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단체 집단행동에 위협받는 입법권(상)
로비·압력에 물리적 실력행사까지 … 도 넘은 집단행동
한유총, 사립유치원 3법 저지 총력
불리한 정책·법안마다 집단행동
민간 장기요양기관 회계기준
강화된 투명성 도로 '완화' 재시도
각종 단체와 협회 등 이익단체들의 도를 넘은 집단행동으로 국회 입법권이 위협받고 있다. 로비와 압력, 물리적인 실력행사까지 벌이며 국회의 입법활동을 침해하고 있지만 이를 근절할 근본대책 마련은 쉽지가 않다.
◆지역 내 영향력으로 국회 압박 = 최근 사립유치원 설립자와 원장들로 구성된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사립유치원 3법' 저지활동을 벌이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서울 강북구을)은 교육청 감사에서 적발된 비리유치원을 공개한 데 이어 사립유치원의 비리근절을 위한 '사립유치원 3법'을 발의한 바 있다. 사립유치원의 회계관리시스템 사용을 의무화하는 유아교육법 개정안, 정부 지원금을 보조금으로 바꿔 부정사용시 처벌을 강화하고 설립자의 원장 겸직을 금지하는 사립학교법 개정안, 학교급식 대상에 유치원을 포함하는 학교급식법 개정안 등이다.
사립유치원의 비리행태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워낙 컸던 까닭에 당초 이 법안들은 쉽게 처리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아직 제출하지도 않은 자신들의 법안과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자유한국당의 반대에 부딪쳐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여야 원내대표가 21일 국회 정상화에 합의하며 사립유치원 관련법을 정기국회 내에 처리하기로 했지만 각 당의 법안을 모두 모아 논의하기로 해 연내 처리는 오히려 불투명해졌다.
이처럼 '사립유치원 3법' 논의가 지지부진한 것은 한유총의 막강한 영향력이 작용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민주당 한 의원은 "한 곳에서 오랫동안 유치원을 운영해온 원장들은 지역 내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한다"며 "표를 먹고 사는 지역구 의원으로서 유치원 원장들의 얘기를 무시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달 초 박 의원이 주최한 '유치원 비리근절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한유총 회원들이 단상을 점거하는 등 과감한 실력행사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에 대한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립유치원 3법과 관련해서도 한유총은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적극적인 로비를 펼치고 있다. 법사위 소속 의원들에게는 '유치원 3법 수정요구안'이라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지난 14일에는 한국당 홍문종 의원과 토론회를 개최했다.
1000여명의 유치원 관계자가 참석한 이 토론회에서는 정부의 유치원 공공성 강화방안과 '사립유치원 3법'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토론회에 참석한 김순례 한국당 의원은 "현장에서 아이들 교육을 책임졌지만 이제 지원금을 썼다고 정부가 탄압한다"고 노골적으로 한유총의 편을 들기도 했다.
한유총은 과거에도 자신들에게 불리한 정책이나 법을 저지하기 위한 집단행동을 펼쳐왔다. 2002년 당시 정부가 공립단설유치원 확대 정책을 내놓자 한유총은 단설유치원이 예산낭비를 부추기고 사립유치원의 경영난을 가중시킨다며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또 2004년에는 어린이집이나 놀이방 등 보육단체의 반대에도 정치권을 압박해 영아와 유아를 분리하는 유아교육법 제정을 관철시켰다. 이밖에 국가 단위 유치원 평가 도입, 유치원 회계 감사 강화 등 주요 유아교육정책이 추진될 때마다 집단행동으로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입법과 정책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이익단체들의 집단행위가 도를 넘어서도 뇌물과 같은 명백한 불법이 아니면 차단하기는 쉽지 않다.
이현우 서강대 정외과 교수는 "입법과정에서 이익집단의 로비나 압력행사는 민주주의가 가진 어쩔 수 없는 한계"라며 "시민들이 주요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여론을 통해 압박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해관계자 로비보다 국민 전체 이익 중요 = 유치원 관련사태가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노후의 요양생활을 담당하는 장기요양기관의 회계기준을 완화하자는 기관 측의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2018년 9월 현재 장기요양을 적용받고 혜택을 받고 있는 노인은 전체의 8.6% 65만명에 이른다. 그런데 이들 노인에게 장기요양서비스를 제공하는 장기요양기관 가운데 소규모 영세 민간기관의 비율이 매우 높아 장기요양서비스 수준 향상이 주요해결과제로 제기돼 왔다.
소규모 영세기관이 전체 3만2735곳 중 2만2703곳(69.4%)이고, 1만6975곳(81.2%)은 개인이 설립해 부실운영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특히 타인 소유 시설을 임차해 운영하면서 투자금(임차료) 회수와 부채 해소를 위한 과도한 영리추구로 서비스 수준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2014년 국회는 장기요양기관의 회계기준을 강화하도록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을 개정작업을 시도했고 2016년 5월 개정됐다. 이후 보건복지부가 장기요양기관회계기준을 강화해 현재 20인이상 시설 등에는 회계기준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고 내년 5월부터 20인 미만 시설 등도 적용할 예정이다.
그런데 오제세(민주당, 청주시 서원구)의원이 7월12일 장기요양기관에 대한 재무회계기준을 완화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일부개정안을 내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 법안에서는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장기요양기관 재무회계기준을 따르도록 하는 것은 과도한 제약'이라며 회계기준 완화를 추진한다.
이와 관련 지난 1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오 의원이 주최한 '민간장기요양기관의 장기발전을 위한 제도개선토론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날 전국요양서비스노조는 "오제세법이 통과되면 비리 요양기관에 날개를 달아 주는 것"이라고 반발했고 토론장에 참여한 노조원들과 법안개정을 찬성하는 민간장기요양기관관계자들과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
민간장기요양기관 운영자들은 민간자본이 투입된 민간장기요양기관의 특성과 현장의 어려움을 고려해 비영리 재무회계규칙 대체입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냈다. 이날 발제를 맡은 박정훈 박사(사회복지학)는 현행 비영리 재무회계규칙에 대해 "예산보조금을 받는 기관으로 세입세출만을 기재하는 비영리기관에 적합한 재무회계규칙을 무리하게 개인자산을 투입한 민간기관에게 적용하고 있다"면서 "감가상각, 현금 흐름, 자산 부채를 평가해야 하는 민간기관에게는 부적합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노조 측은 "그동안 정부에서 고시한 인건비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 휴일근무수당이나 연장근로수당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7월 재무회계규칙이 도입돼 이런 불합리한 것들이 시정될 수 있는 상황에서 곧바로 폐지법안이 나왔다"고 비판했다.
김남희 참여연대 사회복지팀장은 "장기요양기관에 대한 최소한의 회계기준을 마련하자는 입법활동에도 당시 법사위 등 의원들의 지역구 사무실 앞에서 기관들이 실력행사를 해 진짜 어렵게 회계기준 강화법안이 통과됐다. 그게 몇 년 지나지 않았는데 완화하자는 후퇴법안이 나오는 것은 심각하다"며 "이해당사자들의 로비는 있을 수 있으나 국민전체를 위한 이익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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