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의 금융교실

저금리 시대의 아빠은행

2018-11-28 10:51:19 게재
박철 KB국민은행 인재개발부 팀장

필자가 코흘리개 초등학생 시절, 그 때는 집집마다 돼지저금통이 하나씩은 있었다. 그런데 돼지저금통을 볼 때마다 드는 의문이 '왜 돈을 넣는 구멍만 있고 꺼내는 구멍은 없을까'였다. 하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속이 꽉 찬 돼지저금통의 배를 가를 때면 쏟아져 나오는 동전들로 은빛 물결이 펼쳐졌다. 그때의 희열은 참고 기다린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보상이었다.

저축의 진짜 보람은 그 때부터 시작이었다. 돼지저금통으로 모은 동전을 은행에 가져가 통장을 만들면 이자라는 보너스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것도 두 자리대 금리여서 이자가 여간 쏠쏠하지 않았다. 저금통에 묻어둔 돈은 잠자고 있지만 통장에 저축하면 이자가 쌓여 돈이 불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어린 필자는 새로운 돈의 세상에 눈을 뜨게 됐다.

아빠가 아이에게 만들어 준 통장

이렇게 저축의 재미는 이자에서 나온다. 한 푼 두 푼 저금통을 채워가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이자가 차곡차곡 쌓여 통장에 불어나는 돈을 보면서 아이는 진정한 저축의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이자를 통해 불어나는 돈을 보면서 저축의 재미를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재미에 흠뻑 빠지다 보면 저절로 저축하는 습관이 몸에 배게 된다.

지금 소비하고 싶은 욕구를 참고 저축하면 미래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을 수 있다. 눈앞의 쾌락을 참는 사람이 미래에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마시멜로 효과'가 그 시절에는 저축과 관련한 경험적 진리였다.

하지만 요즘 같은 저금리시대에는 소액예금에 거의 이자가 붙지 않기 때문에 아이가 저축의 보람을 실감하기 힘들다. 저금리시대에 본격 진입하면서 저축하면 이자가 붙는다는 오랜 상식이 깨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정기 예·적금금리를 의미하는 은행의 저축성 수신금리는 1.56%였다.

그런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9%로 이를 웃돌아서 물가를 반영한 실질금리는 -0.34%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지난해는 은행에 저축할수록 오히려 손해를 봤다는 얘기다.

게다가 보통 만기가 1년 이상인 예·적금통장은 아이들이 저축의 보람을 맛보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1주일도 길게만 느껴지는 아이들에게 1년이란 너무 길다. 그래서 미국의 작가 데이비드 오웬은 저서 '아빠은행(Bank of Dad)'에서 부모가 은행역할을 대신하는 아빠(엄마)은행을 제안했다.

아빠은행도 실제 은행과 마찬가지로 통장을 만드는 데서 시작한다. 통장도 은행통장과 비슷하게 만들어 주되 색종이와 색연필, 사인펜 등을 이용해서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이나 사진 등으로 꾸며준다. 계좌번호도 아이가 좋아하는 숫자로 정하도록 하고 서명란에는 통장의 주인이라는 표시로 아이의 이름을 쓰거나 인주로 손가락 지장을 찍은 후 투명테이프로 붙여준다. 특히 표지의 통장이름은 게임기나 과학캠프처럼 아이가 정한 저축목표에 따라 직접 쓰게 한다.

저축하는 습관과 보람 키워줘

아이가 용돈이나 세뱃돈을 아껴 모은 돈을 부모에게 예금하면 부모는 저축했다는 표시로 '아빠은행통장'에 저축날짜와 금액을 적어준다. 이렇게 모든 것이 진짜 은행과 다를 게 없지만 차이점은 진짜 은행에 맡길 때보다 훨씬 많은 이자를 준다는 것이다. 저축에 대한 아이의 관심과 흥미를 훨씬 배가시키기 위해서다.

후한 이자 덕분에 아이는 소비보다는 저축이 훨씬 남는 장사임을 알게 되고 돈 쓰는 즐거움보다는 돈 모으는 즐거움에 빠지게 된다. 아이가 더 빨리 목표를 달성하고 저축의 보람을 맛보도록 필요한 액수의 절반을 모으면 나머지는 부모가 보태주는 식의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만 시중금리와 너무 동떨어진 고금리를 제공하는 아빠은행을 마냥 운영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아빠은행통장에 어느 정도 돈이 쌓이면 은행에 가서 아이명의의 통장으로 옮겨주면 된다. 아빠은행은 아이가 저축을 통해 꿈을 만들어 가고, 그 과정에서 보람과 성취감을 쌓아 가는 생생한 삶의 교재가 된다.

이처럼 아빠가 직접 만들어 아이와 함께하는 '아빠은행'은 아이에게 저축의 보람과 저축하는 습관을 심어주는 일석이조의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