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들불처럼 일어난 미투, 이후를 고민하다
피해자의 목소리가 한국사회는 물론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미투 운동 이야기다.
유명인 미투부터 수많은 익명의 미투까지 피해자들은 오랫동안 바깥으로 표출하지 못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여러 통로로 내보내고 있다. 꽃뱀이니 무고니 자존감과 명예를 무너뜨리려는 반격이 무색하게 피해자들은 목소리 높이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그만큼 쌓여 있었다는 증거다.
활활 불타오르는 미투를 진정으로 지지하면서도 ‘미투 이후’를 냉정하게 묻는 사람들이 있다. 권김현영, 정희진 등 오랫동안 성폭력 근절 등 페미니즘 활동을 해왔던 연구자이자 활동가들이다.
그들은 묻는다. 언제까지 우리는 피해경험의 공통성에서 ‘땔감’을 구하고 분노하고 폭로해야 하는가. 늘 같은 곳을 맴돌고 있지는 않은가. 문제적 개인을 지목하며 가해(자)의 목록을 늘리고 피해받은 증거를 수집하는 것은 여성을 피해라는 현실에 정박시키는 것은 아닐까.(책 9페이지) 성차별과 성폭력 문제를 어떻게 하면 폭로의 정치가 아니라 일상의 정치로 지속시킬 것인가.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그들은 자신의 이론적 기반(페미니즘)으로 돌아와 성찰한다. 페미니즘은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처벌하자는 사상이 아니며, 성폭력이 누구나 무엇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과 폭력을 통해 정당화되고 실행돼 왔다는 것을 드러내는 작업이라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개념이 오용되고 남용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지적한다.
피해자의 목소리가 울려퍼지는 미투 운동의 한복판에서 ‘피해’와 ‘가해’를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예리하게 들여다본 저자들의 통찰이 놀랍고 용기 있게 느껴진다. 피해자 중심주의가 피해자의 말이 곧 진리이며 피해자 편을 들라는 뜻으로 잘못 해석돼 널리 퍼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