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기반 국제통화시스템, 폭풍전야 직면했나

2017-09-12 11:08:41 게재

러시아, 중국에 15톤 실물금 인도 … 중국이 금 전환 가능한 위안화 원유선물 내놓은 시점도 관심

미국 달러 중심의 국제통화시스템이 폭풍전야에 직면했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경제, 통화협력을 강화하면서 기존 달러중심 체제를 우회할 방안을 속속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금과 위안화가 자리하고 있다.
중국 오성기를 배경으로 한 100위안 지폐. 사진 연합뉴스

러시아 최대 은행 스베르방크는 실물금의 국제 거래를 위해 중국에 인도하는 금 규모를 2018년 10~15톤으로 늘리기로 했다. 러시아 스푸트니크통신에 따르면 스베르방크 투자부문장 이고르 불란트세프는 최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EEF)에서 "우리 은행은 내년 중국에 10~15톤의 실물금을 인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스베르방크는 지난 7월 스위스 지사를 통해 중국 상하이거래소에서 금 시범거래에 돌입했다. 시범거래에서 스베르방크는 중국 금융기관에 200킬로그램(약 440파운드)의 골드바를 인도했다. 스베르방크가 올해말까지 중국에 3~5톤 정도의 실물금을 인도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중국은 금으로 전환 가능한 위안화 결제 원유선물계약 출시를 예고했다. 지난 6~7월 상하이국제에너지거래소(SIEE)에서 시장참가 예정자들에 대한 교육을 마쳤고 현재 관련 시스템 확대 정비 작업을 진행중이다.

이같은 중국과 러시아의 움직임에 많은 전문가들은 의미파악에 분주한 상태다. 전 세계은행 경제분석가인 피터 쾨니히는 스푸트니크와의 인터뷰에서 "2014년 중러 양국이 약 1500억위안(250억달러) 통화스와프를 맺은 이후 경제, 통화, 무역협력이 지속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양국의 움직임은 달러패권을 벗어나기 위한 진일보한 계획 중 일부"라고 주장했다.

쾨니히는 "달러 중심의 서구 통화시스템은 기본적으로 부정직하다"고 지적한다. 민간이 만들고 민간이 소유한다. 국제결제시스템을 지배하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민간기구다. 연준과 함께 막대한 힘을 발휘하는 '중앙은행의 중앙은행' 국제결제은행(BIS)은 연준의 영향력 아래 놓여있다. 때문에 모든 국제 송금과 결제는 미 월가 금융권을 통해야 한다. 이 때문에 미국은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 나라들을 제재할 수 있다. 쾨니히는 "이는 불법적이며 국제 상규상 합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미국, 여차하면 금본위제 복귀?

국제사법재판소 역시 미국의 입김 아래 있다. 쾨니히는 "미국은 전 세계에서 저질렀고 저지르는 경제·군사적 범죄에 대해 책임을 진 적이 없다"며 "달러 중심의 통화 시스템이 전 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급속히 변할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서구의 경제적 종속에서 독립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상하이협력기구(SCO)와 브릭스 회원국들은 전 세계 인구 절반을, 전 세계 GDP의 1/3을 차지한다. 그는 "과거와 달리 이들 나라가 생존을 위해 서구에 종속될 필요가 사실상 사라지고 있다. 오히려 반대로 생존을 위해 서구가 종속돼야 하는 상황이 될 것"이라며 "이들은 사기에 기반한 달러 중심의 독점을 깨려 한다. 하지만 이 과정은 신중하고도 점진적으로 일어나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유는 뭘까. 쾨니히는 "브릭스와 SCO 가입을 희망하는 신흥국들은 여전히 미 달러에 의존하고 있고, 이들 나라의 외환보유고는 여전히 달러자산 중심"이라며 "서구 통화시스템이 급속도로 무너진다면, 신흥국의 피해도 전면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국이 금 보유를 빠르게 늘려가는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이 최후의 순간에 '달러 구하기'에 나설 것에 대비해 자국 통화를 지키기 위한 단계적 조치라는 것.

