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신께서 당신에게 보답하기를"

2016-06-08 10:08:32 게재

4월 23일 한국국제협력단(KOICA) 봉사단원들과 함께 에콰도르 강진으로 피해가 가장 컸던 지역 중 하나인 에스메랄다스 주 공항에 도착했다. 새벽에 키토를 출발한 한인회장과 우리 진출기업 관계자들도 구호물품을 실은 트럭들과 함께 이미 도착해 있었다.

북서부 해안지역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3시간 정도를 달려 에스메랄다스 주에서 가장 피해가 컸다는 차망가(Chamanga)군 입구에 도착했다. 마을 안쪽에는 무너진 가옥과 잔해 더미로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그 위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주민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강변의 일부 수상 가옥들은 아예 물속에 잠겨버렸다. 주지사 말로는 전체 건물과 가옥의 80%가 피해를 입고 400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한다.

6.25 전쟁 때 우리에게 쌀을 지원해 준 나라

구호물품을 모아 비축해두는 보관소는 해병대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우리가 온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는지 경계하는 눈빛이었고 주지사가 설명을 해준 후에야 우리의 구호품 반입을 허용했다. 군인들과 일부 봉사단원들이 일렬로 줄을 서서 한인회와 우리 기업이 가져온 텐트, 모포, 매트리스, 물과 KOICA에서 가져온 구호키트를 날랐다.

피해 주민들에게 직접 구호품을 나눠주기 위해 마을 한쪽 대피소로 갔는데 그곳에서 수녀님 두 분과 피해 주민들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생필품, 음식, 의약품으로 구성된 키트를 당장 시급한 주민들에게 나눠주고 남은 키트는 나중에 수녀님들이 배급해주기로 하여 보관소에 쌓아두었다. 더운 날씨에 300개가 넘는 키트를 나르다보니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일을 마치고 주민들과 담소를 나누는데, 수녀님이 다가와 "디오스 레 빠게!(Dios le pague!)"라고 거듭 말했다. "신께서 당신에게 보답하기를"이라는 뜻인데 카톨릭 전통이 강한 라틴아메리카인들의 최고의 감사 표시이다.

일이 모두 끝나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데 꼬레아! 꼬레아! 하면서 환호했다. 뒤섞여 포옹하며 마치 축제분위기를 연상케 했다. 화산폭발과 지진 등 자연재해가 유난히 많은 에콰도르의 국민들이 거친 자연에 순응하면서 역경을 이런 방식으로 극복하고 승화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SK건설측의 협조로 마련된 캠프로 돌아와 하룻밤 묵고 다음날 이번 강진의 진앙지에서 20여km 떨어진 무이스네(Muisne)시로 떠났다. 비가 많이 내리고 있어 구호품 전달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지만 피해지역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그쳤다. 가장 큰 임시대피소에 들러 남은 구호키트 300여개를 전달했다. 피해 주민들도 우리들과 함께 밝은 표정으로 키트를 나르는 작업을 도왔다.

"한국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줘야

그 사이 코이카 여성 봉사단원들은 대피소의 어린이들을 모아 함께 놀아주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주민들은 아이들이 학교도 가지 못하고 제대로 돌보지도 못하고 있다면서 봉사단원들의 어린이 치유활동에 대해 매우 흐뭇해했다. 필자가 대피소를 한바퀴 돌면서 주민들의 실상을 살펴보는데 한 가족이 우유와 카카오를 섞어 만든 따뜻한 차를 건넨다. 에콰도르 사람들의 푸근한 온정을 느낄 수 있었다.

에콰도르는 6.25 전쟁 때 우리에게 쌀을 지원해 준 나라이다. 현대자동차가 1976년에 포니 자동차 5대를 해외 최초로 수출한 나라이기도 하다. 최단기간에 산업화를 이룩한 우리나라를 경제발전 모델로 삼고 흠모에 가까울 정도로 좋아한다. 특히 산업구조 고도화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어 우리와의 협력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번 지진과 같은 어려운 시기에 에콰도르 국민들에게 "한국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이은철 주 에콰도르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