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여는 책 | 독일 출판을 말하다

도서정가제 준수하는 독일

2020-07-24 12:18:30 게재

신종락/산과글/2만원

얼마 전, 출판도매상인 인터파크송인서적이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인터파크송인서적은 몇 년 전, 송인서적이 부도가 난 이후 인터파크가 인수한 기업이다.

송인서적의 부도 당시 막대한 손해를 봤던 출판사들은 이번 인터파크송인서적의 기업회생 신청에서도 큰 손해를 입게 됐다. 한국의 출판계가 나아갈 방향을 살피기 위해서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법하다.

세계 출판 시장의 불황에도 독일 출판 시장은 큰 굴곡없이 일정한 매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새로 나온 책 '독일 출판을 말하다'는 독일 출판과 관련한 간략한 역사에서부터 독일 출판단체 출판 산업 출판사 출판유통회사 서점 전자책 반품제도 도서정가제 등을 상세히 살피고 있다. 저자는 독일에서 출판 관련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독일 프랑크푸르트 독일서점상업학교(현 프랑크푸르트미디어 캠퍼스)에서 실무를 공부한 출판 연구자다.

한 지역서점 내부. 도서정가제를 준수하는 것은 지역서점이 살아남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사진 이의종


1888년 '크뢰너의 개혁'

독일은 도서정가제를 준수하는 국가다. 책은 정가에 판매해야 하며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일정 정도 할인이 가능하다. 1888년 독일출판서적상업협회 회장이었던 아돌프 크뢰너는 출판사가 정한 가격을 준수해 책을 판매해야 한다는 규약을 만들어 실행했다.

이 제도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크뢰너의 개혁'이라고 불린다. 이때부터 독일출판서적상업협회 회원사들은 최종 소비자에게 책을 판매시 출판사에서 정한 가격대로 판매해야 했고 이를 위반할 경우 협회로부터 압력을 받았다.

1960년대에는 업계가 보다 효과적으로 정가제를 준수하는 방안을 고민했고 1000여개의 출판사와 서점이 참여하는 공동협약을 체결하기에 이른다. 1980년대에 이르러 출판물은 경쟁제한방지법에 예외 조항으로 삽입돼 출판물의 정가제가 법적으로 인정됐다.

이후 도서정가제가 유럽공동체의 자율경쟁법에 위배되기 때문에 폐기돼야 한다는 압력을 유럽공동체위원회로부터 받자 독일은 국가의 문화 수호 차원에서 별도 법안을 발의해 독일 출판물 정가법을 제정했다.

표준 공급률을 따른다

크뢰너의 개혁이 있기 이전, 독일 도서 시장의 중심이었던 라이프치히와 베를린에서는 책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한 할인업자들이 정가의 40%까지 할인해서 책을 판매했다. 당시에는 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지역의 책값은 훨씬 비쌌다. 그래서 지역의 소도시 사람들은 비싼 가격을 주고 책을 구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는 지역서점에는 큰 위협이 됐다. 할인업자들의 횡포로 결국 지역서점은 고사 위기에 처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책의 가격을 고정하게 됐다. "할인업자들이 제시하는 가격으로 독자들에게 신간을 판매할 경우에 전문가의 판단에 의하면 전국에 걸쳐 있는 독일어권 서점들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상황을 볼 때 도서의 할인은 작가 독자 그리고 출판인 모두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

독일의 도서정가제는 표준 공급률을 따른다. 공급률은 출판사가 서점에 책을 납품하는 정가 대비 비율을 뜻한다. 표준 공급률에 따르면 출판사는 특정 서점에만 차별적인 할인 혜택을 줘선 안 된다. 다만 제도적으로 구간(舊刊)에 대해서는 할인이 가능하게 돼 있다. 출판사들은 책을 출판한 이후 18개월이 지나면 가격을 낮출 수 있다.

한국의 도서정가제의 경우, 가격 할인과 경제상 이익을 조합해 정가의 15% 이내 할인을 허용하고 있으며 출간 이후 18개월이 지나면 가격 재조정이 가능하다. 공급률에 대해서는 규제하고 있지 않다.

또 독일의 경우 출판도매상과 거래할 때 현금 거래만 하고 있으며 위탁이나 어음 거래는 하지 않는다. 다만 출판사가 직접 서점과 거래하거나 출판사의 지시에 따라 도서물류회사를 통해 서점에 도서를 출고할 경우 서점의 신용 정도에 따라 90일까지 지불 유예 기간을 준다.

학생들이 낭독하는 '책 읽기 대회'

2000여개 이상의 오프라인서점들이 온라인서점을 운영하는 것도 한국과 다른 점이다. 독일의 경우 대형서점들은 자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온라인서점을 운영하고 있고 중소형서점들은 출판유통회사가 구축한 데이터베이스의 도움을 받아 온라인서점을 운영한다. 저자는 온라인서점에 대해 "디지털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프라"라고 밝힌다.

독일은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잠재 독자를 육성하는 데 노력을 기울인다. 독일의 경우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가장 많이 하는 활동 중 하나는 선생님이 아이들을 모아 놓고 책을 읽어주는 활동이다. 초등학교에서도 특별활동 시간에 부모가 1일 명예교사가 돼 책을 읽어준다.

이 외에도 독일은 다양한 정책을 통해 잠재 독자를 육성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독일출판서적상업협회가 주관하는 '책 읽기 대회'로 1959년부터 해마다 독일 전역에서 이뤄지는 규모가 가장 큰 책 읽기 대회다. 학생들이 자신이 선정한 책의 일부분을 발췌해 낭독하는 형식으로 이뤄지며 청취자들에게는 새로운 책을 파악하는 계기가 된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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