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권 진입하는 P2P금융의 명암│② 새로운 대안금융될까
개인신용대출 어려운 환경 … "시장 커져야 중금리대출 가능"
중소기업·소상공인·부동산PF 대출로 이동 … '투자한도 제한' 업계 걸림돌
"P2P금융은 성장하는 단계에 있다. 박리다매로 운영되기 때문에 시장규모가 커져야 수익이 나는 구조다. 규제가 너무 강해서 시장이 성장하지 못하면 P2P금융에 새로운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24일 중견 P2P업체의 대표는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 P2P금융이 기존 금융권에서 소외된 계층을 지원하는 새로운 대안금융의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42개 P2P업체의 누적대출액은 올해 3월 18일 기준 9조6032억원, 대출잔액은 2조3362억원이다. 2015년 국내에서 영업을 시작한 이후 P2P금융은 급속히 성장했지만 최근에는 정체상태다. 2018년말 대출잔액은 1조6439억원에서 지난해말 2조3825억원으로 증가했지만 올해 2월과 3월에는 잔액이 줄어들었다.
현재 P2P투자는 업체당 2000만원(부동산 1000만원)으로 한도가 설정돼 있지만 총한도 규제는 없다. 하지만 P2P금융법인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온투법)이 8월 시행되면 총 투자한도는 3000만원(부동산 1000만원)으로 제한된다. 당초 시행령에서 정한 5000만원보다 더 낮아졌다.
◆코로나19에 더해진 투자한도 제한 = 업계 관계자는 "개인투자자가 P2P업체 50곳에 1000만원씩 5억원 가량을 투자하고 있었다면 앞으로는 총 3000만원까지 밖에 투자를 못하게 된다"며 "신규 투자자들이 대거 유입되지 않고, 기존 투자들만으로는 전체 투자금액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P2P업계도 코로나19사태에 영향을 받고 있다. 시중자금이 주식시장으로 몰리면서 이달 들어 투자금이 크게 줄었다. P2P업체의 한 대표는 "매달 영업이익이 일정하지는 않지만 이달 들어 심각한 상황"이라며 "코로나사태의 영향으로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P2P금융 투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당장은 투자금이 줄어드는 게 문제지만 대출을 받은 차입자들의 수입이 줄어들어 연체가 발생할 가능성도 커졌다.
2015년 P2P업체들이 국내에서 영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당시만 해도 개인신용대출이 업계의 중심이었지만 수익을 내지 못한 업체 상당수는 중소기업·소상공인·부동산PF 대출로 이동했다.
한국P2P금융협회에 가입된 회원사 44곳의 누적대출 유형을 보면 2020년 3월말 기준 개인 신용대출 누적액은 2034억원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 1023억원과 비교하면 1000억원 증가에 그쳤다. 반면 매출담보대출과 동산담보대출 누적액은 법인이 각각 6436억원, 6504억원이며, 부동산담보대출은 개인 1조175억원, 법인 6504억원이다. 대출비중이 가장 높은 분야는 부동산PF로 1조9008억원을 기록했다. 개인신용대출 비중이 높은 미국과 영국 등 주요국들과는 다른 상황이다.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장인 정유신 교수(핀테크지원센터장)는 "P2P금융이 활성화되면 고신용자(은행대출)와 중·저신용자(2금융권 대출)간의 금리절벽 해소와 중금리대출 대상의 확대로 포용적 금융에 대한 기여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현재 P2P업계가 처한 현실을 고려하면 개인에 대한 중금리대출 확대까지는 상당기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국내 P2P업체 중에서는 '8퍼센트'와 '렌딧' 등이 개인신용대출을 취급하고 있다. 8퍼센트는 중신용자(4~7등급)에게 평균 연 10%안팎의 금리로 대출을 해주고 있어서 저축은행·캐피탈·카드론보다 금리가 낮아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8퍼센트도 수익을 내지는 못하고 있다.
