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태정 변호사의 범죄파일| (17) 직장상사 강제추행 사건
피해자, 죄책감 느껴도 용기내야
A(여, 만 25세)는 유명 기업에 취업했다. 그런데 어느 날 회사 임원의 아들 B(남, 34세)가 A의 부서 과장으로 배치됐다. B는 A에게 수고가 많다며 저녁식사를 제안했다. 회식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리에 나간 A는 B만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당황했다. 하지만 유부남인 B에게 다른 의도가 있진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함께 저녁을 먹었다. B는 지하철역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하며 A를 차에 태운 후 한강 공원 둔치에 주차 후 A를 추행하기 시작했다. A는 차문을 박차고 나와 빗속을 달려 간신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A는 B에 대해 고소를 할지 여부를 결정하면서 다음과 같은 고민을 했다.
저녁 식사 제안을 받았을 때 회식인지 여부를 잘 알아보지 않거나 식사가 끝났을 때 차로 배웅해주겠다는 B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한 것이 자신의 잘못이 아닌가에 관한 것이었다. 이 사건이 회사에 알려질 경우, 사람들이 왜 단둘이 저녁을 먹었지? 왜 그 시간에 단둘이 그곳까지 갔지? 라고 생각하며 둘의 관계를 의심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들자 A는 고소를 하는 것이 실익이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됐다.
많은 피해자들이 사건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죄책감을 느끼고, 추행에 즉각적으로 적극적인 거부의사를 표현하지 못한 것을 자책한다.
스릴러 영화처럼 어두운 밤 인적 드문 곳에서 낯선 사람의 습격을 받아 성범죄 피해를 입게 되는 예는 실제 많지 않다. 오히려 친구, 선후배, 직장 동료 등 지인이나 과거 연인이었던 관계에서 사건들이 발생한다. 즉, 그만큼 피해자 입장에선 예상치 못한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가해행위가 발생하면 바로 적극적인 거부 반응을 보이기보다는 당황해서 멍하게 있다가 뒤늦게 저항을 하거나 사건 직후에도 충격으로 한동안 법적 대응에 나서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가해를 유발할만한 어떤 빌미를 보인 것은 아닌지를 자책하며 고소를 망설이게 되고, 가해자는 그런 약점을 파고들어 합의된 관계로 몰아가려 한다. 그러나, 길에서 강도를 당했다고 해서 지갑에 돈이 있던 것을 자책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죄책감의 동굴로 들어가기 보다는 피해 회복을 위해 한발 나아가는 용기를 내볼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