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서울이 함께 키운다 - ①인터뷰 | 문미란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

"사회가 함께 아이 키운다는 공감대 절실"

2019-10-30 12:12:41 게재

영유아·아동 '공공책임 돌봄시대' 선언

박원순 '82년생 김지영'에 눈물, 전폭지원

구청장 관심따라 자치구별 확산 편차 커

"아이가 다니는 학원 숫자만큼 가방을 마련해둔다고 하잖아요? 학교 갔다 돌아와서 태권도 갔다가 피아노 가고…." 문미란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은 "그러다가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칠 즈음 엄마가 일을 그만두고 집에 들어 앉는다"며 "여성들 버둥거림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개인과 가정의 영역으로 치부돼왔던 돌봄을 공적 영역에서 온전히 끌어안는다. 국공립 어린이집으로 대표되는 영유아 보육에 치중해왔던 기존 체계를 전환, 가정양육 아동과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돌봄 사각지대를 공공에서 메우기로 했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하고 있는 '온마을 아이돌봄 체계'다. '표 안되는' 영유아·아동 대상 정책이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이 힘을 실으면서 탄력을 받고 있다.

"출산·육아와 관련된 신조어가 많이 생겼어요. 청년들은 3포세대 5포세대, 여성들은 독박육아…. 그만큼 출산·육아 관련 문제가 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다는 의미에요."


◆'학원 뺑뺑이' 원하는 부모 없다 = 문미란 실장은 "아이는 경쟁에 내몰리고 부모는 뒷바라지와 자신의 경력 유지에 힘들어하는 게 현실"이라며 "아이도 부모도 행복한 사회에 대한 기대가 가능한가"라고 되물었다. 서울시가 온마을 아이돌봄 체계 구축에 나선 이유다. 젊은층에 무조건 아이를 낳으라고 하기보다 안심하고 낳아 기를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을 만드는 것이 공공의 역할이라고 판단했다. 문 실장은 "출생률 급감, 여성 경력단절 등은 공적 돌봄이 부족한데서 나온 문제"라고 지적했다.

"학원에서 프로그램 전후에 아이를 돌봐주기도 해요. 그냥 시간만 보내는 거예요. 그렇게 사적 영역에만 의존하지 말자는 거죠. '학원 뺑뺑이'를 원하는 부모 있겠어요?"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유명한 아프리카 속담처럼 '온 마을이 아이 돌보는 문제를 함께 해나가자'는 취지로 '온마을 아이돌봄 체계'를 구상했다. 학교 수업을 마친 뒤 학원에서 학원으로 도는 초등학생 특히 혼자 활동하기 어려운 저학년은 우리동네키움센터에서 친구들과 함께 놀이와 쉼이 있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독박육아'에 시달리는 양육자들은 열린육아방에 모여 각자의 고충과 정보를 나누고 어려움을 덜 수 있다. 먼저 엄마가 됐던 우리동네 보육반장이 초보 엄마를 위한 장보를 제공하고 지역 내에서 각종 상담·도움을 받을 수 있다.

문미란 실장은 "우리동네키움센터 열린육아방 보육반장을 매개로 사람들이 연결되고 함께 육아문제를 해결해나가자는 것"이라며 "지역사회에 흩어진 각 돌봄자원을 연결하고 수요와 공급을 연계하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시민호응 크지만 확충 더뎌 = "아내와 저는 퇴근시간이 가까이 오면 서로 눈치만 보면서 지냈습니다. 부득이하게 야근을 하거나 다른 약속이 있을 때면 부랴부랴 친척집으로 친구네로 학원으로 허겁지겁 연락해서 사정하기에 급급했습니다."

'초등이 아빠'라고 밝힌 이 시민의 생활이 최근 180도 바뀌었다. 그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학교수업을 마치고 갈 수 있는 공간이 생겨 너무 감사하다"며 "아이가 키움센터를 이용하면서 안정되고 더 많이 웃고 친구들과 잘 지내는 것 같아 기쁘다"고 전했다.

촘촘해진 돌봄체계에 시민들 호응은 뜨겁다. 반면 "취지는 너무 좋은데 아직 턱없이 부족해 아쉽다"는 반응도 있다. 예산을 추가 확보, 자치구에 임차보증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접근성 높고 안전한 공간' 확보가 쉽지 않다. 문미란 실장은 "아파트단지나 주민 공동체공간을 확보하고도 기준만큼 주민 동의를 받지 못해 무산된 경우도 여럿"이라며 "시끄럽다거나 시설 훼손을 이유로 반대하기도 해 어려움이 크다"고 토로했다.

구청장 의지에 따라 자치구별 편차도 크다. 어느 자치구는 한달에 대여섯곳 키움센터가 들어서는데 어느 자치구는 아직 개소 예정도 없다. 문 실장은 "자치구 공무원들이 주민들 관심만큼 움직였는지 돌아봐야 한다"며 "사회적 의식·공감대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사소한 사업? 시장 치적용? = "출생률이 급감하는데 나중에 이용할 아이가 없어지면 어떻게 할 거냐고 따지는 분들도 있어요."

'시장 치적 쌓기'라거나 '서울시가 사소한 부분에 매달린다'는 상반된 지적도 있다. 문미란 실장은 "내가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불안감을 넘어 다음 세대가 살 사회에 대한 위기의식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라며 "지속가능한 사회에 대한 고민"이라고 말했다.

누구보다 박원순 시장 생각이 확고하다. 온마을 아이돌봄 체계를 계기로 '돌봄 틈새 메우기'를 넘어 "공공책임 돌봄시대를 열어가겠다"고 단언한다. 박 시장은 지난 10일 '서울아기 건강 첫걸음 나눔터'에서도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다가 눈물을 흘렸다"며 "아이를 낳아 교육시키고 시집·장가까지 보내는 과정은 결코 개인의 일이 아닌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문미란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은 "시장 관심사가 아니었으면 다른 사업들에 묻혔을 수도 있다"며 "양육 걱정을 덜고 공적 돌봄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돌봄시설 장소 선정부터 공간 배치, 돌봄까지 전 과정에 부모·활동가가 함께 했으면 한다"며 "보편적 아이돌봄에 대한 사회적 인식, 시민들 관심과 참여가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학교·집에서 10분 '우리동네키움센터'

["우리 아이, 서울이 함께 키운다" 연재기사]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김진명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