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석유 시대',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2017-03-27 11:06:57 게재

스탠퍼드대 이언 모리스

최근 석유대국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왕이 석유 세일즈를 위해 각 나라를 방문해 큰 화제가 됐다. 그만큼 절박한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다. 화석연료시대의 종료를 알리는 상징적 이벤트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물론 풍력과 태양에너지 등 재생에너지 확산은 여전히 멀어보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멀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스탠퍼드대 역사학 교수인 이언 모리스는 최근 미국의 전략정보분석 전문업체인 '스트랫포' 홈페이지에 '화석연료 이후의 시대 상상하기'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주목을 끌었다. 다음은 글 전문.

1750년 이후 인류는 1500억톤의 이산화탄소를 대기중에 발산했다. 그 절반은 2000년 이후에 발생했다. 지난해에만 99억톤의 이산화탄소를 하늘로 뿜었다.
이스라엘 남부 네게브 사막에 태양광패널 5만개가 늘어서 있다. 사진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탄소배출이 기후변화를 야기한다는 주장을 '헛소리'로 치부한다. 만약 그렇다면 지구상 거의 모든 과학자가 헛소리를 신봉하고 있는 셈이다.

과학자들은 화석연료를 태우면 대기와 해양의 화학구조가 바뀐다고 믿는다. 지난해 대기중 탄소 함유량이 400ppm 이하로 떨어진 적이 한번도 없었다. 80만년 전 이래 첫 기록이다. 기후가 따뜻해지고 점차 변덕스러워진다. 극지방 얼음이 녹고 있으며 대규모 멸종이 벌어지고 있다.

충격적이긴 하지만 새로운 뉴스는 아니다. 전략전문가들은 수년 동안 지구온난화의 파멸적 결과를 예고해왔다. 이제 문제의 해법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올까 말까' 아닌, '언제 올까' 문제

대부분의 전문가는 지구촌 에너지 수요가 향후에도 늘어날 것이라고 본다. 동시에 시간이 지날수록 태양열이나 풍력, 수력, 바이오매스, 핵발전 등의 재생에너지가 화석연료를 대체하면서 탄소배출량이 줄어들 것으로 내다본다. 입장의 차이는 '과연 그 전환점이 언제 일어날 것인가'로 좁혀진다.

대부분 전문가는 변화의 속도가 완만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글로벌 석유화학 그룹인 '쉘'은 재생에너지가 에너지 수요 증가세를 충족시킬 수 있을 때, 즉 대기로 발산되는 탄소량이 줄어드는 때는 25년 뒤일 것이라고 예측한다. 동종기업인 'BP'는 30년 뒤라고 본다. 엑슨모빌은 매우 낙관적이다. 75년 뒤라야 재생에너지가 존재감을 뽐낼 것이라고 말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에너지 전환점은 60년 뒤가 될 것이라 했지만, 최근 35년으로 수정했다.


실제 자료에 근거하면 이들의 전망은 보수적으로 잡아도 오류투성이다. 쉘과 BP는 연 평균 에너지 수요 증가세를 1.4%로 잡아 에너지 전환점을 2040년 즈음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최근까지의 추세는 연 평균 1.0%에 그친다. 엑슨모빌과 IEA는 태양열과 풍력 에너지 공급 속도가 매년 5~9.5%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최근까지의 증가율은 15%를 상회했다. 또 이들은 핵발전이나 수력, 바이오매스 등 재생에너지 공급이 향후 1.4~1.9%씩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보지만 최근까지 이들 에너지 공급은 연 평균 2.3%씩 증가해왔다. 쉘과 BP, 엑슨모빌, IEA는 2020~2030년대 화석연료 수요가 연 평균 0.7~1.2%씩 늘 것이라고 전망하지만 최근까지의 흐름은 0.5% 증가에 그쳤다.

그나마 IEA는 늑장을 부리긴 하지만 자신들의 예측 실패를 바로잡는 성의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02년 IEA는 2015년 풍력과 태양에너지의 발전량을 각각 40기가와트, 10기가와트(보통 핵발전소 1기 용량)로 내다봤다. 2005년엔 170기가와트, 20기가와트로 수정했다. 다시 2010년엔 340기가와트, 75기가와트로 바꿨다. 하지만 2015년 실제 발전량은 풍력 430기가와트, 태양에너지 240기가와트였다. 같은 해 풍력과 태양에너지는 전 세계 에너지 수요 증가량의 1/3을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왜 예측이 실패했는지에 대해 논쟁중이다. 하지만 이들의 실수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기초적 진실을 일깨운다.

