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보다 고교 교육환경이 더 낫다"

2020-01-28 11:22:23 게재

등록금 0.57% 인상에 소비자물가는 21.8% 증가(2008~2018년) … 적립금 헐어 적자 메워, 그마저도 고갈

"[재정 위기, 무너지는 사립대학 ①] 수입 감소, 비용 증가에 교육·복지 위축" 에서 이어짐

교육부 등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사립대학 등록금 평균은 745만6900원으로 2008년(741만4800원) 대비 0.57% 인상됐다. 하지만 같은 기간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21.8%에 달해 사실상 하락했다. 올해로 12년째 이어지는 이른바 '반값 등록금' 정책으로 수입이 준 사립대학들이 적립금까지 헐어 적자를 메우고 있다. 사립대 교직원 보수는 동결됐으며 연구비와 도서구입비가 줄고 개설 강좌 수는 급감했다.


◆등록금 동결·학령인구 감소 총체적 난국 = 교육부 등에 따르면 154개 사립대 등록금 수입은 2011년 11조681억원에서 2017년 10조2089억원(-5601억원), 2018년 10조658억원(-1조23억원)으로 줄었다.

현재 상황에서 상황이 반전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당장 사립대학들은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입학금을 폐지해야 한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입학금 폐지에 따른 재정감소 규모를 2109억2000만원쯤으로 추산한다. 정부 입학금 폐지 정책으로 국공립대는 2018년부터 이를 전면 폐지했다. 학령인구 감소도 사립대학 재정상황을 악화시킬 주요요인으로 꼽힌다. 등록금 의존율이 평균 53.8%(2018년 기준)인 사립대학 특히 지방대학에 학령인구 감소는 치명상을 입힐 전망이다. 뿐만 아니라 국가장학금Ⅱ 유형에 대응하기 위해 교내장학금 약 5000억원을 부담하는 것도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살이에 부담을 주고 있다.

사립대학 재정난은 교육여건과 학생복지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사립대학의 기계기구매입액, 연구비, 실험실습비, 도서구입비 등 직접교육비의 지출이 2011회계연도 1조7680억원에서 2015년 1조5848억원, 2016년 1조6420억원으로 감소했다.

대교협 분석결과 대학들의 기계·기구매입비는 2011년 3622억원에서 2016년 2978억원으로, 연구비는 5397억원에서 2016년 4655억원으로, 실험실습비는 2011년 2145억원에서 2016년 1940억원으로, 도서구입비는 2011년 1511억원에서 2016년 1387억원으로 각각 감소했다. 뿐만 아니라 일부 대학에서는 졸업이수학점 축소, 개설강의 축소, 복수전공 부전공 규제, 재수강 제한, 비정년교수 임용 확대 등 부작용도 나타난다. 사립대학의 경우(2016년 기준) 교수 1인당 학생수가 29.2명으로 OECD(15명) 평균의 2배 수준이다.

◆지난해 적립금 8조원대 붕괴 = 국가 R&D사업 규모는 증가하는 가운데 대학 교육여건에 대한 투자는 미흡하다. 대학가에서는 사립대학의 교육환경이 고등학교보다 못하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2016년 우리 중·고등학교학생 1인당 교육비는 1만2370달러인 반면 대학생은 1만486달러였다.

대교협 조사에 따르면 2005부터 2017년 사이에 3000만원 이상 연구장비 구축 현황을 보면 지자체출연연구소가 25.7%, 정부출연연구소 24.1%이지만 대학은 0.8%에 불과했다. 구입 예산에서도 정부출연연구소가 32.5%인데 반해 대학은 1%에 그쳤다. 또 2016년 기준 연구시설·장비 투자현황을 보면 전체 구축 수는 정부출연연구소(38.4%), 대학(27.2%)으로 나타났다.

구축액은 정부출연연구소(42.8%), 지자체출연연구소(18.2%), 대학(13.9%)의 순이다.

