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마을을 밝게 만드는 ‘정원의 힘’

2019-03-26 08:16:54 게재
황정환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원장

지난달 직원들과 함께 조직 문화와 관련된 특별강의를 들었다. 강의 중간에 나온 한 영상에서는 마을 전신주 옆에 작은 화단을 만든 사례가 소개됐다. 쓰레기로 가득하던 공터에 팬지꽃을 심자, 불법 쓰레기가 눈에 띄게 줄었다. 물리적으로 엄청난 돈과 시간을 쏟지 않고도 작은 기적을 만들 수 있다는 전문가의 설명 그대로였다.

최근 도심 속 아파트, 도심 근교의 전원주택, 그리고 도시재생 지역의 노후화된 단독주택 단지까지 회색 공간을 녹색 공간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세계의 정원 산업 매출은 우리 돈 200조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원래 정원(Garden)을 의미하는 ‘Garda’라는 단어는 풀과 꽃, 과일나무 등을 아름답게 조성하고 음악을 듣거나 독서 산책 등 편안하게 휴식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장소이다.

집 가까이에 실용적 정원 만들어 생산적 여가 활동을 즐기는 추세

전에는 부유한 이들이 즐기기 위해 정원을 만들었지만, 최근에는 집 가까이에 실용적인 정원을 만들어 생산적인 여가 활동을 즐기는 추세다. 산이나 공원에 가지 않고도 주거지 바로 앞에서 산책과 운동을 할 수 있고 시각적으로도 쾌적함을 줄 수 있는 공간이라 환영받는 듯하다. 특히 주민이 함께 가꾸는 마을 정원은 도시 재생과 공동체 활성화라는 사회적 가치와 맞물려 주목을 받고 있다.

마을 정원의 장점 중 하나는 동네 곳곳이 계절마다 볼거리가 있는 깨끗하고 생기 넘치는 공간이 된다는 점이다. 농촌진흥청은 2015년부터 서울 성수동을 시작으로 골목길, 공터, 상가 앞에 주민과 함께 정원을 꾸미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작은 화단에는 잎 색이 예쁜 황금 조팝나무부터 구절초, 비비추, 아스타 등 다년생 식물을 심어 지속적인 정원이 될 수 있게 꾸몄다. 일반 주민뿐 아니라 음식점, 약국, 꽃집 주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식물 공부도 하고, 화단도 만들고, 정원 이름도 직접 지었다. ‘이불가게 코너 정원’ ‘이발소 꿈 정원’ ‘아내를 위한 약초 정원’ 등 듣기만 해도 아늑해지는 공간 20곳은 이렇게 탄생했다.

마을 정원 조성 사업은 현재까지 8개 지역에서 총 2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정원 조성 이후 진행한 설문에서는 87.5%가 만족한다고 답했다. 마을이 밝고 깨끗해진 점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지역 쓰레기 투기나 범죄 문제가 줄었다는 답도 81%에 달했다.

다음으로 마을 정원은 자연스럽게 사람을 한 곳으로 모으는 역할을 한다. 요즘 새로 생긴 아파트를 보면 문을 꼭 닫아두고 얼굴도 모른 채 살아간다. 이런 곳에 정원을 꾸미면 꽃과 나무들이 자연스럽게 사람을 모은다. 각자의 정원을 어떻게 꾸밀 것인지, 무엇을 자랑할 수 있을지, 아이디어는 곧 정원의 밑그림이 된다.

이웃 간의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잦아지면서 담은 낮아지고, 식물이 자라듯 공동체 의식은 한 뼘 한 뼘 성장한다. 공동체 활성화는 한 나라의 선진화 수준을 나타내는 사회 자본의 중요한 요소라고 한다. 사람의 활동을 기반으로 한 정원 가꾸기가 도시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변화를 이끌 수 있으니 꼭 맞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마을 정원은 도시 환경을 건강하게 만든다. 식물은 생장을 위해 뿌리로 양분과 수분을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한다. 이를 통해 주변 토양과 수질, 공기가 정화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 환경 선진국에서는 옥상녹화, 벽면녹화, 생태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입체 녹화를 진행해 환경 도시로서의 초석을 다져나가고 있다. 치유와 교육의 기능도 정원 가꾸기의 부수적인 기능이라 할 수 있다.

마을 정원은 도시 환경을 건강하게 만들어

우리나라에 도시농업, 마을 정원 문화가 뿌리를 내린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나 변화의 속도로 가늠해 보면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산업적, 경제적 측면보다 사회적 가치에 더 주목하고 싶다. 환경을 중시하는 시대, 정서적 안정이 필요한 시대가 아니던가. 녹색혁명, 백색혁명으로 국민의 먹거리에 앞장섰던 농업이 이제 공생과 공존의 가치를 이끄는 마음혁명을 일으켜주길 바란다. 마을 정원의 역할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황정환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