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주민 상생하는 가게 따로 있다

2019-01-25 11:07:20 게재

보행통로 넓어지고 위생·안전 확보 … 동작구 단속보다 대화로 해법 찾아

"인도가 이렇게 넓었나 싶어요. 전에는 상가 가판대하고 포장마차가 뒤섞여서 지나다닐 수가 없었어요." "깨끗해졌다고 손님들이 좋아해요. 시·구 위생 점검을 받고 위생증도 발급받았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노점상과 인근 상인, 주민간 갈등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서울 동작구가 상생 해법을 찾아내 눈길을 끈다. 무조건적인 단속이나 철거 대신 1~2년에 걸쳐 대화를 이어가면서 한발씩 양보를 이끌어냈고 보행로 확보와 함께 위생·안전까지 챙기는 효과를 봤다.

서울 동작구가 꾸준한 소통으로 거리가게와 인근 상가, 주민간 상생방안을 찾았다. 노량진 학원가에 자리잡은 컵밥거리를 상대적으로 보행로가 넓은 사육신공원 앞으로 옮겨 조성한 컵밥거리가 대표적이다. 사진 동작구 제공


공무원시험 학원가가 몰린 노량진 '컵밥거리'가 시작이었다. 노량진삼거리에서 만양로 입구에 이르는 220m 구간에 36개 노점이 난립, 상인과 주민들이 불편을 호소하는 곳을 중심으로 철거와 과태료 부과 등을 이어오던 차였다.

2014년 7월 이창우 구청장이 취임하면서 소통으로 방향을 틀었다. '주민 신고, 단속, 영업 중단 후 재개' 형태로는 갈등만 커진다고 판단했다.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서로의 얘기부터 들어보자는 취지에서 그해 10월 '거리가게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노점상과 인근 상가·주민 대상 설문조사, 노점상 공청회, 노점 이용자 대상 설문조사, 관련 단체 대표와 구청장 면담을 8개월여 이어온 끝에 대원칙을 마련했다. 기업형은 근절하고 생계형은 상생을 도모하되 타인은 물론 자녀에게도 양도는 않기로 했다.

보도가 넓어 보행에 지장을 주지 않는 인근 사육신공원 입구에 '거리가게 특화거리'를 조성했다. 만양로 입구~사육신공원 앞 270m 구간이다. 상인들은 규격화된 점포와 눈·비가림막을 자체 제작했고 구는 상·하수도 전기시설을 설치했다. 쉼터와 특화거리 상징조형물도 들어섰다. 지난 가을에는 인근 먹자골목과 연계해 수험생을 응원하는 야간난전을 열었는데 이틀간 5만여명이 몰렸다.

노량진 특화거리가 마무리된 뒤에는 지하철 4·7호선 이수역 '이수사계길'에 집중했다. 환승역인데다 여러 노선버스가 정차하는데 300m 구간에 거리가게만 51개에 달해 통행로가 확보되지 않고 안전사고 위험이 크다는 지적이 많았다. 인근 상가도 가판대를 확장, 경쟁을 하고 있었다.

2016년 가을부터 거리가게와 간담회 등을 60여차례 진행했다. 상인들 스스로 "구 담당자와 1주일에 한번꼴로 만났다"고 할 정도다. 주민과 점포주, 인근 상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70% 이상 찬성해 동력을 얻었다.

2년여만에 '찾고 싶고 걷고 싶은 사람 중심 문화거리'를 목표로 노점 축소·재배치, 문화·예술공간 조성, 남성사계시장과 주변 상가와 연계 3가지 방향을 세웠다. 재산조회 등을 거쳐 자격이 되지 않는 거리가게 등을 제외하니 24곳이 남았다. 기존 상가도 가판을 축소하도록 했고 자투리 공간을 찾아내 야외공연장으로 꾸몄다.

상인들은 당초보다 매출은 줄었지만 시민들 반응에 힘을 얻는다고 입을 모은다. 김종근 민주노점상연합회 동작지회 사무국장은 "점포 디자인에 상인들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아쉽다"면서도 "상·하수도 설치가 돼있어 마차를 끌고 다닐 때보다 정리하는 시간이 1시간가량 줄고 더 깨끗하게 영업준비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거리가게가 쉬는 날은 백화점 영업에도 영향이 있다고 한다"며 "무엇보다 시민들 반응도 좋다"고 덧붙였다. 전재수 컵밥거리 대표는 "영등포 송파 동대문부터 멀리 충청도에서도 벤치마킹을 올 만큼 거리가게 모범사례로 자리잡았다"며 "특화거리가 유지되도록 공공에서 홍보나 축제 등 지원을 강화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동작구는 거리가게 실명제·운영규정 등을 통해 제도권 편입을 추진하고 있다. 도로점용료를 부과, 1년 단위로 허가를 연장하고 거리가게에도 주소를 부여했다. 상인들도 질세라 지역사회 기여방안을 고민 중이다. 컵밥거리는 점포당 5만원씩 노량진1동에 지역발전기금을 3년 이상 내고 있고 이수사계길은 소외계층 청소년 학비지원과 홀몸노인 식사대접과 함께 점포마다 이웃돕기용 돼지저금통 비치를 구상 중이다. 이창우 동작구청장은 "지역 주민과 상인이 소통하며 이루어낸 결과"라며 "거리가게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한편 주변 상점과 상생효과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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