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의 경제력집중 막자│② 규제 강화한 이스라엘

자회사만 허용해 … 기업지배구조 2단계로 단순화

2017-02-24 15:43:23 게재

손자회사 이하 불인정, 금산분리 원칙 고수

"재벌개혁, 이스라엘처럼 강하고 원칙적으로"

1999년 지주회사제도 도입 이후 재벌의 경제력집중이 심화됐다. 도입당시 출자 지분 규정 등 행위제한을 통해 경제력집중을 규제하고 있었으나 2004년과 2007년 규제가 완화되는 등 관련 법령마저 개악돼 이를 가속화했다는 지적이다.



이스라엘은 과감하고 강력한 규제를 통해 경제력집중 방지에 나섰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최근 '이스라엘 경제력집중법 제정 의의와 함의' 연구보고서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이스라엘 40개 상장기업, 매각 또는 지분조정 대상 = 보고서에 따르면 이스라엘 의회는 2013년 12월 9일 경제력집중법을 통과시켰다. 이 보고서는 3가지 주요 내용을 담고 있다. 우선 주요 금융기관과 주요 비금융회사를 동시에 보유하는 것을 금지한다. 금산분리를 명확히 한 것이다.

주요 금융기관은 자산이 400억세겔(약 112억달러, 12조2830억원)을 초과하는 은행 보험사 증권사 자산운용사 등을 포함한 모든 금융기관을 말한다. 동부생명의 자산이 약 9조3000억원(2016년 4월 현재)이다.

주요 비금융회사는 매출 또는 부채가 60억세겔 이상이거나 독점사업자로서 매출이나 부채가 20억세겔 이상으로 정의한다.

두 번째 주요 내용은 피라미드 기업집단은 상장사의 경우 2층 구조를 초과할 수 없다. 기존 기업집단은 6년 안에 2층으로 축소해야 한다. 새로운 기업집단도 2층구조만 허용한다.

이는 지주회사→자회사만 허용한다는 얘기다. 우리나라는 현재 지주회사→자회사→손자회사→증손회사까지 가능하다. A회사가 B회사에 출자했다면 A회사가 지주회사, B회사가 자회사가 된다. 지분율에 대한 정의는 없다.

마지막 세 번째는 민영화, 공공입찰, 정부 라이선스 취득 등에 '경제력집중 우려기관'의 참여 여부를 권고하는 위원회를 설립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경제력집중법의 내용은 이스라엘 경쟁력위원회의 중간보고서보다 강화됐다. 주요 금융회사 기준이 500억세겔에서 400억세겔로, 주요비금융회사 자산은 80억세겔에서 60억세겔로 엄격해졌다.

또 지배주주가 확보한 의결권(계열사 지분 포함)이 33% 미만일 경우 쐐기기업으로 규정하고 여러 가지 규제를 두었다. 지주회사 지분율이 33% 미만인 쐐기기업은 기업 지배구조 규제를 받는다. 이사회 구성과 역할, 임원의 보수, 지배주주의 이해와 관련된 거래, 소액주주의 위상 강화, 집단소송과 주주대표소송, 기관투자자의 적극적 역할 등에 대한 행위규제를 받아야 한다. 이는 자회사보다 훨씬 강한 규제를 둠으로써 자회사로 유도하고 있는 셈이다. 이 법은 6년 안에 모든 기업집단이 상장회사 2층 피라미드 구조를 충족하도록 규정했다.

이 법안 통과로 2019년까지 시가총액 합계 약 250억달러에 이르는 약 40개 상장기업들이 매각되거나 지분조정이 될 예정이라고 전망된다. 이스라엘 최대 기업집단 가운데 하나인 델렉그룹은 보험회사와 투자회사를 소유하고 있는 피닉스 지주회사와 연안 천연가스전에 지분을 가지고 있는 에너지 부문 중 하나를 매각해야만 한다. 6년내 매각이 이뤄지지 않은 기업들은 정부가 설립한 독립적인 수탁기관에게 주식을 매각해야 한다.

