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칼럼니스트 로빈 하딩 "워런 버핏이 미국 자본주의 망친다"
워런 버핏(사진)은 역사상 최고의 투자자다. 그의 성과는 탁월하다. 시장은 이기기 힘든 적이다. 하지만 그는 해를 거듭할 수록 시장을 이기는 사람이었다. 무일푼에서 순 재산가치 776억달러(약 88조원, 지난달말 기준)를 벌어들인 세계 4대 부호다. 누가 봐도 지혜롭고 매력적이다. 겸손하고 윤리적이기까지 하다. 그 어떤 축구선수나 정치인, 사상가가 그에 비할까.
87세의 고령인 버핏은 여전히 미국 경제와 금융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물론 긍정적 영향력이다. 기업들을 압박해 스톡옵션에 돈을 쓰도록 만들고 금융파생상품의 위험성을 설파한다. 대중들에게 저비용의 인덱스펀드를 이용한 장기투자를 권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 칼럼니스트 로빈 하딩은 12일자 칼럼에서 "자라면서 누구보다 워런 버핏을 존경했다"고 고백했다. 그렇지만 버핏을 존경하는 것과 별도로, 그의 영향력은 어두운 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딩에 따르면 1000여 종의 투자안내서에서 칭송하는 버핏주의(Buffettism) 투자이론의 핵심은 경제적 '해자'(moat)다. 해자란 적들로부터 성을 보호하기 위해 성곽을 따라 파놓은 못을 의미한다. 버핏주의는 높은 진입장벽과 확고한 경쟁우위로 독점적 지위를 가진 기업을 중시한다. 경쟁자를 따돌리는 동시에 실물경제에 자본투자를 최소화해 이익을 극대화하라는 말이다.
최근 쏟아지는 연구보고서는 경쟁 회피와 이익 극대화, 투자 최소화 등 버핏주의의 핵심요소가 미국 경제를 멍들게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프린스턴대 얀 데 뢰커 교수가 지난 8월 24일 공개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기업의 마크업(판매가에서 원가를 뺀 이윤)은 1980년 18%에서 현재 67%로 크게 늘었다. 지난주 브루킹스연구소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익 대비 투자는 지속 하락하는 추세다.
하딩은 "물론 이같은 흐름에 대한 책임이 버핏에게 있는 건 아니다"면서도 "하지만 그런 흐름이 버핏에게 막대한 부를 축적하게 한 원동력인 것은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버핏은 경쟁을 배제하고자 하는 자신의 바람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버핏은 2007년 "해자를 넓혀라"(widening the moat), "경쟁자가 쉽게 따라오는 사업을 싫어한다. 매우 가치 있는 성이 중앙에 있고, 그 주변에 넓은 해자를 파놓은 기업을 원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자신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경영자들에게 매년 '해자를 넓히라'고 요구한다. 버핏에게 경영을 잘한다는 의미는 명확하다. '두려운 상대가 있다면, 사업을 잘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버핏은 자신의 철학을 직접 실행에 옮기기도 했다. 그는 1977년 버펄로이브닝뉴스를 3250만달러에 사들였다. 한해 영업이익을 170만달러 내는 회사였다. 인수 직후 버핏은 일요판 발행을 강행하면서, 경쟁지인 버펄로쿠리어익스프레스를 시장에서 몰아냈다. 1986년 버펄로뉴스로 개명했다. 당시 세전이익 3500만달러를 내는 지역 유일 신문이 됐다. 이는 버핏이 단일 회사로 가장 많은 액수를 투자한 건이었다.
하딩은 "해자에 대한 버핏의 개념은 자본투자의 관점과 연관돼 있다"며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완성되는 것으로, 다른 것은 필요치 않다는 생각에 기반한다"고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가장 칭송받는 버핏의 투자는 씨즈캔디(See's Candies)다. 1972년 2500만달러를 들여 사들인 회사다. 매년 버핏은 캔디 가격을 올렸다. 판매는 거의 늘지 않았지만, 씨즈캔디의 브랜드 가치는 여전히 높았다. 이익은 점진적으로 늘었고, 설비투자를 요하지 않았다. 버핏은 지난해 "이상적인 사업은 자본투자가 필요치 않은 것, 그럼에도 계속 성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연히 투자자들은 그의 조언을 신줏단지 모시듯 대한다. 국민경제에서도 버핏의 패턴은 재생산된다. 투자는 최소화하고 이익은 극대화하는 것이다. 앨리스 슈뢰더가 집필한 버핏의 일대기 '스노볼'(Snowball)에 보면 버핏의 오랜 파트너인 찰리 멍거가 "당신의 경영 테크닉은 회사 현금을 모조리 취하는 것이고, 상품가격을 올리는 것"이라고 놀리는 장면이 나온다. 버핏의 방식을 한마디로 요약한 구절이다.
하딩은 "탁월한 능력의 버핏이 몇개의 기업을 골라 싸게 사들인 뒤 높은 수익을 내는 건 이슈가 될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추종자들이 경제 전반을 아울러 그의 방법을 따라한다는 게 이슈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요즘 버핏은 두 가지 방법으로 돈을 투자하고 있다. 하나는 유형자산에 투자하는 것이다. 진입 규제가 높아 적정한 이윤이 보장되는 전기, 철도 등에 한정해서다. 둘째는 브라질 사모펀드 '3G'와 합작해 버거킹이나 식품기업 크래프트하인즈에 투자한다.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비용을 줄이고 대신 주주이익은 높이는 방식을 강제한다.
그 덕분에 크래프트는 23%의 영업마진을 기록했다. 유형자본(토지 건물 기계 등) 대비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보통의 경쟁시장에서 그같이 높은 마진은경쟁기업들을 불러들여 동일 부문에 투자토록 하는 유인책이 된다. 그 결과 원래 기업의 시장점유율은 하락한다.
하지만 버핏의 영역에선 다른 상황이 벌어진다. 크래프트의 경쟁자인 유니레버나 네슬레는, 버핏의 방식을 따라하는 행동주의 투자자와 인덱스펀드 등 주주들로부터 '크래프트처럼 높은 마진을 달성하라'는 강한 압박을 받고 있다. 이들 기업은 투자와 경쟁에 힘을 쏟기보다 크래프트처럼 마른 수건을 쥐어짜는 방식으로 이윤을 맞춘다. 유니레버나 네슬레가 비용을 줄이면 줄일수록, 크래프트는 더욱 더 비용을 줄이는 데 매진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버핏이 말하는 '균형'(equilibrium)이 확고해지는 방식이다.
하딩은 "물론 버핏의 방식이 미국 내 투자가 감소하고 주주 이익은 높아지는 상황을 야기한 유일한 요인이 아니다"라고 전제하면서도 "하지만 눈여겨볼 대목은 버핏이 독점이윤을 추구하는 데엔 비상한 재주를 발휘하지만, 새로운 아이디어에 기반한 기업을 키우거나 과감한 모험을 강행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미국에는 그와 같은 기업들이 많다. 인공지능 자동차를 개발하고 미지의 영역인 우주를 탐험하겠다는 일론 머스크가 대표적이다. '꼴보수'라는 험담을 듣는 석유재벌 코흐 형제도 실물경제에 투자하면서 자신의 부를 축적하는 사람"이라며 "지금 미국에 필요한 사람은 버핏이 아니라 새로움을 추구하는 사람, 실물경제에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