투자리서치 TS롬바르드의 에너지전략가 킹스밀 본드가 전문가들의 가정을 기반으로 작성한 에너지 전환점 시기를 보면, 연 평균 에너지 수요 증가세가 2%일 때 풍력과 태양에너지 공급 증가율이 연 평균 5%에 그친다면 에너지 전환점은 100년 뒤인 2118년에 닥친다. 반면 에너지 수요가 0.5% 늘어날 때 풍력과 태양에너지 공급 증가율이 15% 이상이라면 올해 화석연료 대체 전환점이 시작된다. 여기서 전환점이란 에너지에 대한 신규 수요를 화석연료가 아닌, 풍력과 태양에너지가 완전 충족시키는 때를 말한다.

물론 이같은 전망은 행과 열의 가장 끝단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이를 배제하고 중간 가정값을 기반으로 하면 에너지 전환점은 2020년대 또는 2030년대가 된다. 킹스밀 본드 자신은 에너지 수요 증가세를 1%로, 재생에너지 공급 속도를 20%로 예상한다. 그렇게 되면 에너지 대 전환 시기는 2020년이 된다. 그가 맞다면 2040년대초 전 세계 에너지 절반은 재생에너지에서 나온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원자재 부문장인 라바 아레즈키도 이같은 가정에 기반해 "국제 원유시장에 역사상 최대 걸림돌이 닥쳤다"고 주장했다.

소비는 공급을 뒤쫓는다

역사상 에너지 시장이 붕괴한 것은 여러 차례 있었다. 화석연료 경제가 본궤도에 오른 1865년 영국 경제학자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는 '석탄의 문제'(The Coal Question)라는 소책자를 냈다. 영국이 에너지 공급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를 논한 책이었다.

제번스의 가장 큰 업적은 에너지 1단위 투입당 산출량(ERoEI)의 관점에서 화석연료를 논했다는 점이다. 증기엔진은 1690년대 출시됐지만 1776년이 돼서야 널리 보급됐다. 제임스 와트와 매튜 볼튼이 화력부와 냉각부를 분리, 석탄소비를 75%나 줄이고부터다. 1804년 영국 발명가 리처드 트레비식이 가벼운 고압력 엔진을 개발하면서 ERoEI는 꾸준히 상승했다. 1860년대 석탄 1단위를 투입해 얻은 화력은 1760년대보다 10배나 컸다. 석탄소비가 90% 줄었지만 석탄소비는 되레 10배 늘었다.

제번스는 "연료를 경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고 해도 연료소비가 줄어드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오히려 연료소비를 부추겼다. 이는 '제번스 패러독스'라 불리는 이론으로, 역사 전반에서 사용된 다양한 에너지에 적용된다. 즉, 에너지가 저렴해질수록 사람들은 더욱 에너지를 소비하게 된다. 일부 환경론자들은 인류가 보다 단순한 생활, 더 적은 소비를 통해 지속가능한 삶을 살 수 있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제번스 패러독스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재생에너지가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경우는 ERoEI가 석유나 천연가스, 석탄 가격보다 낮을 때뿐이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연구와 개발, 인프라건설 등 선불비용은 막대하다. 하지만 일단 비용이 투입돼 이용가능 조건이 충족되면 인류는 새로운 에너지가 믿을 수 없이 풍족한 시대로 진입하게 될 것이다.

풍족한 에너지는 이미 익숙한 방식으로 소비될 것이다. 여전히 지구촌엔 전기와 물 부족을 겪는 사람이 10억명을 넘는다. 이들에게 전기와 물을 공급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에너지 소비가 필요하다. 현재보다 약 15%의 에너지가 더 필요하다. 그렇지만 여전히 새로운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곳은 주요 선진국이 될 전망이다.

1980년 미국 일반 가정이 소비하는 에너지의 1/6은 가전제품이었다. 2010년 들어 에너지효율이 대폭 개선됐지만, 가전제품이 차지하는 에너지 소비 비중은 2배 늘었다. 1980년와 비교해 현재의 냉장고 효율은 60%, 세탁기는 70%, 전구는 80% 올랐다. 제번스 패러독스인 셈이다. 미국인은 하루 평균 2시간씩 스마트폰을 이용한다. 스마트폰의 에너지 효율은 매우 높다. 아이폰5의 경우 연간 전력 소비량은 아무리 많아도 41센트를 넘지 않는다. 그렇지만 전 세계 십억명이 아이폰을 사용할 때, 이를 뒷받침하는 글로벌 네트워크망이 필요하다. 전 세계 300만곳의 데이터센터가 지구촌 에너지의 1.5%를 소비한다.

