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회적 합의로 연금개혁 이루자

올해 국민연금 재정추계결과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올해로 네 번째인 재정추계는 2003년에 처음 시작하여 2008년과 2013년에도 시행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2003년 재정추계 때 언론을 비롯한 재정안정론자들은 기금고갈을 대서특필하면서 재정불안을 강조했지만 2008년과 2013년 재정추계 때는 그러지 않았다. 그러다가 올해 다시 재정불안론을 들고 나왔다.
재정안정론자들은 국민연금 기금수익이 낮다고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2017년 말까지 조성된 국민연금기금 785조원 중 보험료 조성분은 484조원이고 나머지 300조원은 기금수익으로 총조성액의 38%이다. 국민연금기금 수익률은 6% 내외로 외국과 비교해도 낮지 않다. 또 재정안정론자들은 기금소진에 대해서도 과도한 불안감을 조장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유럽 대부분의 나라는 기금이 소진된 채로 몇십년째 연금을 운영하고 있다. 독일 같은 나라는 1달 정도분의 준비금만 갖고 있다. 우리처럼 거대기금을 가진 나라는 5개국 정도인데 그 중 미국의 사회보장연금은 3∼4년치의 적립기금만 보유하고 있고 그것도 2034년 소진이 예상된다. 하지만 미국이든 유럽이든 기금소진으로 연금을 못 받는 경우는 없다.
그동안 우리사회는 재정안정프레임에 기초하여 1998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국민연금법을 고쳤는데 이 때는 민주정부 집권기였지만 보수언론들의 재정불안감 조장이 강력하여 재정안정론이 연금개편을 지배했다. 그래서 소득대체율을 40%까지 내리는 개편을 단행했는데 이 때의 40%는 40년 가입인 경우의 이야기이고 실제 가입기간은 25년 미만이므로 소득대체율도 25% 미만이다. 이렇게 급여를 낮췄으면서도 국민연금의 재정불안은 지속되고 있다. 재정안정론에 기초한 두 차례의 연금개편은 재정불안을 해소하지도 못했으면서 연금의 보장성만 훼손한 것이다. 이제는 그동안 재정안정론에 기초해 추진했던 제도개편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필요하다.
물론 현재 우리사회는 인구문제가 심각하여 이것이 연금재정에 미칠 영향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기금소진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고령사회는 노인부양부담이 커지므로 이는 우리사회 전체의 부양능력의 문제이지 연금기금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경우 노인부양부담을 완충할 수 있는 기금을 가진 것이다. 국민연금기금 조성액의 38%를 차지하는 기금수익은 개인이 관리해서는 낼 수 없는 수익이며 우리 사회가 공동으로 관리하여 이룩한 공동자산이다. 이런 공동자산을 사회투자에 활용하여 사회의 부양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고령사회를 대비하는 길이다.
고령사회에서 노인은 지금과 동일한 연령이 아닐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노인이라는 개념 자체가 퇴직과 연결된 것이며 퇴직은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는 없었다. 일률적인 노령이라는 현상 자체가 자본주의적인 현상인 것이다. 따라서 노령은 사회적 합의에 따라 준비를 갖추어 사회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또 고령사회에서 공적연금은 내수의 중요한 원천이다. 노후소득보장이 적정수준이 되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현 정부는 국민연금 재정추계에 맞추어 사회적 합의에 따라 연금개편을 추진하겠다고 국정운영 5개년계획에서 밝힌 바 있다. 고령사회 대비에는 연금종별에 따른 차등이 있을 수 없다. 공무원연금과 사학연금 등 특수직역연금과 국민연금, 기초연금, 퇴직연금 전반을 다함께 놓고 논의하는 사회적 대화기구를 하루빨리 출범시켜 범사회적 논의를 하기를 촉구한다.
남찬섭 동아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