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수효과' 없다 … 재벌 중심 산업정책 바꿔야

2017-01-17 10:55:17 게재

78% '부정적' … 대기업 매출 1% 상승에 3차 하청업체 0.005% 기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권력과 재벌의 '정경유착'이 드러났다. 1000만개 촛불은 '재벌도 공범'이라며 '재벌 개혁'을 요구했다. 전문가들과 정치권에서는 재벌 중심의 성장 경제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는 지난 50여년간 재벌 성장 정책의 중요한 논리적 기반이었던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의 퇴장을 의미한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대기업 이익이 늘면 중소기업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낙수효과'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외 전문가나 기관들도 '낙수효과'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내일신문이 경제전문가 50명에게 '낙수효과'를 물은 결과 '거의 없다'는 응답이 50%로 나타났다. '조금밖에 나타나지 않는다'(28%)를 포함하면 낙수효과에 대한 부정적 의견은 78%에 이른다. 반면 '확실히 나타난다'(6%) 등 긍정적 입장은 18%에 불과했다.

'낙수효과 무용론'이 다수를 이루는 배경에는 '경제여건 변화'와 '경제력 집중에 따른 폐해'가 원인으로 꼽힌다.

1990년대까지의 압축성장 과정에서는 낙수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성장 장기화와 4차 산업혁명 등 경제여건이 변한 지금은 중소·중견기업의 역할이 확대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경제력 집중은 양극화를 심화시켰고, 일자리창출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최근 정부가 투자 촉진을 위해 돈을 풀어도 대기업에 사내 유보금으로 쌓일 뿐 투자나 일자리창출로 이뤄지지 않았다.


◆경제성과 대기업 독차지 = 한국경제의 외형은 매우 커졌다. 1인당 GDP는 2만7000달러를 넘어섰고, 외환보유액도 2004년(1990억달러) 대비 약 두 배인 3720억달러에 이르렀다.

한국경제가 성장한 만큼 일부 재벌에 대한 경제력은 더욱 집중됐다. 세계경제포럼의 2015년 세계경쟁력보고서에 의하면 140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소수 그룹의 시장지배' 국가 순위에서 한국은 97위로 나타났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2015년 기준 10대그룹(금융 제외)의 전체 자산은 1144조4000억원으로 우리나라 전체 기업 보유자산의 27.22%를 차지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세계 상위 소득 데이터베이스와 국제통화기금(IMF)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12년 기준 한국의 상위 10% 소득집중도는 44.9%였다. 아시아 주요 국가 중 가장 높고 전 세계 주요국 중 미국(47.8%) 다음이다. 특히 1995∼2012년 사이에 한국의 상위 10% 소득집중도 상승 폭은 15.7%포인트로 해외 주요국 중 가장 빠르다고 국회입법조사처는 전했다.

하지만 성장에 따른 '낙수효과'는 없었다. 장하성 고려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2000~2014년 국내총생산(GDP) 누적성장률은 73.8%이며, 1인당 GDP의 누적성장률은 62.1%이다. 반면 같은 기간 가계의 실질소득 누적증가율은 30.9%이었다. 가계소득 증가가 경제성장의 절반에도 못 미친 셈이다.

2000~2014년 기간 동안에 국민총소득 중에서 가계소득으로 배분된 몫이 6.0%포인트 줄었고, 정부소득으로 배분된 몫도 1.4%포인트가 줄었다. 그러나 국민총소득 중에서 기업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7.4%포인트가 늘었다. 경제성장의 성과가 국민들에게 분배되지 않고 기업이 독차지한 것이다.

◆IMF OECD도 낙수효과론 폐기 = 중소기업연구원이 지난해 내놓은 '수출의 국민경제 파급효과 분석'에 따르면 2000년 이후 대기업의 매출액 1% 증가에 따른 하청업체의 매출액 증가는 1000분의 5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대기업의 영업이익률에 비해 하청업체의 영업이익률은 지극히 낮았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영업이익률이 9.63%였지만, 하청업체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5.20%에 불과했다.

대기업들은 고용확대에도 기여하지 않았다. 중소기업중앙회의 '2016 중소기업위상지표'에 따르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6년간(2008~2014) 늘어난 종사자주는 289만2321명이다.

이중 대기업은 33만2398명으로 일일 151.8명의 일자리를 늘린데 그쳤다. 반면 중소기업은 고용 증가인원은 255만9923명(전체 고용의 88.5%)으로 대기업의 7.7배에 이르는 일자리를 창출했다.

경제력집중에 따른 낙수효과보다 폐해가 커지자 2015년 국제통화기금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낙수효과'는 성장을 가로 막는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IMF 보고서는 150여개 국가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 상위 20% 계층의 소득이 1%포인트 증가하면 이후 5년의 성장이 연평균 0.08%포인트 줄어든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하위 20%의 소득이 1%포인트 늘어나면 그 기간에 연평균 성장이 0.38%포인트 증가한다고 밝혔다

OECD가 우리 정부에 전달한 '더 나은 한국을 위한 정책 보고서'에는 고도 성장기를 거쳐 지금까지 이어져 온 대기업 위주의 수출정책과 이를 통한 낙수효과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장은 "정부는 한국경제의 미래를 위해 대기업 성장 주도의 산업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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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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