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판다의 엄지
진화론 대중화의 전설을 만나다
지난 3월, 22년 만에 한국으로 온 판다 '아이바오'와 '러바오'는 애버랜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동물이다. 이 판다가 하는 일이란 거의 하루 종일 자기가 좋아하는 대나무를 먹는 일이다. 앞발을 이용해 능숙한 솜씨로 대나무 줄기를 잡고 잎을 뜯어내는 재주는 거의 신기에 가깝다. 달리고 찌르고 할퀴는 쪽으로 발달한 식육목(食肉目)에 속하는 동물이 어떻게 그렇게 앞발을 잘 쓸 수 있는지. 진화론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은 판다가 엄지와 나머지 발가락 사이로 대나무 줄기를 통과시켜 잎을 훑어낸다는 사실에 더 놀란다. 거의 인간만이 진화시켜온 것으로 알려진 '맞서는 엄지'를 식육목 동물에서도 볼 수 있다니?
하지만 판다의 엄지는 진짜 엄지가 아니다. 그것은 엄지쪽에 붙은 요골종자골이 크게 발달하여 일종의 손가락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판다는 왜 다른 식육목 동물과 달리 손목뼈(요골종자골)를 손가락처럼 발달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했을까.
스티븐 제이 굴드는 '판다의 엄지(The Panda's Thumb)'에서 '현명한 신이라면 결코 택하지 않았을 별스러운 해결방법으로 해결해 온 것이야 말로 진화를 입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소재'라고 단언한다. 판다의 가짜 엄지처럼 진화의 결과물이 그리 주도면밀하지 않다는 것이다.
판다의 실제 엄지는 다른 역할을 맡고 있을 뿐 아니라, 지나치게 특수화 되어 있었기 때문에, 물건을 붙잡을 수 있도록 마주보는 손가락으로 진화하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것. 그래서 판다는 확대된 손목뼈를 이용한다는 좀 '꼴사납지만 일단 도움이 되는 해결 방법'으로 진화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거의 40년 전에 발표된 굴드의 이 얘기는 이제 진화론의 대중화 역사에는 전설로 통한다.
이번에 민음사 사이언스북스 시리즈로 출간된 스티븐 제이 굴드의 '판다의 엄지'는 이미 1980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과학에세이집이다. 이 책은 1981년 전미 도서상을 수상하고, 굴드를 최고의 과학저술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들었다. 우리나라에도 1998년 처음 번역 출간돼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판다의 엄지'에는 모두 31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다. 굴드가 27년간 '이런 생명관'이라는 제목으로 매달 연재했던 '내추럴 히스토리(Natural History)'의 300편의 글 가운데 초기의 글들을 뽑아서 단행본으로 만든 것. '과학글쓰기의 계관시인'이라고 불릴 만큼 스티븐 제이 굴드의 글은 과학에 흥미를 가지지 않은 문외한에게도 쉽고 재밌게 읽힌다. 하버드대의 석좌교수이면서 평생 다윈의 진화론을 옹호해온 전사이자, 사이비 과학을 격렬하게 탄핵하는 계몽주의자였던 굴드의 풍모는 이 31편의 에세이를 통해 유감없이 드러난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탁월한 능력을 타고난 생물학 이론 해설가이다. 그의 해설은 생물학 이론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 과학적 발견이 이뤄진 사상사적 문화사적 배경까지 꿰뚫는다. 이 책은 신선하고 정신을 긴장시키는 놀라운 해설로 가득하다….(뉴욕타임즈 북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