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억의 도시 공간들
지난 60년간 우리의 서울은 너무도 많이 변했다. 전쟁이 끝난 후 돌아온 시민과 새로이 몰려든 사람들을 위해 급히 집을 지어 삶의 터전으로 삼다 보니 새로움이 옛 것을 우선한다. 그 후 더 급속히 증가하는 사람들을 위해 더 많은 집-아파트를 짓고 경계를 넓혀가며 길을 닦으면서 과거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서울은 인구가 1000만이 넘는 현대적인 도시가 되었지만 우리가 동네라고 부르는 그 풍경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변화 속에서 서울시는 선진국 대도시의 모습을 모델로 삼았고 그 노력 속에 더 많은 녹지를 만들려는 생각으로 계속 공원들을 계획해 왔다. 그 결과 여의도 공원, 서울숲, 한강 변에 만든 공원들로 서울은 이제 어느 정도 녹지를 가진 살만한 도시로 되었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멀리 있는 커다란 공원은 마음 먹고 어쩌다 겨우 한 번 찾아가는 지도에만 존재하는 장소이지만 주말이나 저녁 가족과 함께 찾는 가까운 공원들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풍부하게 하는지 최근 알기 시작한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그런데 이제 서울에 공원을 만들 땅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 동안의 개발 위주의 정책은 땅이 있으면 공원을 만들기 보다는 경제적으로 유용한 무엇인가를 만드는데 집중해서 빈 땅이 거의 남지 않았다. 이러한 현실에 지난 경제발전 과정에서 만들어진 산업 시설들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취수 시설, 유류 저장시설, 고가 도로, 폐철로 등은 도시 안에서 오랫동안 기능을 하던 시설들이지만 노후되거나 새로운 시설로 교체돼 더 이상 필요가 없는 건물과 공간들이 도시 한가운데 많이 남았다. 그 전 같으면 이 시설과 공간들을 어떻게 하면 경제적으로 극대화해 개발할까 하는 관점으로 보았다.
하지만 최근 서울시가 생각하는 기억 위에 만드는 도시 공간은 이 과거의 공간들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과거 취수장을 공원으로 만든 선유도 공원 계획을 전후해서 시작된 이런 생각은 최근 만들어져 시민들에게 좋은 도시 공간을 제공하고 있는 경의선 숲길과 녹지, 보행으로 연결하는 긴 공원으로 곧 만들어질 경춘선 숲길에서 확실히 볼 수 있다. 소음과 먼지가 가득하던 철길이 공원이 될 때 그 동안 굳게 닫혔던 주변의 집들은 창문을 열고 철길 맞은 편과 소통이 시작된다. 새롭게 열린 '서울로 7017'은 오랫동안 사용됐지만 더 이상 고가도로의 기능을 할 수 없는 시설을 공원과 산책로로 만들어 시민에게 돌려줬다. 빨리빨리 움직이고 자동차 위주의 도시에서 그 안의 사람이 걷기 위해 만들어지는 도시 공간의 선언이 될 것이다. 마포에 지어지는 문화비축기지는 기억을 포함하는 공원으로 가치를 지닌다. 1970년대 오일 쇼크를 경험하고 석유를 비축하는 용도로 만들어진 산업시설인 석유 탱크들은 시민들에게 잊혀진 산업시설이다. 이것들을 완전히 철거하지 않고 공원과 문화시설의 일부로 재활용하는 것은 우리에게 나무와 풀만 있는 기존의 공원에 새로운 형식을 제시할 것이다. 또 공원을 사용하는 새로운 문화도 만들어 낼 것이다. 우리가 지나온 산업시설의 기억과 건축의 공간이 어느 정도 남아 주변의 시민들에게 제공된다면 서울의 역사와 기억은 더욱 가치 있게 남는다.
옛 건물의 터를 남기거나 큰 나무 주변의 공터 같은 작은 공원들이 더 많이 생긴다면 그리고 각각의 기억과 역사를 간직한다면 더 좋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서울과 함께 나이를 먹는 우리 동네 주변의 오래된 공원이 되고 이 공간은 시민들이 스스로 아끼는 도시의 일부가 된다. 오래된 건물이나 노후화된 산업 시설을 개발해서 얼마나 수익이 날 수 있는가를 생각하기 보다는 우리에게 기억되는 공간으로 새롭고 또 오래된 공원이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할 수 있을 때 서울은 밤하늘의 별처럼 작고 많은 공원으로 가득찬 풍경이 될 것이다.
최문규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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