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주치의제 도입을 위한 특별기고 ④
서민에게 주치의를 허하라
의대를 졸업했다는 이유로 가끔 난감한 전화를 받는다. 이를테면 '친구 오빠의 친구 어머니'가 편찮으신데 괜찮은 병원을 소개해 달라. '오빠네 회사 동료의 아버지'가 큰 병원을 다니고 있는데 제대로 치료가 되는 건지 궁금하다.
내가 임상의사도 아니고, 심지어 직접 이 분들을 만나본 것도 아닌데, 전화 몇 마디로 무슨 판단을 내리고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신의(神醫) 화타에게도 이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을 통해 기어이 연줄 닿는 의사를 찾아 나선 이분들서 마음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돈, 연줄 없으면 불평등 의료 받아
'미충족 의료'라고 하면 흔히 병원비가 부담되어, 혹은 시간을 낼 수 없어서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문제를 떠올린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 반나절 KTX를 타고 서울에 올라와서는 대학병원 명의를 겨우 3분 동안 만나고 돌아서야 한다면 이는 미충족 의료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몸이 아픈데 도대체 어느 병원, 어떤 의사를 찾아가야 할지 몰라서 인터넷을 검색하고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 중에 의사가 없나 수소문하는 건 미충족 의료가 아닐까?
2017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비용과 시간문제만이 아니라 적합한 병의원과 전공과목을 선택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다. 또한 소득수준을 상/중/하로 구분했을 때, 꼭 의사는 아니더라도 가까운 의료인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각각 22.2%, 16.5%, 12.4%였다. 대개 소득이 높을수록 대중매체보다는 공적 정보나 의료인으로부터 의료이용에 관한 정보를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에는 건강 문제를 지속적으로 상담하고 돌봄을 제공하는 주치의가 없다. 중증도에 따라서 서비스 내용이 구분되는 의료전달체계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환자는 건강 문제를 스스로 인식하고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알아서 판단한 다음, 그에 적합한 의료기관 역시 각자 찾아가야 한다. 잘 모르니까 일단 유명한 의사, 큰 병원을 찾게 되고, 또 의문점이 해소되지 않거나 의사를 믿을 수 없어서 여러 병원을 전전한다.
모든 것이 개인의 역량에 달려 있다보니, 지식과 사회경제적 자원이 풍족한 사람과 아닌 사람, 특히 의사와 개인적 친분이 있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격차가 발생한다. 아무 때나 전화로 건강문제에 조언을 구할 수 있고, 복잡한 검사 결과표 해석을 도와주며, 어떤 전문과를 찾아가야 할지 아니면 동네의원에서 간단한 치료만으로 끝내도 될지 안내해주는 의사가 내 가족, 내 친구 중에 있다면 든든하다.
전인적 치료 더욱 중요
보건의료에서의 형평성이란 '의학적 필요'가 같다면 동등한 질의 서비스를 동등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보건의료는 건강문제로 훼손된 기능을 회복하거나 유지하게 함으로써 사회적 삶의 다른 영역에서도 '공정한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형평성은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효율성도 중요하다. 최소 투입으로 성과를 극대화하거나, 목표 달성을 위해 한정된 자원을 최적의 조합으로 배분해야 한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불필요한 의료서비스에 공적자원을 투자하면, 많은 이들에게 돌아가야 할 필수 서비스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다. 효율성과 형평성 모두를 해치는 것이다. 게다가 고령화와 함께 사람들의 건강 문제는 좀더 복잡해지고 있다.
한 사람의 몸을 각 건강문제에 따라 쪼개서 전문 진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중심에 둔 전인적 치료가 더욱 중요하다. 그러나 의료서비스는 사람이 아닌 질병 중심으로 더욱 전문화되고, 또 상업화되고 있다. 현재의 시스템이 얼마나 지속 가능할지 의문이다.
복잡한 보건의료체계의 미로 안에서 각자 도생한 결과가 보건의료 불평등이라면, 그 해결책은 지식과 돈, 연줄이 없는 서민들이 각자 도생하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믿을 수 있는 길잡이, 사람을 중심에 둔 전인적 치료 제공자. 바로 주치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