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읽는 정치 | 6.29 선언과 한국 민주주의

한 세대 전 '6.29선언' 다시 읽다

2018-01-05 10:25:12 게재
강원택 등 지음 / 푸른길 / 2만원

1987년 민주화 이후 7명의 대통령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 1997년, 2007년, 2017년 등 세 차례 정파간 권력교체가 이뤄졌다. 미국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두 차례의 권력교체의 경험'을 민주주의 공고화의 조건으로 짚은 바 있다. 국회의 권한 강화, 사법부 독립, 시민사회와 언론의 자율성 등 지난 30여 년간 한국의 민주주의는 발전을 거듭해왔다.

'6.29 선언과 한국 민주주의'는 민주화 시발점의 중심에 있었던 '6.29 선언'을 재조명한 논문들을 묶었다. 구 질서하의 정치권력과 가까운 군 수뇌부를 개혁하고 또한 적대 세력의 일부와 정치적 협력관계를 형성해 새로운 정치환경에 적응한 것은 민주주의 진전과 관련해 결코 가볍게 평가할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본류다. 6.29 선언과 뒤이은 노태우 정부의 출범을 다시 읽을 필요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저항세력과 지배세력 간의 타협과 합의의 산물"이라며 "두 세력은 정치적 게임의 규칙을 개정하는 데 합의하게 됐다"고 봤다.

그는 "한국의 민주화는 불안전하고 불안정하게 시작했다"면서 "6.29 선언 이후의 개헌과정, 노태우정부 시기의 3당 합당, 김영삼 정부 시기의 군의 탈정치화 역시 6.29 선언과 노태우 정부에 대한 올바른 인식 없이는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노태우정부는 기원이 권위주의 체제였으나 정치적 타협에 의해 탄생, 민주적 정치질서를 만들어 가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6월 항쟁으로 탄생한 6.29 선언이후 민주세력은 구체제로부터 정권을 확보하지 못했다. 유권자는 노태우 대통령을 선택하면서도 총선에서는 여소야대를 만들었다.

대통령과 여당의 일방통행이 불가능해졌다. 대통령이 지명한 정기승 대법원장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야당에 의해 부결됐다.

익숙하지 않았던 대화와 타협을 시작해야 했다. 노 대통령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1990년 노태우(민정당)-김영삼(통일민주당)-김종필(공화당)의 3당 통합은 평민-민주-공화의 야당연합을 깨뜨리고 의회내에서 안정적 과반수를 확보해야 할 필요성에서 나온 정계개편이었다.

강 교수는 "군부개혁과 3당 합당은, 정파적 논란이나 당시의 현실 정치적 영향과 달리, 그런 점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며 "노태우정부 시기를 거치면서 구 체제하의 권위주의 세력은 자기 스스로의 변화를 통해 보다 민주적인 환경에 적응하는 데 성공했다"고 진단했다.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노태우정부는 권위주의 단절과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이중적 시대과제를 지고 있었다"면서 "권위주의로 퇴행하지 않고 최소한의 절차적 민주주의는 유지, 발전시킨 공은 인정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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