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부품 기술독립 이번엔 제대로│① 한국 경쟁력 현주소는
국제공급망 흔들리고 '가마우지'경제 여전
일본 수출규제 도발, 급증하는 소재부품 대일적자 … "국산화 넘어 글로벌 공급기지로"
올해는 소재부품사업 육성정책이 본격적으로 나온 지 20년이 되는 해다. 최근 일본의 기습적인 경제도발은 우리의 소재부품 육성정책의 민낯을 드러내게 했다. 전략소재와 핵심부품의 일본 의존도는 여전하고 국산화율은 낮아졌으며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산업생태계는 찾기 힘들다.
특히 국제분업에 따른 공급망이 언제든지 끊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됐다. 한국은 그동안 수출이 늘수록 일본 주머니를 불리는 이른바 '가마우지' 경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대일적자의 원인인 소재부품 국산화가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제공급망, 언제든지 끊어질 수 있다 = 한국 대기업은 조립가공에서, 일본은 소재부품 분야에서, 미국은 설계와 지식재산권 분야에서, 독일은 장비 등에서 각자 글로벌 우위를 점했다. 이른바 국제공급망을 형성해온 것이다.
이는 교역과정에서 비교우위에 따라 최상의 조건과 품질 가격으로 이루어진 경쟁력 있는 완제품을 만들어 내는 국제적 분업구조였다.
이같은 분업구조는 최근 크게 흔들리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다. 자유무역주의 수혜국 일본이 대한국 수출규제에 나선 것은 그동안 국제무역의 원칙을 저버린 것이다. 안보상 위협을 이유로 글로벌 우위에 있는 제품 판매를 규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일본정부는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으로 쓰이는 불화수소(에칭가스)를 수출규제 품목에 포함시켰다.
2010년 중국과 일본의 영토분쟁에서 희토류 수출 중단으로 이어진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당시 중국은 영토분쟁지역인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열도)에서 자국 어선과 선원이 일본에 체포되자 일본에 희토류 수출을 중단한 사건이다. 중국이 세계 공급 물량 85%를 쥐고 있는 희토류는 스마트폰 LCD 2차전지 자동차 등에 쓰이는 희귀 광물이다. 중국의 조치로 일본산업계는 한순간에 마비됐다. 일본정부는 중국 선원을 석방했고 희토류 수출은 재개됐다.
경제적 이유로 형성된 국제공급망이 비경제적 이유로 언제든지 끊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소재부품 국산화 또는 다변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동안 지지부진한 소재부품 육성정책을 되돌아보고 국산화에 이어 글로벌 공급기지로 성장하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다.
특히 한국 재벌대기업은 중소협력사와 수직적 분업구조를 통한 전속거래제도를 고착화했고 협력사 생사여탈권을 쥐었다. 좁은 국내 산업생태계로 세계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소재부품산업이 성장하지 못했다. 소재부품산업을 맡은 중소기업과 조립가공을 책임진 재벌대기업의 건전한 생태계가 형성되지 못한 탓이다.
A사는 지난해 스마트폰용 적층세라믹콘덴서 제조에 필요한 초미세 세라믹 소재를 개발했다. 하지만 수요기업 B사는 기존 일본공급처와 계속 거래를 하고 있다. 국내기업 개발시점에 일본업체가 납품단가를 인하하면서 수요기업이 기존 거래처를 유지한 것이다.
이처럼 수요기업의 진입장벽이 있거나 사업화에 실패하면서 국내 산업생태계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건전한 생태계를 형성하기 위한 수요기업(대기업)과 공급기업(중소기업)의 긴밀한 협력을 강조한다.
이덕근 한국기술거래사회 부회장은 "소재기술 개발에 대해 대기업이 동반자적 개발과정을 유지해야 한다"며 "양산단계 이후에 웬만한 조건변경이 없으면 수급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재부품 국산화 전략도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 이 부회장은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는 소재부품을 보면 상위 15% 소재부품은 원천기술부족으로 당장 국산화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우선 중위 65% 소재부품을 조기에 개발해 사업화하고 최상위 소재개발을 위해 긴 호흡으로 투자하고 지원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멀어진 소재부품 강국 =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제조업 평균 국산화율은 2005년 53.2%에서 2015년 51.2%로 떨어졌다.
자동차 철강 기계 석유화학 섬유 반도체 등 6개 주력업종의 소재부품 국산화율이 10년전보다 하락한 것이다.
철강과 반도체 하락폭이 크다. 철강소재부품 국산화율은 2005년 68.5%에서 2015년 51.3%로 17.2%p나 급락했다. 반도체는 2005년 국산화율 37.3%에서 2015년 29.4%로 7.9%p나 떨어졌다.
이처럼 낮아진 국산화율은 고스란히 대일본 적자를 눈덩이처럼 키웠다. 한국의 수출이 늘어나면 대일본 수입이 증가해 일본 주머니를 불리는 이른바 '가마우지' 경제가 수치로 나타난다.
1966년 대일무역적자는 2억3000만달러였다. 1999년 83억달러에 이르렀다. 2014년 무역흑자 1000억달러 시대를 열었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소재부품에서만 222억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소재 119억달러, 부품 103억달러 적자였다.
대일무역적자 가운데 소재부문 비중은 2003년 31%에서 2013년 40%로 증가했다.
대일무역적자가 2010년 361억달러로 정점을 찍은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추세이지만 여전히 대일본 수입 의존도는 높은 편이다.
◆소재부품 육성 20년 됐지만 = 정부가 소재부품사업 육성에 나선 것은 1999년부터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특별대책 지시에 따라 대일무역 적자의 원흉 소재부품산업을 발전시키고 대일 의존도를 벗어날 대책을 세우게 된 것이다. 당시 산업자원부는 자동차 전자 기계 등 3개업종을 중심으로 '부품산업발전전략'을 내놓았다.
2001년 2월 10년을 한시적으로 하는 '부품소재특별조치법'이 제정됐다. 여러 부서에 나뉘어 관리되던 부품소재산업에 대해 일목요연한 정책집행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산업부 산하에 부품소재통합연구단이 출범해 부품소재정책을 일원화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다.
이 특별법은 10년 더 기한이 연장됐고 2015년 '소재부품특별법'으로 개정됐다. 하지만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부품소재통합연구단은 한국부품소재산업진흥원으로 확대 개편됐다가 2009년 기능별로 쪼개지고 흩어졌다. 연구개발기능은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으로, 그 외 산업진흥 기능은 한국산업기술진흥원으로 옮겨졌다.
이덕근 한국기술거래사회 수석부회장은 저서 '왜 다시 소재부품인가'에서 "절박한 인식에서 출발한 부품소재산업 육성정책이 국산화 대체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단계에서 우리 중소기업이 글로벌 부품소재 공급기지가 되는 최종목표를 잃어버리고 안주한 꼴"이라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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