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보따리 내놓은 방미 경제인단

정치적 고려 없었다지만 투자 남부에 몰려

2017-07-03 13:15:22 게재

트럼프 지지 높은 곳, 위기 극복 지렛대? … 재계 "투자환경·지리적 요건 보고 결정"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미국을 방문한 경제인단은 앞으로 5년동안 미국시장에서 14조6000억원(128억달러)을 투자하고 25조5000억원을 구매하겠다는 선물 보따리를 내놨다.

상당수 기업들의 투자처가 남부지방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이 모여 있는 지역에 몰려 있는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탄핵 위기와 재선 기반을 다지기 위해 투자 유치를 통한 일자리 늘리기 전략을 강행하고 있다. 한국기업의 주요 투자처가 남부에 몰린 것은 이같은 트럼프 전략에 부응한 모양새다.

재계는 정치적 고려보다는 미리 검토해온 지역 가운데 투자환경이나 지리적 요건 등을 보고 결정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방미 52개사, 현지 공장설립이나 생산설비확충 나서 = 미국을 방문한 기업은 삼성전자 등 52개사다. 이들 기업은 미국 현지 공장설립이나 생산설비확충, 미래기술개발을 위한 연구개발 투자, 현지기업 M&A 등에 나설 계획이다.

삼성전자(사우스캐롤라이나, 텍사스) LG전자(테네시) 현대차(앨라배마) SK그룹(오클라호마, 텍사스) LS그룹(남부지역) 등의 투자지역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가 우세한 남부지역에 집중됐음을 알 수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사우스캐롤라이나 가전공장 설립 발표는 이미 지난해부터 검토해온 지역 가운데 투자환경이나 지리적 요건 등을 보고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뉴베리에 3억8000만달러(약 4300억원)을 투자해 내년초부터 세탁기 생산라인을 가동할 계획이다. 삼성전자가 직접 투자를 결정한 것은 1996년 텍사스 오스틴 시스템반도체 공장 설립 이후 21년만이다.

현대차는 이번 방미 기간 중 앨라배마 공장에 앞으로 5년간 31억달러(3조50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투자내용은 미래 신기술 확보를 위한 R&D, 기존 생산시설에서의 신차종 생산, 환경개선 등이다.

현대차 공장이 있는 앨라배마 공장은 트럼프정부의 실세인 제프 세션스(71) 법무장관의 지역구이기도 하다.

앞서 현대차는 그룹 계열사 15개와 부품협력업체 26곳은 미국에서 지난해까지 모두 102억9000만달러(11조7000억원)를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현대차그룹과 부품협력사는 미국 내에서 각각 1만7000여명, 1만2000여명의 일자리도 창출했다.

LG전자는 2019년까지 테네시주에 2억5000만달러(2847억원)를 투자해 세탁기 생산공장을 가동할 계획이다.

SK그룹은 앞으로 5년 동안 16억달러(1조80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잠재적 기회 확대 등 최대 44억달러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계열사인 SK E&S는 이미 2014년 미국 에너지기업 콘티넨탈리소스로부터 3억6000만달러에 미 현지 가스전 지분 49.9%를 인수했다. 이번에 SK그룹은 셰일가스 개발과 이용을 위해 콘티넨탈리소스에 투자를 확대하기로 했다. 콘티넨탈리소스 본사는 오클라호마주에 있다. 헤럴드 햄 콘티넨탈리소스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 관계자는 "콘티넨탈리소스 투자는 이미 진행중이고 이번에 확대를 구체화한 것"이라며 "GE와 아시아지역 수출 협력을 처음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미국 남부에 5년 동안 3억2000만달러(3600억원)투자하기로 한 LS그룹은 방미를 결정하면서 계획을 구체화한 경우다. LS그룹은 미국 남부에 4000만달러(455억원) 규모의 자동차 전장 관련 부품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LS오토모티브가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전선과 통신 케이블을 생산하는 미국내 계열사 수페리어 에식스의 설비 연구개발에 투자할 계획이다. 이 회사 본사는 조지아주 애틀란타에 있다.

LS 관계자는 "미국이나 미국 주변지역을 검토하다가 트럼프 당선이후 미국에 투자하는 것으로 결정한 것"이라며 "이번 방미를 준비하면서 투자 계획이 좀더 구체화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문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동행한 경제인은 철저하게 미국에 투자하고 있거나 미국에 투자계획이 있는 기업의 CEO로만 꾸려졌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이 과정에서 KT와 포스코 등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과 관련한 문제가 제기된 기업과 인물들은 제외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 방미 경제인단에 참여한 중소·중견기업들도 미국 투자에 적극 나섰다.

◆"기업하기 좋은 지역 고를 것" = 자동차부품을 생산하는 효림산업은 오랫동안 준비해 온 미국공장 신설에 2300만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미국 베니&어소시에이츠와 현지법인 설립 추진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특히 효림은 미국 업체로부터 80만개 자동차부품 주문을 수주해 생산거점을 마련할 기반도 갖췄다.

한무경 회장은 "올해 안에 현지법인 설립 계획이 수립되면 법인에서 현지 공장 신설을 추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시장에 모바일 지문인식 모듈을 수출하고 있는 크루셜텍은 4중 복합 생체인식 출입시스템 개발에 6500만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크루셀텍의 위조지문방지 솔루션은 지문인식과 생체신호를 동시에 읽어내 위조를 차단하는 기술로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안건준 회장은 "미국 내 협력사와 함께 미국시장 확대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시스템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데이터스트림즈는 현지 법인 설치와 영업, 기술지원 사무소 운영 및 사업 확장을 위해 3700만달러(421억230만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반도체검사장비·다층 세라믹 기판을 생산하는 엑시콘은 세라믹 및 초소형 센서 관련 미국현지 연구소와 생산시설 건설에 총 6000만달러(682억7400만 원)를 투자한다.

자동차용 연료펌프 분야 세계 1위 기업인 대화연료펌프는 차세대 전기자동차용 초소형 핵심부품 개발 및 양산에 7000만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크라운그룹(Crowne Group)과는 전자식 신제품 공급확대에 나선다.

미국 달라스에서 건강기능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뉴트리바이오텍은 향후 생산설비 증설에 1억달러(1137억9000만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오스템임플란트는 미국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 향상을 위한 현지 법인의 생산시설 확충과 영업조직 강화에 3000만달러(341억3700만원)를 투자한다. 시스템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데이터스트림즈는 현지 법인 설치와 사업확장 등을 위해 370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녹십자셀은 한국에서 성공한 항암면역세포제의 기술을 인정받아 메릴랜드주 정부 지원을 통해 현지에서 임상시험을 추진하는 동시에 투자유치도 협력해 나갈 방침이다.

경제사절단에 참여한 한 기업인은 "해외 투자는 현지 정부와 대통령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면서 "미국투자도 미국정부의 제조업 육성 정책과 활발해지는 경제상황 등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범현주 기자 hjbeo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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