개별기관 당 연구시설·장비 구축 수를 보면 정부출연연구소가 평균 27.9점인데 반해 대학의 경우 4.2점에 그쳤다. 예산 면에서도 정부출연연구소가 평균 78억원인데 반해 대학의 경우 평균 4억9000만원에 그쳤다.

특히 대학가에서는 첨단 기자재 가격이 비싸져 현재 사업비로는 신규 기자재에 대한 학내 수요도 만족시키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호남소재 사립대의 한 교수는 "동문 선후배나 친구가 근무하는 국립대나 수도권 대형 사립대를 찾아가 눈칫밥 먹으며 실험실 장비를 빌려 쓴다"면서 "실험용 장비가 구형인데다 고장으로 가동 못하고 서있는 날이 더 많아 사실상 실험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학생모집이 너무 어려워 4차산업혁명 관련 커리큘럼을 올해부터 도입"하지만 "실험장비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연구와 교육을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막막하다"고 덧붙였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부족한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적립금을 빼 쓰는 대학이 늘고 있다. 사립대 적립금은 2013년 9조694억원에 달했지만 △2014년 8조1887억원 △2015년 8조950억원 △2016년 8조217억원 △2017년 8조48억원에 이어 2018년에는 8조원대까지 붕괴됐다. 학교별로는 적립금 상위 20개교(2018년 기준) 중 13곳(65%)이 감소했다. 이화여대는 이 기간 중 1454억원이 감소했다. 청주대·동덕여대·숙명여대·영남대·인하대·세명대·대구대·경남대·건양대·덕성여대·국민대·성신여대 등도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씩 줄었다.

서울소재 대형 사립대 관계자는 "외부에 공표는 못하지만 등록금 수입 감소로 재정이 수년째 적자"라면서 "그나마 과거 재정이 탄탄했던 학교라 모아뒀던 적립금이 있어 적자를 메워왔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등록금 동결이 장기화되면서 사용처나 방법이 정해진 것을 제외하면 적립금도 사실상 바닥났다"면서 "앞으로 어떻게 버틸지 걱정"이라고 밝혔다.

◆국제 경쟁력 저하로 이어져 = 사실 대학 경쟁력 약화는 이미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김영철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관련 논문에서 "교육관련 지표가 부분 하락세를 유지하고 있고 이런 지표 하락 전반이 국가경쟁력 순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면서 "당장은 구성원들의 '제살깎기'와 '임기응변식 대처'로 어느 정도의 교육수준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나 장기적으로 교육의 질적 하락과 주요 선진국들과의 경쟁력 격차, 무엇보다 국가적 지식생태계 후퇴를 막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국가경쟁력을 해마다 평가하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과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의 국가경쟁력 평가 결과 우리나라는 고등교육 경쟁력 순위와 국가경쟁력 순위가 동반 하락했다. IMD 대학경쟁력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2011년 59개국 중 39위였으나 2014년 50위권으로 급락했으며 2017년 63개국 중 53위의 매우 낮은 수준으로 답보 상태다. WEF 국가경쟁력 평가의 고등교육 및 훈련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2011년 142개국 중 17위를 기록했지만 2017년에는 137개국 중 25위를 기록했다.

특히 '교육시스템 질'에 대한 평가에서는 그 순위가 55위(2011년)에서 81위(2017년)까지 무려 26계단이나 하락했다. 관련된 평가항목인 '대학-기업 간 연구력' 역시 지속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발간한 교육개발원 '고등교육 정부재정 확보방안 연구' 보고서는 "사립대학이 84%가 넘는 우리나라의 경우 등록금 수입이 대학 재정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등록금 제한이 설정됐고 이에 대한 정부의 제도적 제한이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학의 운영 자율성을 높이고, 재정확보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각종 대학 규제를 완화해 불필요한 재원을 교육 이외의 분야에 지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대학이 등록금 재원 확보 이외에 자구적인 고등교육재정 확보를 추진하려면 재정 회계 세금 기부금 등에서 합리적이고 유연한 제도개선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재정 위기, 무너지는 사립대학" 연재기사]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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