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 그대로' 선거제 개혁 '첫발'

2019-04-23 10:59:39 게재

4당 패스트트랙 합의

총선 앞 정계개편 가능성

본회의 통과는 불확실

여야 4당이 선거제 개혁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등 개혁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기로 함에 따라 '민심 그대로' 선거제 개혁의 첫발을 뗄 수 있게 됐다. 국민적 지지에도 20여년간 추진되지 못했던 공수처를 설치할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졌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의 반발과 총선을 앞둔 정계개편 가능성 등 변수가 많아 최종적으로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23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여야 4당은 이날 오전 의원총회를 열고 패스트트랙 합의안에 대한 내부 추인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이야기하는 이해찬과 홍영표 |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오른쪽)와 홍영표 원내대표가 23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하사헌 기자


앞서 민주당 홍영표, 바른미래당 김관영, 민주평화당 장병완,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는 22일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법, 검경 수사권 조정법을 함께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해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쟁점이었던 공수처 기소권 문제는 판사와 검사, 경무관 이상 고위직 경찰 관련 사건에 대해서만 공수처에 기소권을 부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공수처에서 기소권을 분리해야한다는 바른미래당과 기소권 없는 공수처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민주당이 한 걸음씩 물러나 절충점을 찾은 것. 공수처장 인사와 관련해서도 여야 위원을 각각 2명씩 배정하고 위원 5분의 4 이상 동의를 얻어 추천된 2명 중 대통령이 지정한 1명에 대해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최종 임명하는 방안으로 합의했다.

선거제 개혁은 지난달 17일 여야 4당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간사들 간의 합의사항을 바탕으로 미세조정한 관련법 개정안을 마련해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기로 했다.

당시 여야 4당은 국회의원 정수를 300석으로 고정하되 비례대표를 75석으로 늘리고, 정당득표율과 전체 의석수를 연동하되 권역별 비례대표를 50% 부분 연동해 배분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합의한 바 있다. 부분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면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수가 배분돼 기존 1위 대표제에 비해 민심을 더 잘 반영할 수 있게 된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제1 야당인 한국당이 강력히 반대하는 상황에서 패스트트랙이 선거제 개혁을 위한 유일한 길이었다"며 "여야 4당이 패스트트랙에 합의함에 따라 선거제에 민의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실제 여야 4당 합의에 따라 25일까지 선거제 개혁법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면 내년 총선 전 선거제 개편이 가능하다. 패스트트랙 법안은 상임위 심사 180일, 법제사법위원회 심사 90일, 본회의 부의 기간 60일 등 최장 330일이 걸리지만 여야가 합의하면 기간을 대폭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당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법사위는 어쩔 수 없다해도 상임위에서 안건조정제도를 통해 90일, 본회의 부의기간을 60일 줄이면 계산상으로는 180일만에도 처리가 가능하다.

패스트트랙은 선거제 개혁에 반대해온 한국당을 협상에 나서게 하는 강제력을 갖게 될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한국당은 지난해 12월 연동형비례제 도입방안을 검토하기로 합의했으나 별다른 안을 내놓지 않다가 뒤늦게 비례대표를 없애고 의석수를 270석으로 줄이는 방안을 제시해 선거제 개혁협상을 어렵게 했다. 하지만 선거제 개혁법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면 본회의 표결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한국당이 협상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란 관측이다.

일각에서는 개혁법안을 패스트트랙에 태운다해도 최종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총선을 앞두고 정계개편이 이뤄지면 의원마다 이해관계가 달라질 수 있어 합의가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 한국당이 패스트트랙에 강력 반발하고 있는 것도 걸림돌이다. 추가경정예산안과 탄력근로제법 등 현안을 처리해야 하는 민주당 입장에선 국회 파행이 길어지면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한국당을 배제하고는 정상적인 국회 운영이 어렵다"며 "총선을 앞두고 정계개편이 이뤄지면 선거제 개혁법의 본회의 통과도 장담할 수 없어 자칫 민주당의 자충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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