이스라엘, 내수부문 경제력집중 폐해 발생 = 이스라엘 인구는 약 850만명이고, 1인당 GDP는 3만5900달러 정도다. 이스라엘 경제구조는 우리와 달리 내수부문과 수출부문이 분절된 이중경제다. 주요 수출품인 전자 소프트웨어 의료장비 제약 과일 화학 산업은 매우 개방적이고 혁신적이다. 이스라엘은 미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신생기업(스타트업)을 보유하고 있다. 북미를 제외하고 나스닥에 상장된 기업이 가장 많은 나라다. 그러나 내수부문은 몇몇 재벌기업들이 높은 점유율을 지닌 구조다.

경쟁력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상장기업의 4분의 1이 24개 기업집단에 소속돼 있다. 이들의 시가총액은 전체 69%다.

이스라엘 재벌은 1990년대 민영화 과정에서 형성됐다. 1위 재벌인 IDB그룹은 이동통신 건설 슈퍼마켓 시멘트 보험 여행 신문 화학 등 업종에 진출해 있다. 상위 재벌들은 피라미드 출자구조로 총수일가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금융사와 비금융사를 동시에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다수다.

이스라엘 정부와 지식인들은 재벌의 경제력집중으로 국가적 사회적 의사결정이 재벌 총수의 이해에 따라 왜곡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재벌이 금융회사와 비금융회사를 동시에 보유함으로써 발생하는 이해상충이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상인 교수는 "이스라엘의 지주회사제도는 철저히 경제력집중을 막는데 중점을 두었다"며 "지주회사와 자회사만 허용한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지분율 규제는 따로 하지 않았다"며 "다만 지분율이 33% 미만일 경우 지배구조와 관련한 규제를 많이 받게 함으로써 기업이 지분율을 올리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도 비슷하다. 별도 지분율 규제가 없는 대신 지분율이 낮을 경우 자회사 배당금 세금 면제를 받을 수 없게 했다. 지분율 85% 이상 돼야 배당금 면세 혜택을 받는다. 50% 이하면 이스라엘처럼 규제를 강하게 받는다.

박 교수는 "계열사와 업종 수가 적정해질 경우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여지도 줄어든다"며 "재벌개혁은 이스라엘처럼 강하고 원칙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00년전 미국도 지주회사가 재벌 구조였다. 록펠러가 소유한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는 미국 내 석유시장 점유율 88%을 기록한 대표적 재벌의 지주회사였다. 미국내 41개 자회사를 지배하면서 공정경쟁을 헤치고 시장을 독점화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1911년 대표적 독점금지법인 반트러스트법으로 수십개 독립회사로 해체됐다.



국내 10대재벌에 적용한다면 = 총수일가가 있는 국내 10대재벌 가운데 4곳은 주력회사가 지주회사인 경우다. SK LG GS 한진 등이다. 모두 손자회사와 증손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또 SK와 GS는 지주회사 밑에 지주회사가 존재하는 기형적 구조도 있으며 일부 계열사는 지주회사 밖에 존재한다.

지주회사 편입률은 57%(GS)에서 85%(LG)까지 분포한다.

SK 자회사와 손자회사 증손회사 가운데 상장기업만을 고려해 출자단계를 계산할 때 지분율이 33% 미만이어서 문제가 되는 기업은 SK하이닉스와 SK커뮤니케이션즈, 아이리버, SKC솔믹스, 바이오랜드 등 5개사다.

한화는 한화도시개발과 한화종합화학 등 비주력회사가 지주회사로 지정돼 있으며 주력기업들이 지주회사체제 밖에 위치해 있다.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할 경우 금산분리가 필요하다.

GS와 한진을 제외하고 나머지 8개 재벌은 금융사를 보유하고 있다. 또 이들 재벌의 금융사와 비금융사간 출자가 서로 얽혀 있다.

삼성은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는 경우 지주회사 규제에 따른 추가적인 매각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긍융회사들의 계열분리가 필요하다.

현대차는 현대모비스를 인적분할해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할 경우 현대차 출자를 받은 상장사들의 처분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두산중공업 출자를 받은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건설 두산엔진 두산밥켓 등은 출자단계 규제로 매각 또는 합병해야 한다.

범현주 기자 hjbeo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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