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선물, 유통기한은 언제까지?

2019-01-18 10:47:10 게재

'커런시 워' 저자 제임스 리카즈 분석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 제롬 파월 의장은 지난해말 크리스마스 때 시장에 선물을 주지 않았다. 그러다 해가 바뀌고서야 다소 늦은 선물을 건넸다.

파월 의장은 이달 4일(현지시간) 전미경제학회(AEA) 연례총회에서 다음번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연준의 접근법을 설명하면서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지켜보면서 인내심을 가질 것"이라고 말해 시장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인내심'이라는 단 한마디 단어로 파월 의장은 시장이 원하는 가장 강력한 신호를 보냈다.

'커런시 워' 저자로 국제금융 전문가인 제임스 리카즈는 17일 금융블로그 '데일리 레커닝'에서 "파월 의장은 3월 금리인상 가능성을 일축했고, 기준금리 인상은 추가 신호가 있을 때 이뤄질 것이라는 점을 내비쳤다"고 분석했다.

파월은 인내심 발언 당시 준비된 문서를 꺼내 천천히 읽었다(사진 참조). 이는 파월이 자신의 워딩이 정확히 전달되도록 매우 신중을 기했음을 보여준다는 해석이다.

리카즈에 따르면 인내심이라는 단어는 연준 어휘록에서 오랜 역사를 갖는다. 2015년 3월 이전에 연준은 '공개시장위원회'(FOMC) 성명서에서 '인내심을 갖겠다'는 문구를 지속적으로 삽입했다. 이는 다음번 FOMC 회의에서 금리인상은 없을 것이라는 신호였다. 투자자들은 이를 믿고 '캐리 트레이드'(carry trade)를 지속할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국가에서 돈을 빌려 다른 나라의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다.

투자자들은 인내심이라는 단어가 연준 성명서에 포함돼 있는 한, 특별한 사전 고지 없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캐리 트레이더들이나 위험등급 자산 투자자들에겐 '공습경보 해제'(all clear)와 같은 성격이었다.

인내심이라는 단어가 삭제된 때는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을 논의 테이블에 올렸다는 의미였다. 그와 같은 경우에 투자자들은 '캐리 트레이드를 중단하고 자금을 회수할 때', '안전자산으로 이동할 때'라는 사전 고지를 받는 격이었다.

2015년 3월 전임 재닛 옐런 의장은 FOMC 성명서에서 인내심이라는 단어를 없앴다. 언제라도 기준금리가 인상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었다. 시장은 이를 감지했다.

실제로는 2015년 12월이 돼서야 기준금리가 올랐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첫 인상이었다. 하지만 시장은 같은 해 6월과 9월 FOMC에서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연준은 당초 9월 FOMC에서 기준금리 인상을 예정했지만, 전달인 8월 미국 증시가 붕괴하는 바람에 이를 미뤘다. 중국이 그해 8월 10일 갑작스런 위안화 절하를 단행하는 바람에 미국 증시가 이후 4주 동안 무려 11% 하락했다.

이달초 파월 의장의 발언으로 2015년 이후 처음으로 인내심이라는 단어가 다시 등장했다. 이는 사전 고지 없이 기준금리 인상은 없을 것이라는 의미다. 물론 새로운 데이터와 새로운 성명서가 발표되면 언제고 다시 바뀔 수 있다.

리카즈는 "하지만 최소한 올 3월 FOMC까지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시장이 12월 증시 하락세 흐름을 반전시킨 이유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아직 숲을 벗어난 건 아니다. 연준이 오는 3월 기준금리를 인상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것이 오케이'라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증시는 파월 의장의 발언 이전에 이미 연준이 3월 기준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파월 의장이 다시 한 번 재확인시켜주는 성격이었다.

오히려 기준금리 인상보다 더 큰 위협요소가 서서히 등장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리카즈는 "바로 중국"이라며 "많은 전문가들이 눈치채지 못하고 있지만, 중국은 연준보다 더 빠르게 통화공급을 줄여나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을 당분간 보류했지만, 양적긴축 프로그램을 통해 통화공급을 줄여나가는 것에 대해선 아직 입장 변화가 없다. 현재 연준은 연간 6000억달러 규모의 통화를 줄여가고 있다. 여기에다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전쟁 와중에서도 위안화 가치를 높이기 위해 미국보다 더 신속히 통화를 흡수하고 있다.

리카즈는 "글로벌 GDP의 40%를 차지하는 세계 1, 2위 경제대국들이 통화공급을 줄이고 있다는 건 시장에 좋지 않은 징조"라고 지적했다. 그는 "1976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고 밀턴 프리드먼 교수의 통화주의 이론에 따르면 통화정책의 효과는 12~18개월 시차를 두고 나타난다"며 "미국과 중국의 통화공급 축소는 약 1년 전에 시작됐다. 양국 중앙은행이 시행한 긴축정책의 첫 번째 파급력이 지금에서야 느껴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리카즈의 분석이 맞다면 미국과 중국의 통화긴축에 따른 파급력은 내년에도 지속될 것임을 의미한다. 이는 연준이 오는 3월 기준금리를 동결하는지 여부와는 상관이 없다.

리카즈는 "금리인상 중단은 빙판길을 운전하면서 브레이크를 밟는 것과 같다. 차가 멈출 때까지 상당 거리를 미끄러져 갈 것"이라며 "미끄러지는 동안 거대한 싱크홀을 만나지 않기만을 바라야 한다"고 비유했다.

파월 의장의 발언으로 시장은 다소 흥분해 있다. 하지만 파월의 '구두'(verbal) 선물은 곧 약발을 다할 것이다. 연준은 최소한 3월까지는 별 다른 추가 선물을 제공하기 어렵다. 그 이전에 중국이나 미국의 경제성장이 상당히 둔화된다는 데이터가 나온다면, 미중 무역전쟁이 진전 없이 지속되거나 오히려 악화된다면 시장은 차가운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최근 애틀랜타 연방은행이 2018년 4·4분기 미국 경제성장률을 2.6%로 예측했다. 지난해 11월 3% 성장 추정치에서 크게 줄였다. 미국 경제의 둔화가 예상보다 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과 중국, 유럽은 동시다발적으로 경제활동 둔화를 겪고 있다.

리카즈가 지적하는 또 다른 악성 촉매제는 중국의 신년 연휴다. 이달말 시작돼 약 2주간 진행되는 중국의 신년 연휴엔 생산성이 둔화되고 시장의 유동성이 줄어들게 된다. 이는 글로벌 시장 변동성을 확대시킬 위협요소가 된다.

이달 30일 연준은 FOMC를 개최한다. 기준금리 인상은 없을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성명서는 발표된다. 시장은 인내심이라는 단어가 포함되는지를 예의주시할 것이다. 리카즈는 "만약 인내심이 사라진다면, 이달초 시작된 시장의 완화 기대감은 급격히 반전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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