P2P업체들도 스타트업들과 마찬가지로 성장 초기단계여서 당장 수익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시장 상황의 악화와 투자한도 제한 등 규제 강화가 더해지면 성장 가능성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외부감사를 받는 P2P업체 중에서는 3곳 정도가 이익을 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니스트펀드가 지난해 적자에서 흑자(당기순이익 8억4900만원)로 돌아섰으며 적자였던 투게더퍼드도 지난해 4억2400만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시소펀드는 흑자를 내고 있지만 2018년과 2019년 당기순이익이 각각 4400만원과 340만원에 그쳤다. 반면 업계 1위인 테라펀드는 지난해 32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크라우드펀딩 몰락 뒤따르나 = 업계 관계자는 "영업 확대를 하지 않고 직원 감축 등 비용을 줄이면서 운영을 하면 흑자를 낼 수는 있지만 매출을 확대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투자한도가 줄어들면 경영환경이 더 어려워지지만 8월 법시행으로 업체들은 준법감사인을 의무적으로 둬야 한다"며 "높은 연봉을 지급해야 하는 준법감사인 채용 등도 업체에 부담"이라고 말했다.
P2P업계는 투자한도 제한으로 사실상 몰락한 크라우드펀딩의 뒤를 잇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P2P업체들은 투자하는 금융상품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투자자들한테는 연간 1.2%, 대출을 받는 차입자에게는 1~3%의 수수료를 받는다. 수수료로 운영되는 만큼 투자자들이 늘어나지 않는 한 수익을 확대하기 어려운 구조다.
크라우드펀딩은 창업기업 등이 온라인 펀딩포탈을 통해 다수의 소액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투자형)한 것으로 2015년 국회에서 크라우드펀딩법이 통과되면서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P2P금융과 비슷한 구조지만 P2P금융은 대출방식이고 크라우드펀딩은 창업기업의 지분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투자자보호를 위해 투자한도를 1년간 동일기업당 200만원, 총 500만원으로 제한했다. 이후 동일기업당 500만원, 총 1000만원으로 한도를 늘렸지만 투자가 활성화되지 않아 시장에서는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크라우드펀딩의 대표주자인 왓디즈도 상품투자로 중심이 옮겨졌다.
◆업체 신규진입 사실상 막혀, 대형업체 위주 생존 = 투자한도 제한은 신생업체들의 진입을 막고 이미 기존 투자자들을 확보한 대형업체 위주로 시장이 양극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에는 투자할 수 있는 한도가 P2P금융 기업마다 비교적 균등하게 주어졌으나 업계 전체 3000만원으로 묶이게 돼 신규 P2P금융기업의 진입은 사실상 어려워진 것으로 보인다"며 "기존에 영업 중인 업체 사이에서도 이미 투자자를 확보한 곳과 그렇지 못한 곳의 양극화가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투자한도 제한은 그동안 일부 P2P업체들이 '고수익와 고 리워드(경품과다 지급), 단기상품' 을 내세운 일명 '고고단'으로 투자자들을 유혹하고 이후 부실과 횡령 등이 문제가 되면서 업계가 겪고 있는 후폭풍이다.
다만 그동안 P2P업체들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상대로 대출을 확대하면서 대부업체들보다 낮은 금리로 자금을 공급했고, 부동산PF를 늘리면서 대부업권의 전유물이었던 부동산 후순위담보대출의 금리가 떨어졌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8월 법이 시행된 이후 감독당국의 강력한 규제로 시장이 안정화되면 자연스럽게 투자한도 증가를 기대해 볼 수 있다. P2P업체의 한 대표는 "지금은 어렵더라도 시장이 커지면 궁극적으로 중금리 대출이 많이 이뤄지고 대안금융으로서의 역할을 할수 있을 것"이라며 "금융당국이 등록심사를 통과한 P2P업체들에 대해 투자한도를 확대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P2P업계의 반발이 크다는 것은 알지만 투자자보호를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며 "규정제정 예고기간인 이달 30일까지 의견을 수렴한 후 최종 결정을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