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경영진이 묵인
법원, 법인에 벌금 260억원
경영진·실무책임자 실형
독일인 대표, 본국으로 도피
유죄 판결일에 신차 발표
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1부(김연학 부장판사)는 대기환경보전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박동훈 폭스바겐 전 사장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또 인증부서 담당 책임자인 윤 모씨에게도 징역 1년의 실형을, AVK에는 벌금 260억원을 각각 선고했다. AVK의 인증 담당 실무자와 인증 외주업체 관계자 4명에게는 징역 4~8개월을 선고하되 1년간 집행을 유예했다.
◆재판부 "변명 일관해 엄벌" = 다만 박 전 사장과 윤씨에 대해서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검찰은 이에 앞서 박 전 사장에게 징역 5년, AVK에는 371억원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한 바 있다.
재판부는 박 전 사장에 대해 "폭스바겐 사장으로 그동안 규제 관계법령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했음에도 책임을 도외시하고 법령을 준수하지 않았다"면서 "법정에서 변명으로 일관하고, 직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회피하는 것에 대해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양형이유를 설명했다
특히 VAK법인에 대해서는 "범행으로 인한 이득이 귀속됐고, 범행기간·규모에 비춰 죄질이 무겁다"면서 "친환경을 전면에 내세웠고, 광고를 신뢰해 높은 비용으로 차량을 구매하는 소비자 신뢰를 고려했다"고 질타했다.
2015년 미국 환경보호청(EPA)는 폭스바겐이 디젤승용차의 소프트웨어를 조작해 인증시험때만 배출가스 기준을 충족하고 실제 도로위에서는 기준치의 수십배 질소산화물 등을 배출한다고 발표했다. 세계적으로 파장이 커졌고, 한국에서는 환경부와 검찰 수사가 이어진 뒤 2017년 기소가 이뤄졌다.
검찰에 따르면 AVK는 2008년부터 2015년 사이에 한국 정부가 제시한 배출가스 기준에 미달하는 폭스바겐과 아우디 디젤 승용차 15종 12만대를 수입해 판매했다. 이 차량에 이중 소프트웨어를 설치해 인증시험을 받을때만 배출가스를 적게 내보내고,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유해물질과 미세먼지를 내보냈다. 이중 소프트웨어는 차량 성능과 연비에도 영향을 끼친다. 또 AVK는 또 2010부터 2015년까지 149건의 배출가스·소음 시험서류를 조작하고, 배출가스·소음 인증을 받지 않거나 관련 부품을 변경한 뒤 인증을 받지 않고 4만대를 수입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배출가스 기준에 미달하는 것을 알고도 AVK가 성능을 허위·과장해 차량을 판매했다며 허위광고 혐의로도 기소했다.
사실 환경부는 미국 EPA의 발표가 있기 전부터 폭스바겐의 불법·탈법을 의심해 왔다. 이번 재판에서도 유죄의 증거가 된 것은 환경부 '자문회의'다. 환경부는 폭스바겐의 차량 인증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전문가들을 모아 자문회의를 열어 지속적으로 해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AVK는 형식적인 답만 했고, 독일 본사 전문가들은 자신의 차량의 우수성만 홍보하고 돌아갔다.
◆도덕적 해이 심각 =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를 투입해 대대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그 결과 폭스바겐 외에도 메르세데스-벤츠, BMW, 포르쉐, 닛산, 인피니티, 크라이슬러, 페라리 등 세계적인 브랜드의 디젤승용차에도 비슷한 문제가 드러났다. 검찰은 이들을 줄줄이 기소했고, 법원은 대부분 유죄 판결을 했다.
자동차업체들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린 폭스바겐의 재판 결과가 늦게 나온 것은 AVK 전 대표인 요하네스 타머의 도피 때문이다. 독일 본사 출장을 이유로 검찰이 출국금지를 풀어주자, 독일로 돌아간 타머는 건강을 이유로 현재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 결국 재판은 공전을 거듭했고, 재판부는 타머를 제외한 나머지 관계자와 법인 대부분 혐의에 대해서 유죄 판단을 했다. 다만 환경기준 '유로6'가 적용된 차량 600대를 수입한 것에 대해서는 무죄 선고를 했다.
박 전 사장은 자신이 영업 담당으로 인증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에 따르면 과징금 처벌 논의가 이뤄질때 등 모든 상황을 보고받고 논의했다"며 "책임을 함께 부담해야 한다"고 봤다.
또 AVK 측은 부품이 변경된 경우 자료 자체가 불확실하므로 상호 불일치로 단정할수 없다고 주장했다. 부품은 그대로 인데 일련번호만 바뀌거나 오히려 성능이 개선된 경우도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불확실하다는 취지의 주장은 결국 중요 부품 확인할 자료가 AVK는 물론 독일 본사에도 모두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라며 "(제조·수입사는)부품 이력을 당연히 관리·보관할 것으로 예상하는데 현재까지 부품 변경여부를 밝히지 못하는 것은 제조물 의무에 반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폭스바겐코리아는 이날 고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3세대 '투아렉' 발표회를 가졌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로 각종 기업들의 활동이 위축된 가운데 1심 판결일에 신차를 발표한 것은 이 회사가 한국 법원과 소비자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