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차별, 경제학회지도 자유롭지 않아

2020-07-14 11:01:13 게재

월스트리트저널 "최고의 저널들, 인종차별 연구 무시한다 비판 받아"

미국 최고의 경제학회지들도 흑인에 대한 차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3일 "일부 경제학자들은 '미국 최고의 경제학회지들이 흑인 등에 대한 경제적 차별 연구 논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같은 연구나 저자들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는다'며 비판한다"고 전했다.

저명한 경제학회지들은 경제학자들의 논문을 게이트키핑하는 한편 국가 경제정책 수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텍사스대 경제학 부교수인 로드니 앤드루스는 "경제학회지들은 경제이론의 유행 선도자(트렌드세터)로서, 경제학자들에게 봉화와 같은 역할을 한다"며 "학회지에서 인종 관련 이슈를 제기하는 논문이 부족하다면, 보는 사람은 그같은 이슈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학회지 편집자들의 의견은 나뉜다. 일부 편집자들은 그같은 비판을 적극 방어한다. 하지만 다른 편집자들은 인력풀을 다양화하고 인종 관련 연구에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경제학계에선 대체적으로 5개 학회지가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아메리칸 이코노믹 리뷰'와 '이코노메트리카', '저널 오브 폴리티컬 이코노미', '쿼털리 저널 오브 이코노믹스', '리뷰 오브 이코노믹 스터디즈'다. 각 학회지는 대략 1년에 1000개에서 2000개 논문을 접수한다. 그리고 수십개에서 많개는 100개의 논문을 게재한다.

이 과정에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논문은 동료평가를 받는다. 논문이 인용돼 발간되기 전까지 수정을 거친다. 이 과정은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릴 수 있다.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자 아이슬린 보렌 등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1990~2018년 앞서 언급한 5개 학회지를 포함한 10개의 주요 경제학저널들에 실린 차별과 편견, 불평등을 주제로 한 논문은 105개에 불과했다. 그중 인종차별과 관련한 논문은 58개였다.

텍사스대 앤드루스 교수는 "일부 저명한 학회지는 시카고대나 하버드대 등 명문대 경제학부 내에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논문 게재 프로세스는 해당 대학 연구자들에게 우호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엘리트 연구기관엔 흑인학자들이 크게 부족하고 흑인과의 사회적 네트워크가 부재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인종주의와 차별 등을 주제로 한 논문을 내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저명한 저널에 논문이 실리는 건 해당 연구자에게 큰 보상이 따른다. 고용과 승진, 보수, 교수 임기 등의 결정에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최근 인종 관련 연구가 발간 과정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 의문이 제기됐다. '저널 오브 폴리티컬 이코노미'의 수석 편집자 하랄트 울리 시카고대 경제학 교수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기 때문.

그는 트위터에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운동과 '경찰에 대한 예산지원을 줄여야 한다'는 운동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가 집중포화를 맞았다. 과거 자신의 블로그에 인종 관련 이슈를 제기한 것도 도마 위에 올랐다. 편집자에서 물러나라는 요구가 빗발쳤고, 울리 교수는 트위터에 사과의 글을 올렸다.

경제학계 일부 사람들은 '인종차별에 대한 울리의 시각은 그의 능력에 의구심이 들게 한다'고 지적했다. 인종과 차별에 대한 연구논문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느냐는 것. 울리 교수처럼 수석 편집자는 접수한 논문을 퇴짜 놓을지, 아니면 검토를 지속할지에 판단한다.

울리 교수는 여전히 편집장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는 WSJ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편집자로서의 내 판단에 대해 우려를 하고 있지만, 이는 하찮은 문제(nonissue)"라며 "나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 저자들은 우리 저널의 다른 편집자에게 논문 검토를 받으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저널 오브 폴리티컬 이코노미는 인종과 차별에 대한 연구를 게재해왔고 해당 영역에서 최고의 품질을 가진 논문을 언제든 환영한다"고 덧붙였다.

