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임단협 일단락, 산별교섭체제 무기력 드러내

2019-01-28 11:28:20 게재

임금체계·임피제 핵심쟁점 봉합 … "노사, 서로 필요에 따라 임피제 존속"

"정년 60세·4차산업혁명 대안 마련" … 4대 시중은행 노조, 금노에 불만

주요 시중은행을 비롯해 은행권의 임금 및 단체협상이 일단락됐다. KB국민은행 노조가 하루 파업을 벌이면서 갈등이 격화되기도 했지만, 노사간 큰 마찰없이 무난하게 마무리됐다는 평가다.

이 과정에서 금융산별 교섭체제가 무력했다는 평가와 함께 대형 시중은행 노조를 중심으로 금융산별노조에 대한 불만도 일부 드러났다.
KB국민은행 노사, 임단협 타결 | KB국민은행 노사는 지난 25일 2018년 임단협 조인식을 가졌다. 이날 허인 행장(사진 오른쪽)과 박홍배 금융노조 KB국민은행 지부장은 임금 및 단체협약안에 정식 서명했다. 사진 KB국민은행 제공


◆핵심쟁점은 봉합하고 넘어간 산별교섭 = '산별교섭+지부별(은행별) 보충교섭'의 틀을 갖는 금융산업노조(위원장 허권)와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회장 김태영)는 지난해 9월 △임금 2.6% 인상 △임금피크제 도입 연령 1년 연장 △주 52시간 상한제 도입 △기간제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 △중식시간 1시간 휴게보장 등의 현안에 합의했다.

노사는 당시 산별합의를 하면서 합의사항의 구체적인 이행은 개별 지부차원에서 보충교섭을 통해 보완하기로 했다. 실제로 개별 지부별 보충교섭이 완료된 시점에서 살펴보면 지난해 산별합의의 큰 틀은 유지됐다는 평가다. 일부 은행측에서 임금피크제를 1년 연장하기로 한 산별합의에 난색을 표시하면서 난항을 겪었지만 대체로 합의대로 시행키로 했다.

임금인상률(2.6%)도 처우가 미흡한 일부 직원에 대해 추가로 인상했지만, 산별합의대로 결론이 났다. 주52시간 근로는 올해 7월부터 법적으로 전면시행이 의무화된 것이어서 시행이 조금씩 당겨진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인 정년(임금피크제)과 임금체계 문제에 대해 노사 모두가 본질에는 접근하지 못하고 땜질식 처방으로 그쳤다는 지적이다. 정년연장법 시행으로 60세 정년이 의무화된 마당에 임금피크제는 근로조건을 후퇴시키는 주범으로 인식됐다. 이에 따라 금융노조도 당초 '정년 60세 보장+임금피크제 3년'을 통해 정년 63세를 주장했다.

이에 대해 사측은 정년 60세를 현재의 임금 및 승진체계에 그대로 적용할 경우 감당하기 어렵다는 반박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55세에 희망퇴직으로 대규모 인력을 정리해도 밑에서는 승진을 못한다고 아우성"이라며 "노조도 희망퇴직을 적극적으로 환영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임금체계는 '호봉제'를 고치자는 사측에 맞서 노조가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번 국민은행 노조 파업에서 핵심 쟁점이 된 '페이밴드'도 결국은 호봉제의 일부 변형을 꾀하려는 사측에 노조가 반대하면서 발생한 것이다. 금융산별 노사는 지난해 '임금체계 개편 TF'를 비롯해 4개의 TF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진척은 없는 상태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년과 임금체계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면서 "이번 노사간 교섭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 대신 노사가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땜질식 봉합을 하고 넘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허권 금융노조 위원장은 "금융노조 차원에서 정년 60세와 4차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대안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노조 지도력에 의구심 갖는 지부들 = 금융노조 안에서 주요 시중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4대 시중은행과 농협은행을 포함한 5대 주요은행은 조합원 수와 조합비 납부 등에서 금융노조의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이런 대형 지부에서 금융노조에 대한 불만이 나오고 있다.

한 시중은행 노조 간부는 "금융노조가 지나치게 중소규모 지부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고, 정치활동에 매몰돼 대형 지부에 대한 지원활동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며 "조합원들과 간부들 안에서 금융노조의 존재감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형 은행노조 안에서는 금융노조 위원장을 오랫동안 맡지 못한 것에 대한 상실감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임 위원장은 국책은행 출신으로 6년간 집행부를 이끌었다.

정치활동에 너무 편향돼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노조는 그동안 더불어민주당 정책협약을 맺었고, 지난 대선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을 공개 지지했다. 허권 위원장은 지난해 민주당 노동위원회 위원장에 출마했다가 낙선하기도 했다.

한 시중은행 노조위원장은 "사실 민주당에 줄 것 다주고 얻은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면서 "금융노조가 적극적으로 정치활동을 한다고는 하지만 인터넷은행에 대한 은산분리 완화도 막아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허 위원장은 28일 내일신문과 통화에서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다면서 적극 반박했다. 허 위원장은 "금노가 열악한 상황에 있는 작은 지부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지원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면서 "대형 지부에 대한 지원활동도 전혀 소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허 위원장은 또 "민주당과 연대 문제는 은산분리법 통과 과정에서 국회 출입정지까지 당하고, 민주당 노동위에서 금노를 제명하겠다고 한다"면서 "우리는 민주당이 정책협약을 안지키는 것에 대해서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8일 노조의 파업으로 극한 대치를 이뤘던 KB국민은행 노사는 25일 핵심쟁점인 '페이밴드' 등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인사제도 TF'를 구성해 운영하기로 하는 등의 내용을 중심으로 한 임단협 합의안에 서명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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