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선물로 바꾸는 '위안화 결제 원유 선물계약' 나온다

2017-09-04 11:36:19 게재

중국, '석유달러' 맞서 '석유위안' 추진 … 사우디 끌어들일 경우 국제석유시장 40% 영향력 행사

중국이 위안화로 결제하고 이를 금으로 전환할 수 있는 원유선물계약을 곧 선보인다. 전문가들은 페트로달러(석유달러) 중심의 국제석유산업을 송두리째 뒤흔들 '게임체인저'(game changer)로 보고 있다.


닛케이아시안리뷰(NAR)는 지난 1일 "세계 제1의 석유수입국인 중국이 위안화 결제 원유선물계약을 내놓게 되면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주요한 유가기준이 될 전망"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투자펀드와 석유기업, 금융기관 등 외국 시장참가자에 개방하는 중국의 첫 번째 원자재선물계약이다.

현재 국제유가는 영국 ICE거래소의 브렌트유나 서부텍사스산 중질유 가격에 따라 정해졌다. 이들 지표는 미 달러로 표시된다. 중국측은 '더욱 매력적인 점은, 석유대금으로 받은 위안화를 상하이와 홍콩 거래소에서 금으로 전환가능하다는 것'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NAR는 "중국의 조치가 가시화되면 러시아나 이란과 같은 석유수출국들은 미국의 경제제재를 쉽사리 피할 수 있게 된다"며 "달러가 아닌 위안화 거래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거시경제연구소 FFTT 대표 루크 그로먼은 "석유를 둘러싼 국제적 게임의 규칙이 거대한 변화를 겪기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샤먼에서 열리는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흥경제 5개국 모임) 정상회의에 앞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위안화 표시 원유선물계약 출시를 앞두고 상하이국제에너지거래소(SIEE)는 잠재적 시장참가자들에 대한 교육을 시작했다. 지난 6~7월 준비작업을 마친 SIEE는 현재 시스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브렌트유-서부텍사스유 이어 3대 국제유가기준 추구

중국은 지난해 하루 평균 760만배럴을 수입했다. 중국 원유수입의 대부분은 국영석유기업과 해외 국영석유기업 간 장기계약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최근 중국의 메이저 국영기업과 군소 독립 정유사들 간 거래, 해외 석유대기업과 글로벌 트레이딩 기업 간 거래도 왕성해졌다.

에너지정보제공업체인 S&P글로벌플래츠 아시아국장인 앨런 배니스터는 "지난 수년간 중국 내 독립정유사들이 활발하게 참여하면서 보다 다양화된 시장 참가자들이 형성됐다"며 "이는 중국이 추진하는 원유선물계약 시장이 성공할 가능성을 높이는 환경요인"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오랫동안 국제 원자재시장을 좌우하는 미 달러의 영향력을 줄이길 원했다. 그 일환으로 2016년 4월부터 위안화 표시 금선물이 상하이금거래소에서 거래되고 있다. 올해말엔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금선물 거래를 시작할 계획이다.

위안화 표시 금선물 계약은 지난 7월부터 홍콩에서도 거래되고 있다. 위안화로 거래되는 금선물 계약이 점차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있다는 평가다.

골드머니 리서치장인 앨러스데어 매클리오드는 "위안화 표시 원유선물과 금선물의 존재가 의미하는 바는 거래자들이 실물금으로 전환할 수 있는 옵션을 가지게 된다는 점"이라며 "달러 결제를 피하고자 하는 석유생산업자에게 대단히 매력적인 점인 동시에 위안화로 석유대금을 받는 데에 아직 준비가 미흡한 석유업자들에게도 대단히 환영받는 아이디어"라고 평가했다.

게이브칼리서치 CEO인 루이스-빈센트 게이브도 "위안화 표시 금선물계약은 중대한 함의를 갖는다"며 "러시아와 이란, 카타르와 베네수엘라 등이 특히 그렇다"고 평가했다.

게이브 대표는 "이들 나라가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항할 경우 미국이 달러를 제재 수단으로 동원하면 꼼짝할 도리가 없었다"며 "하지만 앞으로는 이전과 같은 치명타를 입게 될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위안화로 결제되는 금선물계약이 생기면서 러시아는 중국에 위안화를 받고 석유를 팔 수 있다. 그리고 그 대금으로 홍콩에서 금을 살 수 있다"며 "그 결과 러시아는 가치변동에 취약한 중국 자산에 투자할 필요도, 적대적 관계인 미국의 달러로 바꿀 필요도 없게 된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소재 헤지펀드인 '울페스인베스트먼트매니지먼트'의 그랜트 윌리엄스는 "대부분의 석유생산업자들이 위안화로 받는 대금을 금으로 바꾸는 데 기뻐할 것"이라며 "거래국이나 거래업체는 석유를 금으로 바꿀 수 있는 전략적 기회를 얻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미국채를 보유할 이유가 없어진다. 미국채는 미 정부의 자의적 판단으로 발행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금선물 전환 옵션은 신의 한수 미국채 보유 필요성 낮춰

