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미래를 여는 사람들│⑧ 임종한 인하대 사회의학교실 교수

질병예방 중심 보건체계 구축 시급

2020-03-09 11:05:42 게재

병든 후 치료, 사회적 부담 크고 비효율적 … "주치의제 기반 지역통합돌봄 제공"

5년 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가운데, 한국사회는 '전환의 시대'를 요구받고 있다. 그간의 관주도, 돈 중심, 공급자 위주의 보건복지제도 환경에서 벗어나 이용자의 인권과 편의성을 높이며 자주적 참여와 민관협력으로 지역민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갈구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전국 곳곳에서 혁신적 실천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는 사람과 단체들의 경험을 소개하고 나눠 사회발전의 자양분으로 삼고자 한다. <편집자주>

지난 6일 국회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광주 광산구에서 커뮤니티케어 특강. 사진 임종한 교수 제공


개정안은 가습기 살균제로 말미암은 질환을 폭넓게 정의하고 후유증까지 포함해 건강피해 범위를 확대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지만 구제받지 못한 피해자들(실 피해자 30만∼50만명 추정)이 보다 쉽게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자 가습기살균제사건 피해자들 외 특히 기뻐한 사람이 있었다. 임종한 인하대 사회의학교실 교수다.

임 교수는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심각한 부정의"라고 규정했다. 1994년 첫 가습기살균제가 판매된 이후 역학조사가 있었던 2011년까지 무려 17년동안 여러 형태의 건강피해가 발생했다. 하지만 2011년 상급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 폐이식을 하지 않으면 사망할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환자들이 나타나기 전까지 어느 누구도 가습기살균제의 위험을 경고한 전문가가 없었다.

피해자단체에서 준 감사패. 사진 임종한 교수 제공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불거지고 피해자들 원성이 하늘을 찔렀지만 정부는 항의하는 피해자들에게 오히려 '근거없이'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비이성집단으로 몰아세웠다.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의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임 교수는 그들을 지원했다. 그는 피해자들과 가족들로부터 감사의 상패를 받기도 했다.

임 교수는 "법이 통과됐으니 환경피해에 대한 신속한 보상과 예방을 위해 힘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강불평등 해소하고 건강취약계층 관리 필요 = 임 교수는 원래 지역사회에서 주치의 활동을 하던 의사였다. 그는 1990년대 초 가난한 달동네에서 월남전 고엽제 환자를 발견하고 이를 한국사회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환경피해 사례가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됐고, 환경보건학을 추가로 전공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안성의료사협에서 조합원대상의 환경 교육. 사진 임종한 교수 제공


임 교수는 우리사회가 시간이 흐를수록 노인 장애인 등 건강취약계층들이 늘어날 것이며 이로 인해 병든 이후에 치료하는 현재 보건의료시스템으로서는 노령자들이 앓는 만성질환을 잘 관리할 수 없을 뿐더러 사회적 비용만 늘어난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주치의제 도입을 강력히 주장했다. 90년대초 임교수가 시작한 일이 시민들과 의료인들이 힘을 합쳐 의료생협(지금은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약칭 의료사협)을 만들고 자발적인 주치의제를 시행했다. 지역에서 지역주민들이 의료전문가와 협력해 취약계층을 돌보고 질병을 사전에 예방하는 활동을 진행했다.

임 교수에 따르면 가습기살균제, 미세먼지와 같은 환경유해물질에 노출되거나 흡연 음주 신체활동 부족, 스트레스 등 여러 위험요인들이 만성질환을 발병시킨다. 환자들이 노출되는 위험요인에 따라 대처방안도 다르고 예방 및 치료방법도 달라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병의원을 찾아가면 만성질환을 진단한 후 정해진 약을 처방하는 것 외 특별한 안내를 하지 않는다. 노인의 경우 여러 병을 앓고 있어 몇 개의 의료기관을 방문해 제각기 처방받은 약을 복용하게 된다. 이런 경우 약물 부작용으로 또 다른 손상을 입을 수 있는데 관리되지 않고 방치되고 있다. 초기에 경미한 신체 이상을 빠르게 대처해 중증으로 악화되는 것을 막을 장치가 없다.

2018년 10월 한국커뮤니티케어 보건의료협의회 창립총회. 이때 상임대표로 선출됨. 사진 임종한 교수 제공


만약 주치의를 두고 지속적으로 몸의 변화를 파악하고, 질병을 예방하고 재활, 돌봄에 대한 포괄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국민들은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받아서 좋고, 사회적으로는 의료비 절감과 의료자원의 효율적인 이용이 가능해 진다.

임 교수는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장으로서 시민 소비자 보건의료 장애인 사회단체 등 20여개 단체가 연합한 '주치의제도 도입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창립 작업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임 교수는 "주치의제는 사회정의의 문제"라며 "취약계층에서 나타나는 건강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와 정부는 주치의제도 시행계획을 세워야 한다. 범국민운동본부를 통해 주치의제도를 위한 법 제정, 정책 홍보활동을 열심히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잦은 감염병 유행 대비 공공인프라 확충해야 = 임 교수는 코로나19가 지역사회로 감염이 확산되고 있지만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시민들의 성숙한 참여와 민관협력으로 방역과 피해확산 대책이 함께 세워져야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그러면서도 기후변화 등 4∼5 년 사이로 엄습하는 감염병 유행에 대해 사회적 대비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공공인프라 구축을 강조했다. 2015년 메르스사태를 겪으면서 그 반성으로 공공인프라 구축을 강조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된 바 있다. 앞으로 특히 공공병원에서의 적절한 감염병대응체계를 갖춰야한다. 민간병원체계에서는 다양한 질환을 다루기 때문에 응급상황인 감염병 확산에 대응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전국병원의 병상은 일반질환자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임 교수는 "유행병을 대비해 음압시설을 갖춘 병상을 구비해 놓는 일은 시군구 지역사회 차원의 방역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인프라"라며 "지역에 음압병상을 갖춘 공공병원을 더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공병원을 중심으로 하는 공중보건, 정신보건, 일차의료체계의 연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경우 그 피해는 국민이 입게 된다.

대표적으로 경북 청도대남병원에 입원했던 103명 가운데 101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을 들 수 있다. 정신질환자들이 지역사회에서 돌봄을 받지 못하고 폐쇄병동에 수용된 채 지내 왔다. 폐쇄 공간에서 생활할 경우 신체기능이 약해져 만성질환을 앓게 되고 감염바이러스에 노출되면 감염병 중증환자가 된다. 국내에서 코로나19 사태에서 보듯이 지역사회 공공의료체계가 연계 구축되지 않으면 더 많은 피해자들을 발생시킨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임 교수는 "감염병환자를 돌볼 수 있게 공공병원을 확충하고 더 이상 정신질환자들의 인권 침해가 없게 지역에 기반한 열린 정신보건체계도 구축해야 한다"며 "건강취약계층은 집단감염·사망자 증가와 밀접히 연결된 뇌관이다. 주치의제도를 통해 평소 그들의 건강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임 교수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지역사회통합돌봄(커뮤니티케어)체계 구축과 관련 건강취약계층에 대해 건강상태, 돌봄, 복지 요구를 잘 파악하고 이들 서비스를 연계 조정해 제공할 전문인력이 필요하며 이들에 대한 교육이 빨리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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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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