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약자가 위기에 취약한 사회구조 바꿔야"

2020-05-06 12:44:12 게재

선언을 위한 사회적 대화라면 불필요 … "경사노위 안이냐, 밖이냐는 중요치 않아"

한국노총은 지난달 29일 중앙집행위원회을 열고 민주노총이 참여하는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사회적 대화 제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3·5노사정합의를 토대로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내에 '특별위원회' 구성 △정세균 국무총리가 제안한 '노사정대표자회의' △노사정과 시민단체를 포괄하는 '노사민정대책회의' 구성 등 3가지 방안을 토의했다. 논의 끝에 중집위는 비상 사회적 대화 구성, 의제 등에 대한 협상 전권을 김동명(52) 위원장 등 집행부에 위임했다.

내일신문은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회관에서 김 위원장을 만났다. 김 위원장은 코로나19에 따른 고용위기에 대한 사회적 대화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선언적인 사회적 대화에는 참가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위기상황에서 사회적 약자가 더 큰 피해를 보는 사회구조, 수직적 경제구조를 바꾸기 위한 경제주체간의 사회적 신뢰 구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 일각에서 코로나19 위기라는 이유로 시한과 목표를 가지고 조급하게 추진하는 것을 경계했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일동제약노조 위원장과 3선의 전국화학노조연맹(화학노련) 위원장을 지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월 21일 한국노총 제27대 임원선거에서 이동호 사무총장(전국우정노조 위원장)과 한 조를 이뤄 당선됐다. 사진 한국노총제공

■ 코로나19에 따른 사업장 현장은 어떤가.

한국노총은 '코로나19 고용위기 신고센터'를 통해 피해사례 등 현장상황을 파악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이동이 제한되면서 인천공항 이용객은 95% 이상 줄고, 관광업 매출액은 90% 이상 감소했다. 이미 항공·운수업, 음식·숙박·관광업 등은 직격탄을 맞았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자동차 등 제조업도 전 업종에 걸쳐 어렵다. 특히 피해가 중소영세사업장 소상공인과 사내하청 파견 비정규직 특고 등 취약계층 노동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

■ 중집회의 분위기를 알려 달라.

정세균 총리로부터 받은 고용문제에 대한 원포인트 노사정 대표자회의 제안을 보고했다. 정 총리의 제안이 의제나 형식에 대해서 명확하지 않고 가변성이 많기 때문에 하나의 입장을 가지고 의결하기 어려웠다. 향후 협상상황에 대한 판단을 집행부가 위임받았다. 한국노총의 입장과 방향에 맞는다면 과감하고 담대하게 대화에 나설 것이다.

■ 3가지 방안을 놓고 논의 됐는데.

몇번째 방안인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고통을 받는 당사자 참여가 보장돼야한다. 사회총체적 위기라 시민사회단체, 종교계까지 포괄하는 넓은 의미의 사회적 협의체를 만들자는 3안에 방점이 있다.

■ 2008년 금융위기때 2009년 2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민정합의'가 있었다.

2009년 선례처럼 정부가 서두르고 각 주체가 동의하면 그렇게 긴 시간이 들지 않는다. 각 주체의 대표성은 실무 논의를 통해 보완하면 된다.

■ 3안은 경사노위 대표자회의 결의로 노사민정대책회의를 구성하자는 건데.

경사노위 결의로 하느냐 즉 경사노위 안이냐, 밖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경사노위에서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3·5노사정합의 선언이 있었다. 후속논의도 진행 중이다. 총리제안이 3.6선언에 민주노총이 참여하는 수준이라면 의미를 찾기 어렵다. 선언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에서 양대지침(쉬운해고, 취업규칙 변경 완화)을 언급했다. 신뢰도 무참히 깨졌다. 그렇게 할 거면 안하는 게 났다. 선언이 남발될 수 있다. 선언에 불과하거나, 재탕 삼탕하는 선언이라면 안할 생각이다.

■ 선언이 남발될 수 있다?

위기상황이라고 조급하게 선언만 하는 것은 맞지 않다. 이번 위기만이 아니라 다가올 또 다른 위기에 대비하는 사회적 신뢰를 만들어야 한다. 코로나19 고용위기 극복뿐만 아니라 위기상황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더 큰 피해를 보는 사회구조, 수직적 경제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까지 논의돼야 한다. 이를 통해 위기가 왔을 때 취약계층이 사회로부터 버림받지 않고 같이 살아가는 사회라는 사회적 신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가 좀 더 조화롭고 공정하고 갈등의 사회가 아닌 화합의 사회를 만드는데 노동이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 정부 일각에서 서두르는 측면이 있다.

과거식으로 4월 중이라는 시기를 정해놓고 관철시키려고 압박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선언한지 얼마 안됐는데 비슷한 선언하자는 거고, 논의해 오던 경사노위 틀 밖에서 하려면 한국노총 내부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입장과 방향을 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 노동은 동원 대상이 아니다. 경사노위에 참여한 조직이 밖으로 안 나오면 위급한 시기에 무례한 거고, 밖에 있는 조직이 안으로 안 들어오면 아무 문제도 없는 거냐.

■ 민주노총과 주도권을 쥐기 위한 기싸움이라는 시각도 있다.

같은 노동조직인데 노동의 힘을 하나로 모아야지, 기싸움을 하거나 분산시킬 일이 아니다. 위원장에 출마했을 때도 노동의 힘을 모으겠다고 했다. 굳이 표현한다면 정부와 의제, 형식을 놓고 기싸움한다고 할 수 있다.

■ 코로나19 위기대응 방안은.

어떻게 고용을 유지하고 해고를 제한할 것인가, 고용시장에서 이탈한 열악한 계층의 사회안전망을 보강할 것인가가 노사민정 대화의 주요한 내용이 될 것이다. 각 주체의 요구를 봇물처럼 쏟아내는 방식보다는 책임있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

■ 중집회의에서 긴급재난지원금의 사회적 기부에 자발적으로 동참하기로 했다.

기부동참에 고민이 있었다. 한국노총 내에 열악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는데 그분들에게 압박으로 다가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어려운 분들은 기부에 동참하지 않아도 도덕적으로 부담가질 이유가 없다. 기부금은 영세사업장과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연대기금, 원하청 공동근로복지기금 조성하는 데 활용할 계획이다. 한국노총만이 아니라 사회전반으로 확대됐으면 한다.

■ 4·15 총선에서 한국노총 출신이 9명 당선됐다.

더불어민주당에서 5명, 더불어시민당 1명, 미래통합당 2명, 미래한국당 1명이 당선됐다. 한국노총과 더불어민주당은 공동협약으로 '제21대 국회 노동부문 5대 비전·20대 공동약속'을 맺은 바 있다. 여당이 180석이라고 해서 노동이 요구하는 입법과제가 일사천리로 될 거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다.

21대 국회에선 5인 미만사업장 노동관계법 적용, 1년 미만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퇴직자 퇴직금 정산 등은 반드시 입법돼야 한다. 또한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결사의 자유 87·98호, 강제노동금지 29·105호)을 비준해 노동기본권 후진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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