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 노사, 서로 한계 있어 빠른 수습 절실

2019-01-09 11:23:30 게재

노, 정상영업 타격에 한계 드러내 … 사, 직원불만 팽배로 파업동력 확인

KB국민은행 노조 파업 장기화 우려

KB국민은행 노동조합의 파업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노사가 새롭게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노사 모두 이번 파업을 통해서 각자 처한 한계와 약점이 드러난 만큼 조기에 사태를 수습하고 힘을 모아야 한다는 목소리다.

업무 보는 고객들│KB국민은행 노조가 총파업에 나선 8일 오전 서울 시내의 한 KB국민은행 지점 모습. 해당 지점은 고객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파업에 참가하지 않은 직원 5명과 본사 파견직원 1명이 은행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노조 집행부만의 파업 아닌 것' 확인 = 금융산업노조 KB국민은행지부의 8일 하루파업으로 노사관계에서 어느 일방의 완전한 제압이나 패전이 어렵다는 점이 드러났다는 평가다. 특히 금융서비스업의 특성상 노사갈등이 장기화되면 고객불편을 넘어 고객이 이탈할 가능성도 있어 결과적으로 국민은행 구성원 모두의 패배로 귀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조의 이번 파업으로 국민은행 내부 직원들의 불만이 저변에 상당하다는 점이 확인됐다. 지난해 12월 27일 실시한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96.01% 찬성률과 8일 진행한 하루파업에 9000명 이상(은행측은 5500명 추산)이 참여한 것은 이번 쟁의행위가 노조집행부만의 파업이 아니라는 점이 드러났다.

특히 회사측이 노조가 요구한 성과상여금 300% 요구를 사실상 드러줬는 데도 파업을 강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내부의 다양한 직군과 직위에 있는 직원들의 요구를 쟁점화한 것이 주요했다는 평가다. 실제로 노조는 이번 파업과정에서 △페이밴드 철회(2014년 이후 입사 직원) △정규직 전환자 경력 인정(여성 직원) △임금피크제 도입 연령 연장(40~50대 직원) 등 사실상 전 직원의 이해 관계가 걸린 사안을 쟁점화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페이밴드는 일부 시중은행은 이미 시행중인 제도로 심각한 저성과자에 대한 인사 및 급여상 불이익을 주는 것이어서 필요한 제도로 꼽힌다"면서도 "10여년 전만해도 왠만하면 일정한 지위까지 승진이 가능했던 때여서 노조도 반대를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승진이 어렵기 때문에 후배 직원들 입장에서는 차별로 여길만 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4000명 안팎에 달하는 여성을 중심으로 정규직 전환자들의 경력을 호봉으로 인정하는 문제도 여직원을 중심으로 상당한 동력을 확보하는 쟁점이 됐다. 국민은행 한 중간관리자급 관계자는 "이번 파업 현장에 여직원들이 많이 참여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겠느냐"면서 "다만 이 문제는 대졸 남자 직원들과의 일부 갈등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연봉 9000만원이 왠 파업이냐'는 논리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억대연봉자가 72만명에 달하고, 국민은행에서 연봉 9000만원에 달하려면 제 때에 승진한다는 전제로 10년 이상 근무해야 가능하기 때문에 특권층 보듯이 할 수도 없다는 분위기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집값 오르고 생활비 폭등하는 것은 왜 보지 않느냐"면서 "도대체 연봉이 얼마여야 파업할 자격이 생기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이처럼 이번 국민은행 노조의 파업이 단순히 노조 상층부만의 것이 아니고 상당한 조합원 동력을 갖고 있는 것이어서 사측으로서는 분규가 장기화되면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 노조가 2차 파업일로 예고한 1월31일과 2월1일에 실제로 파업에 들어가면 설을 앞두고 월말과 겹쳐 8일 파업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객불편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파업 안내문 붙은 KB국민은행│노조가 총파업에 나선 8일 서울 시내의 한 KB국민은행 지점에 사과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국민은행 노조의 파업이 길어지고 고객불편이 예상되면 정부나 금융당국에서도 가만히 있겠느냐"면서 "시간이 지나면 파업 동력이 약화되고 사측이 우위에 설 것이라는 예측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국민은행은 이번 노조 파업으로 큰 고객 불편은 피했지만 본부장과 지점장 등 관리자급 인사를 일정보다 늦췄고, 해마다 연초에 하던 경영전략회의도 불투명해지는 등 경영상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파업해도 은행은 돌아간다는 것' 확인 = 국민은행 노조의 하루파업이 이른바 '뻥 파업'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지만, 회사의 정상적 영업에 타격을 줄 정도도 아니라는 점이 드러난 것은 향후 노조의 협상력 극대화에는 제약 요인이 될 전망이다.

금융위원회는 8일 김용범 부위원장 주재로 '위기관리협의회'를 가동하면서 국민은행 노조의 파업에 따른 비상상황 발생 등에 대비했다. 금융당국은 이날 노조의 파업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점에서 고객불편이 감지되기는 했지만 큰 사고없이 은행 서비스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안도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은행업무는 85% 이상이 인터넷이나 모바일뱅킹 등 '비대면 서비스'로 이뤄지고 있어 전산장애만 없다면 고객들이 정상적으로 금융거래를 할 수 있다. 국민은행측도 파업에 들어가기전부터 고객들에게 가능하면 비대면 거래를 권고하는 등 사전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노동계 관계자는 "파업을 통해 회사가 정상적 영업을 못하고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나 예상이 있어야 노조의 협상력이 배가되는 것은 상식"이라며 "이번에 회사가 완전히 손을 들지 않은 데는 이런 점도 예상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하루 파업은 회사측도 어떻게든 대책을 세울 수 있지만, 파업이 더 길어지면 은행측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기 직전 허인 행장이 성과급 300% 지급을 사실상 수용한 점도 향후 노조의 파업 동력에 일정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당초 노조가 요구했던 수준을 은행측이 들어준 것이어서 노조원들의 목표 하나가 달성된 셈이기 때문이다.

이밖에 페이밴드와 정규직 전환 직원에 대한 경력인정 등 주요 쟁점에 대해서도 은행측이 추가적인 논의를 통해 상당정도 변경하거나 수용할 의사가 있음을 밝힌 상태여서 노조의 투쟁 목표가 상당정도 무뎌진 점도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조합원들 큰 관심사인 보로금 300% 지급을 회사가 제안한 이후 '이제 그만 타결하라'는 직원들 여론이 생기고 있다"면서 "노조가 파업 강도를 더 이상 높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박홍배 노조위원장은 8일 기자간담회에서 "2차 투쟁까지는 안가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임단협이 마무리될 때까지 24시간 매일 교섭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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