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어디까지 왔나

도입 10년, 찬반논란 여전 … 실효성 담보 못해 '유명무실'

2020-03-11 11:38:32 게재

2011년 하도급에 첫 명시, 거래관계 정상화 조치

최근 기술탈취 방지로 확대 … 손배현실화 요구

특허침해 손해배상액 미국 100분의 1도 못미쳐

국내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된 지 10년째다. 여전히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이중 처벌' '위헌 논란' '자율조정 침해' 등이 반대논리 핵심이다. 반대 집단은 거래관계상 '갑'의 위치에 있는 기업이다. 대부분 대기업이나 중견기업 등이다.

찬성론자는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 등 작은 기업들이다. 이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공정거래 바로세우기' 등의 논리로 찬성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민사재판에서 가해자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인 경우에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더 많이 부과하는 손해배상을 일컫는다. 기술탈취 행위와 같이 손해를 산정하기 어렵거나 무형의 손해일 때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의의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현재 '징벌적 손해배상'을 명시한 법은 모두 9개다. 대중소기업간 거래와 관련된 법률 6개와 기술보호 관련 법률 3개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도 활용이 저조해 실효성 제고가 제기되고 있다. 최근 실효성 강화를 둘러싸고 찬반논란이 거센 배경이다.


◆하도급법에 최초 명시 = 2011년 우리나라 법률에 처음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됐다. '하도급거래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을 개정하면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명시했다.

정부가 공정한 거래질서 확립에 나선 첫 사례다. 하도급법 개정을 시작으로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대리점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대규모 유통업에서의 거래공정화에 관한 법률'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등에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됐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세우기 위한 조치들이다.

이후에는 기술탈취 문제가 심각해 지자 관련 법률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이 적극 추진됐다.

2019년에는 부정경쟁방지법(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과 특허법, 산업기술호보호법(산업기술의 유출방비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명시했다. 2019년 1월 개정된 특허법은 오랜 시도 끝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했다.

기술유용행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려는 상생협력법(대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법률개정안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대기업 등이 강력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거래관계에서 중소기업 기술탈취를 대기업의 불공정행위로 적용할 수 있는 법은 하도급법이 대표적이다.

하도급법 제35조에서는 원사업자의 기술자료 제공 요구를 금지하고 있다. 이를 위반해 손해를 입히면 손해의 3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원사업자가 배상책임을 지도록 규정했다.

하도급법은 귀책사유에 대한 증명책임을 가해자인 원사업자가 지도록 했다. 원사업자의 법위반 행위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조치다. 기업간 거래방법이 복잡하고, 기업비밀을 이유로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현실을 고려한 것이다.

◆제도 활용 저조 = 문제는 실효성이다. 법은 있는데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다.

하도급법상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건수는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제도가 널리 활용된다고 보기 어렵다. 2019년 6월 기준으로 하도급법 위반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한 경우는 부당한 위탁취소 관련이 4건으로 가장 많았다. 부당한 하도급대금 관련이 3건, 감액금지 위반이 3건이었다. 기술유출 관련은 1건에 그쳤다.

중소벤처기업 및 스타트업의 기술탈취 피해는 지속되고 있다. 최근 5년간 확인된 기술유출 피해액만 5400억원이다. 확인되지 않은 사례까지 고려하면 중소기업 피해는 막대한 수준으로 추정된다.

거래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을'인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은 기술을 빼앗겨도 그저 냉가슴만 앓는 수밖에 없다. 침해사실을 입증하기도 어렵다. 비용부담으로 소송은 감히 엄두도 못 낸다.

2017년 중소기업기술보호 실태조사에서 기술유출 발생 후 법적대응을 하지 않는 이유로 영업기밀유출 사실 입증곤란(66.6%), 거래관계 유지(53.3%), 소송비용 지출(46.7%) 등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계가 징벌적 손해배상의 실효성 강화를 꾸준히 제기하는 배경이다.

특허청이 앞서서 '손배배상액 산정 현실화'를 요구하고 있다. 현행 제도는 특허권자가 충분한 손해배상을 받지 못하는 불합리한 설계라는 주장이다.

올 7월부터 고의적인 특허침해에 대한 3배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시행됐다. 특허침해 손해배상의 발판을 마련됐다는 데 의의가 있다. 하지만 손해배상액 산정이 지나치게 낮아 징벌적 손배제도 효과를 무력화시킨다는 문제제기다.

◆지식재산권 적정 보호 안이뤄져 = 현행 특허법은 특허침해가 발생하는 경우에도 손해배상을 특허권자의 생산능력 범위로 제한하고 있다. 생산능력이 부족한 특허권자는 특허침해를 당해도 충분한 손해배상을 받지 못한다.

실제 우리나라 특허침해 손해배상액은 미국의 1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경제규모를 고려해도 9분의 1에 불과하다.

박원주 특허청장은 "손배액이 적어 특허권자는 침해를 당해도 소송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 지식재산권에 대한 적정한 보호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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