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청장 '새벽·골목'을 걷는다

2020-07-08 12:15:47 게재

서양호 2년째 '걸어서 출근'

열악한 지역 직접 살펴보고

해법 찾는 생활행정에 집중

"어, 어제 오시더니 또 나오셨네." "정치인들이 선거때만 인사하고 코빼기도 안비추는데 날마다 오는 구청장은 처음이야."

닭과 돼지 부산물을 중심으로 식자재와 주방기기 등을 도매로 공급하는 서울중앙시장. 식당 등 업소 운영자들이 주로 찾는 도매시장인 만큼 새벽시간이 한낮처럼 분주하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가 등장한다. 운동복 바지와 운동화 차림에 백팩을 맨 서양호 중구청장이다. 황학동 자택에서 구청까지 매일 걸어서 출근하며 주민들 이야기를 듣고 정책을 다듬는다. 출근길은 민선 7기를 관통하는 '생활행정' 밑바탕이 된다.

서양호(왼쪽) 구청장은 2년째 걸어서 출근하며 주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정책을 가다듬는다. 출근길 서 구청장이 장을 보러 나온 주민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중구 제공


서양호 구청장도 취임 직후에는 여느 지역 정치인처럼 남산자락 아파트단지에 거주했다. 황학동으로 주거를 옮긴 건 지난해 1월이다. 서 구청장은 "중구 내에서 신당동 신당5동 황학동이 주거환경이 가장 열악하다"며 "그걸 바꿔보려고 '영미왕곱창 옆집'으로 이사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깨어있는 시간에 맞춰 새벽 도보출근을 시작했다.

"아이고~ 구청장님 기다렸어요. 저거 쌓여있는 거 어떻게 할 거에요. 계속 저렇게 쌓아두고 있어." "오토바이가 한달째 저 자리에 있네. 버린 것 같아."

순대 도·소매점을 운영하는 김용명(52)씨와 시어머니가 운영하던 가게를 이어가는 권순이(57)씨를 비롯한 상인들은 새벽길을 걷는 구청장에 익숙해졌다. 구청장을 만나면 이야기할 동네 문제를 염두에 두었다가 대뜸 털어놓곤 한다. 건강음료나 비타민음료를 준비하고 있다가 슬쩍 건네기도 하고 "커피 한잔 하고 가라"며 붙드는 주민도 있다.

취임 전 지역 전체를 100바퀴 정도 돌며 정책구상을 한데다 걸어서 출근만 2년째라 주민들 사정에도 훤하다. 아픈 아내를 두고 혼자 가게를 지키는 할아버지나 어머니 점포를 운영하는 아들을 만나면 가족들 안부까지 챙긴다. 주민들과 대화 중 핵심 내용은 손에 든 휴대전화에 글과 사진으로 기록한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매출이 줄고 있는데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해썹)에 맞춰 투자해야 하는 어려움, 은행 융자 문턱이 너무 높다는 호소 등 최근 두달에만 280여건을 저장했다.

구청에 도착하면 공무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해결방안을 모색한다. 담배꽁초가 쌓이기 시작해 우범지대처럼 바뀌었던 한 은행건물 주변을 화단으로 탈바꿈시킨 건 그 결과물 중 하나다. 자전거와 오토바이 불법주정차로 어지럽던 주방가구 거리에도 지금은 계절꽃이 만발해있다. 서 구청장은 "다산어린이공원 화장실은 서울 공중화장실 가운데 5번째로 이용자가 많은데 '내집 화장실'처럼 개선했다"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깨끗한 남자화장실일 것"이라며 웃었다.

황학동을 출발해 신당5동 주택가와 백학상가, 동화동을 거쳐 신당동 떡볶이촌과 광희동 장충동을 지나면 구청이다. 8시 즈음 출근까지 주민들 거주지 절반 이상을 도는 셈이다. 나머지 다산·회현·중림동 등은 낮이나 주말 현장방문지로 택해 자영업자 생존자금 홍보를 하거나 폭염예방 정보를 전한다.

구청장 출근길이지만 공무원들은 동행하지 않는다. 동네 사령관인 동장이 구청장과 별도로 출근전후 지역을 챙기는 정도다. 출근길 주민과 만남은 하나둘 선도적인 정책으로 탈바꿈했다. 폐지수집 노인 생활안정을 위해 자원관리사로 전환하고 사회발전을 위한 노년층 공로를 인정해 매달 10만원씩 지역화폐 형식으로 공로수당을 지급한다. 학교 내 돌봄교실을 직영, 방과후 돌봄공백을 없앴고 중고생 진학상담실을 구청에 마련했다.

서양호 중구청장은 "길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정책방향을 잡았고 역시 현장에 답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며 "초심을 잃지 않고 주민을 위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발로 뛰며 일하는 구청장이 되겠다"고 다시 약속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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