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태정 변호사의 범죄파일 | (24) 주거 침입 사건
신림동 원룸 사건이 주는 메시지
지난해 5월 말경 서울 신림동 지역에서 모자를 눌러 쓴 한 30대 남성이 술에 취한 여성을 뒤따라가 집안 침입을 시도한 사건이 있었다. 이른 바 '신림동 원룸 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에서 당초 경찰은 '여성에 대한 폭행 및 협박'이 없었다는 이유로 강간미수죄를 적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드러내 대중의 공분을 샀다.
이러한 여론을 의식한 탓인지 결국 수사기관은 이 남성을 주거침입 및 강간미수 혐의로 구속했다. 그런데 재판에서 '주거침입' 혐의만 인정되고 성폭행 미수에 관해서는 무죄 판단을 받아 징역 1년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재판부는 사건의 심각성을 간과한 현실성 없는 판결이라는 여론의 지탄을 받긴 했지만, 이 남성에게 주거침입 혐의만 인정될 수 있었던 것은 원룸 건물 안에서 남성과 여성과의 신체접촉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필자는 이와 비슷한 사례의 의뢰인(이하 'A')을 변호하게 됐다. 원룸 건물 내에서 여성과의 신체접촉이 발생해 주거침입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사안이다.
공소장에 적힌 사건 내막은 이렇다. A는 어느 날 새벽 4시경 모 지하철역 근처에서 술에 취해 휘청거리며 걸어가는 피해자를 발견하고 위험하니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며 접근해 피해자의 원룸 건물까지 동행했다. 그리고 피해자가 몸을 잘 가누지 못하는 상태에서 엘리베이터에 타자 A는 피해자를 뒤따라 엘리베이터에 들어가 피해자에게 신체접촉을 시도했다.
A는 동행 과정에서 피해자와 서로 호감을 쌓은 것으로 생각하고 피해자와 신체접촉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성범죄 사건의 특성상 당사자 간에 있었던 상황을 제3자가 명확하게 밝혀내기는 어려운데다 이 사건처럼 피해자가 술에 취해 그 의사표현을 정확히 하기 어려웠을 가능성이 존재하는 경우, A가 피해자의 저항을 무릅쓰고 강제추행할 의도가 있었는지, 즉 고의성 여부를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 같은 사건이 주는 교훈은 명백하다. 설령 고의가 없더라도 상대방 호감이나 동의를 멋대로 추단해 상대방이 원치 않는 관계로 나아가는 일은 절대로 삼가야 한다.
신림동 원룸 사건에서는 신체 접촉이 발생하지 않아 형법상 주거침입죄만 성립했다. 다만, 엘레베이터에서 신체접촉을 한 A는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제3조 제1항에 따른 주거침입강제추행죄에 해당한다. 특히 주거침입강제추행죄는 주거침입강간죄와 동일하게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라는 중형이 부과될 수 있다.
수년 전 주거침입강제추행죄와 주거침입강간죄가 동일형이라는 점이 형평에 어긋나 부당하다는 이유로 헌법소송까지 한 사례가 있었으나 헌법재판소는 동일형 부과는 헌법에 위배되지 아니한다는 결정을 내려 다소 논란이 있었다.
따라서 어떤 순간적인 유혹이 찾아오더라도 상대방의 충분한 명시적 동의가 없는 성관계 및 신체접촉은 절대로 삼가해야 무고한 성범죄 피해자 발생을 막는 것은 물론 자신의 인생에서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