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여는 책 | 단위로 읽는 세상

인류 문명의 보편적 언어 '단위'

2017-11-10 10:38:09 게재
김일선 지음 / 김영사 / 1만4000원

#1캐럿이 0.2g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면, 다이아몬드의 무게 단위로 그램을 써도 그다지 불편하거나 문제될 것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캐럿을 고집하고, 캐럿이란 단위가 살아남은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다이아몬드에만 사용되는 별도의 단위를 씀으로써 보석은 다른 물건들과 차별화되는 재화라는 것을 부각시킬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1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 받았어"와 "0.2g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 받았어"가 같다고 느낄 사람이 있을까? … 또한 그램을 단위로 사용하면 시중에서 거래되는 대부분의 다이아몬드는 무게가 1g, 즉 5캐럿이 되지 않는다. 1이라는 상징성을 숫자와 함께할 수 있는 다이아몬드의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단위에 남긴 사람은 국제단위계에 포함되지 않는 단위들의 경우를 모두 합쳐도 수십명에 불과하다. 일반적으로는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이 최고의 권위를 가진 상으로 여겨지지만, 노벨상 수상자는 100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서 매년 물리, 화학, 의학 등의 분야에서 여러명씩, 지금까지 수백명이 배출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단위에 자신의 이름이 남는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런 일인지 실감할 수 있다. … 만약 단위의 이름에 한국인의 이름이 붙어 있다면 어떨지 상상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우리나라의 라디오 방송에서 "오늘도 저희 KBS 1FM 방송을 애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주파수 93.1'장영실'에 맞춰주세요"라는 말이 나오는 걸 듣거나, TV 일기예보 프로그램 진행자에게서 "오늘의 최고 기온은 19'정약용'으로 야외 활동에 아주 적합한 날씨로 예상됩니다. 시청자 여러분도 즐거운 하루를 보내시기 바랍니다"라는 멘트를 듣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새로 나온 책 '단위로 읽는 세상'의 일부다. 이 책의 부제는 '미터에서 광년까지, 칼로리에서 캐럿까지 단위를 통해 본 과학과 문화, 문명과 일상!'. 이 책은 세계에 대한 인간 지식의 결정체이며 문명을 이룬 도구이자 더 분명한 소통을 위한 엄밀하고 보편적 언어인 단위를 통해 본 모든 것을 다룬다.

보잉 747 비행기가 불시착하고 나사의 화성궤도선이 불타버린 것은 다름 아닌 단위를 잘못 살폈기 때문이었다. 1미터의 정의가 지금과 달랐다면 우사인 볼트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가 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오랜 세월 불변의 기준을 추구해온 인류의 발자취, 단위를 두고 패권을 잡으려 국가와 집단들이 각축해 온 역사에서부터 현대인의 일상을 둘러싼 허다한 단위의 내력과 그 의미에 대한 과학적 설명, 다이어트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단위 활용법까지, 1권으로 읽는 단위의 모든 것이 이 책에 담겼다.

단위 때문에 불시착한 비행기

대학 재학 시절, 저자는 난생 처음 0점이라는 기막힌 점수를 받는다. 전자기학 중간고사에서였다. 아무리 봐도 시험 준비가 0점을 맞을 정도는 아니었고, 분명히 답을 맞게 써 낸 것도 있는 것 같아 이의를 제기하자 교수는 이렇게 일갈했다. "단위를 표기하지 않았잖아. 10과 10V가 어떻게 같은 것이냐?" 단위를 우습게 봤다가 호되게 당한, 썩 즐겁지 않은 기억이었다.

이런 개인적인 일이야 지나고 나면 웃으며 회상할 수도 있겠지만, 단위를 소홀히 했다가는 커다란 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1983년 7월 61명이 승객을 싣고 캐나다 몬트리올을 떠나 에드먼턴으로 향하던 에어캐나다 항공사의 최신 여객기 보잉 767은 연료 부족으로 한 공항에 불시착한다. 거듭 연료량을 점검했는데, 어떻게 비행 도중에 연료가 바닥날 수 있었을까. 조사 결과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항공 산업은 미국의 지배력이 압도적이어서 미터법이 아닌, 미국에서 주로 통용되는 야드파운드법 단위계를 사용해왔다. 그러나 보잉 767 기종은 개발비 절감과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해 일본 등 미터법을 사용하는 나라들과 공동으로 개발, 미터법을 기반으로 제작한 기종이었다.

당연히 연료량도 미터법 단위인 kg 단위로 파악했어야 하지만 야드파운드법에 익숙한 기장은 연료점검봉에 찍힌 수치를 파운드 단위를 쓸 때처럼 환산했다. 그 결과 기장은 연료를 실제보다 2배가 넘게 들어 있었던 것으로 잘못 생각했고 이와 같은 사고가 일어났던 것이다.

일상은 측정 행위들의 연속

이처럼 단위는 문제가 불거져야 비로소 주목을 받지만 실은 우리 삶을 둘러싸고 있는 존재이며 우리 삶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임을 이 책은 많은 흥미로운 예들을 통해 보여준다. 아침에 깨어나서 밤에 잠들기까지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행동은 무엇인가를 재는 일이다.

우리는 스마트폰의 충전 상태를 점검하고 버스의 주행 속도,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와 시간을 파악한다. 방 안의 밝기, 미세먼지의 농도, 옷의 빛깔과 촉감 등도 파악한다.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인간의 일상은 이와 같은 측정 행위들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측정의 대상이 되는 물리량에 대한 지식의 결정체가 바로 단위이다.

아울러 오늘날 인간의 각종 활동들은 대체로 단위라는 기반 위에서 이뤄진다. 예를 들어 상거래에서는 거래 당사자끼리 교환 대상의 가치를 가늠할 수 있도록 해주는 도량형이 필수적이다.

다양한 형태의 사고 파는 행위로 이뤄지는 사회에서 도량형은 가장 기본적 도구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간이 세계를 얼마나 세밀하게 이해하고 있는지는 이처럼 다양한 단위들에 대한 정의를 통해 알 수 있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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