쾨니히는 "예를 들어 연준이나 미 재무부는 최후의 수단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해 금본위제로 복귀하려 할 수 있다. 이는 달러가치의 급격한 하락을 야기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금이나 금으로 전환가능한 통화를 보유하지 못한 나라들은 막대한 달러부채를 갚아야 하는 위기에 몰린다. 결국 또 다른 새로운 달러체제에 의존하는 노예국가가 돼야 한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20년 전 전 세계 국가들의 외환보유고 90%가 달러자산이었다. 현재 이 수치는 60% 아래로 내려갔다.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일단 달러 자산이 50% 이하로 내려가면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힘은 급속히 약화될 것이라는 게 쾨니히의 분석이다. 때문에 미국은 달러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새로운 형태의 금본위제로 복귀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되면 가치가 급락하게 될 달러를 뭉텅이로 갖고 있는 나라들은 막대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현재 중러 양국은 세계 최대 금 생산 국가다. 지난해 전 세계 금 생산량 3100톤 가운데 약 1/4 정도를 중러가 생산했다. 양국이 국제금값을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는 지렛대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국제금값은 달러로 표시된다. 서구 통화시스템에 완전 종속돼 있다. 따라서 이유를 알 수 없는 급격한 상황에 노출돼 있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달 말 벌어졌다.

지난 8월 25일 블룸버그통신은 "200만온스(약 56.7톤)의 금선물 거래가 단 1분 새 이뤄졌다"며 "연준의 재닛 옐런 의장이 미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세계중앙은행총재 연차총회에서 연설하기 20분 전"이라고 전했다. 블룸버그는 "당시 금은 2005년 이래 '60일 변동성'의 최저치를 찍던 때였지만, 단 1분간의 거래로 시장은 완전 뒤집혔다"며 "워싱턴 정치권의 부채한도 갈등, 연준의 금리인상 우려, 북미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 등에도 잠잠했던 금시장이었지만, 200만온스에 이르는 막대한 거래 때는 상황이 전혀 달랐다"고 보도했다.

쾨니히는 "그같은 금값 조작 의심 사례가 중국과 러시아의 금 거래가 확장되던 시기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자연스러운 결론"이라고 밝혔다.

미국 군사력·금보유량에 의문

한편 금거래 전문가인 빌 홀터는 온라인매체 글로벌리서치 기고문에서 "중국이 왜 지금 시점에 금으로 전환가능한 위안화 결제 원유선물을 내놓았는지가 질문의 핵심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2가지 가능성을 내놓았다. 첫째는 중러 양국의 군사력이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을 추월한 게 아니냐는 것. 금과의 연동성을 떼어낸 1970년대 초 죽어가던 달러를 구제한 건 석유달러였다. 이후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의 국가간 거래수단은 달러가 됐다. 석유를 사고 싶은 국가는 무엇보다도 먼저 달러를 사야 했다. 그래야 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거기서 벗어나려는 사람은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 사담 후세인과 무하마르 카다피가 대표적이다. 그를 가능케 한 건 미국의 막대한 군사력이었다.

홀터는 "중국과 러시아가 달러패권에 직접적으로 맞서는 조치를 내놓은 것을 보면, 양국이 더 이상 미국의 군사적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추론은 금보유와 관련이 있다. 현재 전 세계 각국의 금 보유량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극비사항이다. 특히 미국과 중국은 더욱 그렇다. 대강 짐작만 할 뿐이다.

확실한 건 실물금에 대한 수요가 언제나 공급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지난 20년 동안 약 1500톤 정도 공급이 달렸다. 실물금을 공급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서구의 금보관소다. 대표적인 곳이 미국의 포트녹스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미국의 금 보유량이 사실상 제로라는 주장을 수십년 동안 펴고 있다. 공적 감사가 중단된 지도 수십년이 지났다.

홀터는 "만약 중국이 미국의 금 보유량 잔고가 제로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왜 지금' 중국이 패를 꺼내들었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다"며 "미국의 군사력이 쇠퇴한 동시에 미국의 금 보유가 공식기록과 다르다는 점이 중국을 움직인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전 세계는 이제 달러 결제를 우회할 대안을 갖게 됐다"며 "달러를 사들일 필요가 줄어들었다. 이는 제조업이 사실상 와해된 미국이 수입품에 지불해야 할 돈이 치솟는다는 걸 의미한다. 매우 높은 인플레이션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달러수요가 급감해 달러가치가 약화되면 미국은 무역거래 대금을 마련하기 어려워진다. 게다가 국제결제에 사용할 금도 없다면 이는 미국의 파산을 의미한다는 게 홀터의 논리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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