미네소타대학 경제학 교수인 새뮤얼 마이어스는 "인종 차별과 관련된 논문이 저명한 학회지에 게재되는 비율이 낮은 이유는 주류 경제학계가 인종을 바라보는 방식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경제학계에선 인종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 흑인에 대한 체포·구금 비율이 높은 것과 자가주택 보유율이 낮은 것 등엔 인종차별 외에 다른 이유, 다른 요소가 있다는 믿음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마이어스 교수와 동료 경제학자 패트릭 메이슨, 윌리엄 샌디 대리티 등은 2005년 연구논문에서 "인종차별 결론을 내린 논문들을 살핀 결과 공동저자 중 흑인이 포함돼 있을 경우가 흑인이 전혀 없는 경우보다 훨씬 많았다"고 지적했다.

마이어스 교수는 "저명한 학회지들은 역사적인 표준 예측에서 너무 멀리 벗어난 이론 또는 실증 연구에 기회를 주지 않으려는 성향을 보여왔다"고 말했다.

전미경제학회가 발간하는 '아메리칸 이코노믹 리뷰'의 편집장 에스테르 뒤플로는 WSJ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학회지 논문심사인들은 인종에 대해 매우 조심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뒤플로는 "경제학계가 인종주의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기 꺼려하거나 또는 인종에 대해 매우 조심스런 경향이 있다는 의미는 인종차별의 결론을 내리는 논문 저자들은 논문심사인들에게 그 정당성을 입증하는 데 매우 고전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라며 "학회지 심사인들은 언제나 다른 스토리를 찾고자 할 것"이라고 말했다. 뒤플로는 노벨상 수상 경력의 경제학자다.

그는 "편집자로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이러한 편견을 인식하고 유념하는 것이다. 그래야 고칠 수 있다"고 말했다.

뒤플로에 따르면 '아메리칸 이코노믹 리뷰'에는 모두 11명의 편집자와 공동편집자가 있다. 그중엔 흑인 또는 중남미 라틴계는 없다.

미시간주립대 경제학 교수인 리사 쿡은 저명한 학회지의 논문 심사 과정을 10년 넘게 지켜봤다며 "그 과정에서 경악했다"고 말했다.

쿡 교수는 흑인 등 소수민족과의 정치적 갈등이 혁신과 경제성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논문을 썼고 이를 학회지에 게재하려고 노력했다. 그의 분석은 1870~1940년 흑인에 대한 미국 사회의 폭력이 흑인 발명가들의 특허율 감소와 관련이 있다는 내용을 논증한 내용이었다.

쿡 교수는 "논문심사인이 내 연구과제 전체를 반대한 건 아니었지만, 특정 세부내역과 논문에 포함된 가정에 이의를 제기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흑인에 대한 사적인 폭력을 사법절차에 의하지 않은 살인과 비슷하게 보는 이유에 대해 논문심사인이 집중적으로 캐물었다는 것.

쿡 교수는 "나는 그러한 지적을 접하며 논문심사인들이 미국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들은 논문의 맥락을 이해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하버드대에 위치한 '쿼털리 저널 오브 이코노믹스' 편집진이자 경제학자인 로렌스 카츠는 "우리는 2000년대 이후 인종 불평등에 대한 연구논문 게재를 늘려가고 있지만, 그 비율은 여전히 '극도로 낮다'(far too low)"고 인정했다.

그는 "논문의 맥락은 물론 학회지 편집자들 다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계량경제학회가 발간하는 '이코노메트리카' 편집자인 귀도 임벤스는 "학회지의 편집진을 다양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최근 임명된 공동편집자는 여성이고, 올 여름 또 다른 편집진이 임명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벤스 편집자는 "학회지가 전반적으로 실증연구 논문을 보다 많이 게재할 필요가 있다"며 "이는 인종과 차별을 다룬 논문을 보다 많이 허용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나는 그런 종류의 논문을 발간하는 데 관심이 많다. 그리고 만약 그와 같은 논문을 본다면, 저자들에게 우리 학회지에 실어달라고 부탁하겠다"고 덧붙였다.

영국 소재 리뷰 오브 이코노믹 스터디즈 편집진들은 이메일에서 "지식의 최선두에 서 있는 연구논문을 게재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며 "특정 주제에 대해 특별한 초점을 갖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주제와 관련해 그 어떤 제한도 없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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