선 것이 오히려 선주들이 버티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주채권은행을 맡고 있는 산업은행이 국책은행으로 정부의 방침과 다르지 않게 움직인다는 것을 선주들이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살리기 의지'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채권단 공동관리하에 있는 기업의 협상에 채권단이 직접 개입한 것은 이례적이다.

윤석헌 숭실대 교수는 "선주들 입장에서는 산업은행이 협상에 적극 나선 것을 두고 정부가 현대상선을 살리겠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며 "정부가 살리겠다는 입장을 정했다면 산업은행이 나서는 게 맞겠지만 과연 그런 판단이 적절한 것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용선료 협상과 사채권자 채무재조정이 잘 된다고 해도 그 이후에 또 위기가 닥치면 그 때는 감내해야 할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을 것"이라며 "당장 현재의 위기를 넘기고 난 다음의 구체적인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공식적으로 "용선료 협상 실패시 법정관리가 불가피하다"며 "정부의 또 다른 지원은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채권단이 추가지원하거나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해운회사들을 살릴 수는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용선료 협상과 채무재조정이 성공하면 법정관리를 보내지 않고 법정관리에 준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며 현대상선 사례가 세계 구조조정 역사에서 이례적인 성공모델이 될 수 있다는 점도 피력했다. 가능한 한 살려보자는 입장이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용선료 협상의 마감시한도 갈수록 늦춰졌다. 당초 4월 중순이었던 협상 만료 시기는 4월말에 이어 5월 중순으로 늦춰졌고 이달 말까지 시간을 줄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과 채권단이 협상 결렬에 대한 두려움으로 시한을 계속 연장해왔다는 인상을 주기 충분하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정부의 구조조정이라는 게 공정성과 국민의 신뢰가 있어야 하는데 항상 이해관계자들에 의해 좌우됐다"며 "외국 선주들이 비공식적으로 정부를 압박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18일 현대상선과 채권단, 선주들은 서울 연지동 현대상선 사옥에서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4시간가량 최종 협상을 벌였다. 현대상선에서는 김충현 상무와 협상을 자문한 미국 법률사무소 밀스타인의 마크 워커 변호사가, 채권단은 정용석 산업은행기업구조조정 부행장이 대표로 참석했다. 선주측에서는 컨테이너선 선주사 5곳 중 그리스계 다나오스와 나비오스, CCC가 직접 참석했고 싱가포르계 이스턴퍼시픽은 컨퍼런스콜을 통해 회의에 참여했다. 이날 불참한 영국계 조디악과는 별도의 협상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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