전기제품 특히 컴퓨팅 기능을 가진 제품은 계속 늘어난다. 지구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 재생에너지가 확대되는 만큼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에너지 소비 연결망의 한쪽에 손바닥 크기의 스마트폰이 있다면, 반대쪽 편엔 슈퍼컴퓨터가 있다. 전 세계 에너지 공급의 상당량을 슈퍼컴퓨터가 소비하게 될 것이다. 중국 광저우엔 '톈허2'(Tianhe-2) 슈퍼컴퓨터가 있다. 2013년 6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컴퓨터로 기록된 기종이다. 33.86페타플롭스(초당 1000조번의 연산처리)를 자랑한 슈퍼컴퓨터다. 후텁지근한 기후의 광저우가 아니라 보다 쾌적한 위치에 있었다면 54.9페타플롭스의 기량을 뽐냈을 것이다. 톈허2의 전력 소비량은 17.6메가와트다. 냉각시스템엔 6.5메가와트가 필요하다.

에너지 효율이 좋아질수록 관련 소비가 확대된다는 제번스 패러독스는 슈퍼컴퓨터에도 적용된다. 그토록 빠른 톈허2가 있었지만, 지난해 중국 장쑤성에 있는 선웨이 타이후라이트가 그 자리를 빼앗았다. 15메가와트의 전력을 쓰고 93페타플롭스의 기량을 뽐낸다. 내년엔 전통의 강호 IBM이 서미트라는 이름의 슈퍼컴퓨터를 선보인다. 서미트는 10메가와트의 전력으로 150~300페타플롭스의 속도를 낼 전망이다.

슈퍼컴퓨터의 에너지 소비는 엄청나지만, 공급량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IBM의 서미트가 쓸 10메가와트의 전력은 지난해 전 세계가 생산한 발전량 12.3테라와트의 100만분의 1에 불과하다.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를 오가는 '유로스타' 열차보다 적은 에너지를 쓴다.

과학자들은 아직 슈퍼컴퓨터의 시대가 본격 도래하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인공지능(AI)으로 세계가 진정한 변혁의 시대로 진입하면 IBM의 서미트보다 100배 강력한, 엑사플롭(초당 100경번의 연산처리) 성능의 슈퍼컴퓨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같은 기량의 컴퓨터는 인간의 두뇌와 비슷한 사고능력을 갖게 된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지구상 모든 인류의 두뇌를 연결하는 '수퍼오거니즘'(superorganism) 컴퓨터의 경우 요타플롭(엑사플롭의 100만배)의 성능을 가질 것이며, 지구상 모든 에너지를 수퍼오거니즘 1대가 사용하게 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물론 아직은 공상과학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얘기다. 가능성에 회의감을 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점은 제번스 패러독스가 유효하다는 점이다. 즉 에너지 공급에 혁명이 일어나 엄청난 규모의 에너지가 차고넘친다고 해도 인류는 그를 흡수할 또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1~2세기 후 컴퓨터 공학자 또는 슈퍼컴퓨터는 태양 등 자연에너지가 주는 발전용량에 만족하지 못하고 또 다른 에너지 원천을 찾아내려 할 것이다.

태양은 동쪽에서 떠오른다

화석연료 이후 시대의 지정학은 어떤 모습일까. 에너지 공급시스템마다 부와 권력의 분배지도가 바뀌어왔다. 수렵채집 경제에서는 발트해나 태평양 등 해양에 사는 사람들이 부를 누렸다. 1만2000년 전 중동에서 시작된 농업이 점차 발전하면서 식물을 재배하고 동물을 가축화한 사람들이 부를 차지했다. 중국이나 지중해 국가, 페루나 멕시코 등이 대표적 사례다. 250년 전에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화석에 갇힌 에너지를 차지한 사람들이 부와 권력을 누렸다. 석탄이 풍부한 데다 이를 이용할 수단을 확보했던 영국이 패권국으로 부상했고, 이어 미국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재생에너지 시대엔 누가 부와 권력을 차지할까. 태양이 뜨고 바람이 부는 건 전 세계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부와 권력이 서양에서 동양으로 넘어가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중국은 이미 전환점을 넘은 것으로 보인다. 재생에너지 수요 증가세보다 더 빠른 공급을 현실화하고 있다. 2015년 중국의 화석연료 소비는 전년 대비 1.4% 줄었다. 같은 해 전 세계 전기차 판매의 28%, 태양광 패널설치의 32%, 풍력시설 설치의 47%가 중국에서 일어났다. 2016년엔 유럽을 제치고 세계 최대 풍력발전 국가로 등극했고, 2020년이 되면 태양에너지 발전에서도 유럽을 제치고 1위로 오를 전망이다.

물론 이같은 전망이 100% 들어맞으리란 보장은 없다. 20세기 미국이 패권국으로 등극한 것을 역사적 필연으로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가능성이 높았던 건 부인할 수 없다. 100년이 흐른 지금 화석연료 이후 시대를 맞아 지정학적 구도가 요동치고 있다. 어쩌면 이미 동쪽에서 뜨는 커다란 해를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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