중국은 전 세계 석유생산업자들에게 '위안화로 석유를 거래하면 보다 많은 사업기회가 주어질 것"이라는 점을 계속 암시해왔다. 반대로 위안화 결제를 피하는 석유업자들은 중국 시장을 잃을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미국 동맹인 사우디아라비아가 대표적 사례다. 사우디는 석유달러를 통해 달러패권을 떠받치는 중심국이다. 현지언론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7월말 사우디에 위안화를 받고 석유를 수출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확답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가 자국 석유의 최대 수입국인 중국의 뜻을 따를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중국은 전체 석유수입량 가운데 사우디의 비중을 크게 줄여왔다. 2008년 25%에서 지난해 15%까지 내려갔다.

올 상반기 중국의 석유수입량은 전년 동기 대비 13.8% 늘었다. 사우디 수입분은 같은 기간 1% 증가에 그쳤다. 반면 러시아는 11% 급증했다. 중국의 최대 석유 수출국이다. 앙골라는 2015년 위안화를 자국의 2번째 공식화폐로 지정했다. 올 상반기 대중국 석유수출량이 22% 늘어 사우디를 밀어내고 2위 수출국으로 등극했다.

게이브 대표는 "만약 사우디가 위안화 결제를 받아들인다면 이는 미국에겐 커다란 실패사례로 기록될 것"이라며 "미국 입장에선 석유달러의 중심인 사우디마저 넘어가면 달러패권에 중대한 위협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미국은 사우디에게 현대식 무기 판매를 중단할 것이고 사우디왕가에 대한 전통적 보호자 역할을 더 이상 자처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게이브 대표의 전망.

그 반대의 경우도 사우디에게 불리하긴 마찬가지다. 게이브 대표는 "사우디가 미국의 뜻을 존중하다 결국 중국 시장에서 밀려나게 되면 막대한 석유보유고를 국제시장에 떨이로 내다팔아야 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현재의 유가는 더욱 더 하락할 가능성이 높아 사우디의 재정상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사우디에게 대안이 없는 건 아니다. 중국의 환심을 살 방안을 연구중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사우디 경제계획부 차관인 모하메드 알-투와이즈리는 한 간담회에서 "사우디는 위안화 표시 채권을 발행할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사우디는 중국과 200억달러 합작투자펀드를 조성하는 데 합의하기도 했다.

나아가 사우디 국영석유기업인 아람코의 5% 기업공개와 관련해 중국이 상당한 투자를 결행한다면, 양국 관계가 돈독해질 가능성도 있다. 아람코 상장은 역대 최대 규모로 점쳐진다. 아직까지 상장을 맡을 거래소와 기관, 가치산정 등 정확한 내역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사우디마저 참여하면 달러패권 심각한 타격

매클리오드 리서치장은 "만약 중국이 사우디 아람코의 지분을 사들인다면 사우디 석유의 가격결정권은 미 달러에서 중국 위안화로 전환될 수 있다"고 예측했다. 그는 "결정적으로 중국이 아람코와 관계를 맺는다면, 기존 끈끈한 관계인 러시아와 이란 등을 고려할 때 중국이 국제 석유생산량의 약 40%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르게 된다"며 "이는 달러패권에 맞서려는 중국의 위안화 굴기 여정에 중대한 진전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경제와 지정학에 대한 국제적 투자자들의 전략적 자문역할을 하는 사이먼 헌트는 "흥미로운 것은 당초 중국 지도부가 내년을 기한으로 시장 정비를 계획했지만 그 기한을 올해로 앞당겼다는 점"이라며 "석유대금을 위안화로 지급하면서 그 기한을 앞당겼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천연가스와 구리 등 또 다른 원자재 가격기준을 설정하려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아시아와 신흥국의 원자재 시장에서 위안화를 중심통화로 만들려는 시도다.

NAR는 "위안화로 결제되는 원유선물 계약은 글로벌 투자자와 펀드 등의 지대한 관심을 끌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한편 중국 국영 석유기업인 페트로차이나와 시노펙 등은 위안화 원유선물계약의 거래 기반을 닦기 위해 막대한 위안화 유동성을 제공할 방침이다. 현재 원유선물 계약을 거래할 수 있도록 승인받은 해외 참가자는 미국 은행인 JP모간과 스위스 은행은 UBS다. 하지만 조만간 군소투자자나 개인투자자 역시 위안화 표시 원유선물 계약을 거래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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