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ILO 핵심협약 비준 의지 있나"

2019-06-19 11:30:19 게재

노동계, 노동연구원 토론회서 성토 … "한-미, 한-캐나다FTA 제재 가능성"

ILO 핵심협약 미비준으로 한국-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위반을 인정한다면 세계 최초로 FTA 노동조항을 위반한 국가라는 오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미 FTA, 한-캐나다 FTA 위반으로 연결돼 무역제재와 벌과금 부과까지 가능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ILO 핵심협약 비준과 입법적 쟁점 토론회 열려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왼쪽)와 이승욱 이화여대 교수가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열린 한국노동연구원 'ILO 핵심협약비준과 입법적 쟁점 토론회'에서 발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한국노동연구원이 18일 서울 여의도 CCMM 빌딩에서 주최한 'ILO 핵심협약 비준과 입법적 쟁점' 토론회에서 이승욱 이화여대 교수는 "EU측이 우리나라에 FTA 위반사항으로 들고 있는 것은 미비준 핵심협약 '노력 결여'만이 아니다"면서 "1998년 '노동에서의 기본원칙 및 권리에 관한 ILO 선언'의 소정의 노동조항 위반사항을 더 문제삼고 있다"고 주장했다. EU는 지난해 12월 FTA 노동조항 위반을 이유로 분쟁해결절차를 공식화하면서 △특수형태고용종사자, 실업자, 해고자에 대한 결사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 △근로자가 아닌 자가 가입한 노조에 대한 노조로써 성격 부정 △노조임원을 조합원으로 한정한 규정 △자의적인 노조 설립신고제도 △행정관청에 의한 시정명령제도 및 노동행정의 적용실태 △업무방해죄 및 평화적 파업에 대한 경찰과 검찰의 적용실태 등 6가지 사항을 적시했다.

이 교수는 "지난달 말 EU 의회선거가 끝났고 차기 집행위원회가 구성되면 곧바로 행동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근거 없고 무책임한 낙관론을 펼 때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EU의 요청으로 전문가 패널이 소집돼 한국이 FTA 위반을 인정될 경우 한-미 FTA, 한-캐나다 FTA도 위반되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경영계 일각의 기대와 완전히 다른 양상이 벌어질 것"이라며 "한-미, 한-캐나다 FTA 위반이 인정될 경우 무역 제재와 벌과금 부과까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 교수는 "우리나라는 수출주도 국가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ILO과 관계나 노동권을 떠나서 나라 경제와도 직결된 문제"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영완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본부장은 "한-EU FTA 규정은 ILO 핵심협약을 지키도록 하라는 '노력 사항'"이라며 "주권적인 우리 결정을 충분히 반영해 잘 대응하면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노동계는 정부의 의지에 대해서도 날을 세웠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실장은 "정부가 최근 핵심협약 비준과 국내법 정비를 동시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핵심협약 비준이 현실화 될 것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며 "정치권조차 면피성 활동에 몰두해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은 ILO 기념총회 초청을 받았지만 안갔고, 스위스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스웨덴을 순방했다"며 "정부가 ILO 핵심협약을 비준할 의지가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계가 주장하는 '한국적 특수성'도 집중적인 비판의 대상이 됐다.

신 원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많이 일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으로, 독일보다 3개월 더 일하고 일본보다 1개월 더 일한다. 산업재해가 가장 많은 나라도 대한민국이고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도 대한민국"이라며 "이게 한국적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한인상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지난해 오스트리아 노동조합회의소에 갔을 때 ILO 기본협약을 미국과 한국만 비준하지 않고 있다며 이유를 묻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며 "한국적 상황 때문이라고 설명을 하면 잘 납득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경총 김 본부장은 "국내 노사관계의 경쟁력이 낮아 꼴찌 수준"이라며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현실을 보면 (사측이) 함부로 못 해 물량을 다른 곳으로 옮기려 할 때도 노사 합의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결사의 자유 제87·98호, 강제노동 제29호 등 3개의 협약 비준을 준비중이다.

고용부는 관계부처와 협의, 노사 의견수렴 등 관련 절차를 거쳐 9월 정기국회에 비준동의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다만 강제노동 제105호 협약의 경우에는 우리나라의 형벌체계 및 분단국가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기 때문에 일단 비준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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